‘두~엉! 두~엉!’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3월 내놓은 5집 ‘아리랑’에 의미심장한 곡이 담겨있다. 작곡가의 음악이 아니다. 771년(혜공왕 7)에 완성된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와 긴 여음으로만 1분 38초를 채웠다. 종소리는 6번 트랙 ‘No. 29’에 실려있다. 현재 번호는 없어졌지만, 성덕대왕신종이 국보 29호였던 것에 착안했다.
높이 3.66 m, 무게 18.9 t에 달하는 이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 비결은 무엇일까. 성덕대왕신종만의 맥놀이를 꼽을 수 있다. 맥놀이는 비슷한 두 개의 주파수가 간섭할 때 진동이 주기적으로 커졌다 작아지는 것을 반복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종의 경우 두께의 불균일, 모양의 비대칭성 등으로 종의 각 부분에서 다른 진동수의 소리가 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성덕대왕신종은 더 특별한 존재다. 미소한 비대칭성이 절묘한 주파수쌍을 만들어 그 간섭으로 특유의 맥놀이 현상이 발생한다. 성덕대왕신종의 주파수 스펙트럼을 분석하면 1,000 ㎐ 범위 내에서 50여 개의 고유주파수가 확인된다. 그런데 이 50여 개의 주파수가 어느 하나 거슬리는 것 없이 조화를 이루며 은은한 소리를 낸다. 이것이 천상의 합창을 빚어낸다.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 비결로는 맥놀이를 꼽을 수 있다. 맥놀이는 비슷한 두 개의 주파수가 간섭할 때 진동이 주기적으로 커졌다 작아지는 것을 반복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성덕대왕신종은 기본음인 168 ㎐(168.52 ㎐와 168.63 ㎐)와 여음(餘音)인 64 ㎐(64.07 ㎐와 64.42 ㎐)의 고유주파수를 각각 갖고 있다.
1초에 168번, 64번 떨림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성덕대왕신종의 기본음은 168.52 ㎐와 168.63 ㎐의 두 가닥 음파가 한 쌍을 이룬 것으로 측정된다. 즉 두 가닥 음파의 차이는 0.11 ㎐, 즉 1초에 0.11번 떨림이다. 맥놀이 주기는 주파수의 역수로 정의된다. ‘1/0.11=9.1초’로 계산할 수 있다. 즉 성덕대왕신종의 기본음 맥놀이 주기는 ‘9.1초’이다.
여음의 경우 두 가닥의 음파 차이는 0.35 ㎐이고, 여음의 맥놀이 주기는 2.86초이다. 즉 성덕대왕신종의 경우 종을 치면 168 ㎐의 대표음은 9.1초 뒤 ‘…어~엉…’ 하고 울고는 사라지듯 하다가, 다시 한번 9.1초 뒤에 약하게 울음을 토해낸다. 64 ㎐의 여음은 2.86초 간격으로 끊어질 듯 이어지는 맥놀이를 보인다. 그래서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는 곡하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성덕대왕신종에는 또 하나의 비밀이 숨어있다. 타종 때 망치가 맞는 부분인 당좌의 높이가 가장 경쾌한 소리가 나오는, 이른바 ‘타격중심(sweet spot)’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야구 배트나 테니스 라켓으로 공을 때릴 때 타격중심에 맞으면 매우 경쾌한 타격이 된다. 종의 경우 역시 타격중심과 일치한 당좌를 타격할 때 종걸이의 충격이 최소화되고 종소리의 여음 역시 길어진다. 타격중심에서 벗어나면 반작용력이 커지고 종걸이가 울려 잡소리가 많이 나게 된다. 성덕대왕신종(높이 3,030 ㎜)의 타격중심은 종 하단으로부터 846 ㎜ 높이에 있었다. 그런데 실측(김석현 강원대 교수팀) 결과 실제의 당좌 중심은 856 ㎜의 높이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0 ㎜의 차이가 났다. 종신의 높이에 대한 값과의 상대적인 오차는 단 0.3 %였다.
성덕대왕신종은 ‘봉덕사종’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종이 완성된 후 걸린 사찰이 봉덕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까지 이 종의 유명한 별칭은 따로 있었다. ‘에밀레종’이다.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같다는 표현은 바로 에밀레종의 전설을 떠올린 것이다. 이 에밀레종 전설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같은 정사는 물론이고 각종 야사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19세기 말 서양인들의 채록에서 처음 보인다. 즉 1895년 구한말 선교사인 호러스 앨런(1858~1932)이 <코리안 리포지터리>(4월호)에 기고한 ‘서울의 큰종’에 나온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의 지시로 서울에 큰 종을 제작하려고 전국적으로 구리를 모았다. 그때 경상도 지방에 구리를 모으러 갔던 관리 앞에 3살짜리 아기를 업고 있던 여인이 나타났다. 그 여인은 “나에게는 구리가 없고, 이 아이뿐인데 이 아이라도 데려가라”고 제안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관리는 그냥 그 집을 떠났다. 우여곡절 끝에 구리를 모은 기술자들이 종을 제작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금이 생기고 깨졌다. 이에 어떤 기술자가 ‘아기 업은 여인 이야기’를 꺼내며 ‘그 여인은 마녀가 틀림없다. 그 마녀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종은 계속 깨질 것’이라고 아뢰었다. 결국 가련한 아이는 쇳물에 던져졌고, 종은 마침내 완성됐다. 이후 종을 칠 때마다 깊고 풍부한 음색으로 긴 음률을 맞추며 ‘아(Ah)-메이(mey)-라(la)’ 소리를 냈다. 이는 ‘Mother’s fault(어미탓)’라고 하는 소리다. 이것은 쇳물에 던져진 아기의 울음소리다.
성덕대왕신종은 최근까지 ‘에밀레종’으로 알려졌다. 마치 종소리가 마치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같기 때문이었다. ⓒ Shutterstock
1901년, 교육자인 호머 헐버트(1863~1949)는 <코리안 리뷰>(1월호)에 시 ‘종의 영혼(The Spirit of The Bell)’한 편을 쓴다. 이 시에서 헐버트는 ‘종 제작의 어려움과 한 마녀가 아기를 바치는 장면’을 전한다.
“…(쇳물) 속에 아이의 생명이 흐르고 있었다…동굴 같은 목구멍에서 나온 것은 종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에미(Emmi), 에미(Emmi), 에미(Emmi), 에밀레(Emmille)’였다. ‘어머니, 슬픕니다. 오 나의 어머니!’”
헐버트는 ‘에미’, ‘에밀레’ 대목에서 각주를 달아 ‘종을 쇠가 아닌 나무 막대로 치면 울림 있는 엠(Em) 소리가 난다. 이 소리의 유사성(‘Em과 에미’) 때문에 그 전설이 생겨났을 것’이라 풀이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묘사한 에밀레종은 경주 성덕대왕신종이 아니라 ‘서울 보신각종’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밀레종 전설은 앨런(1895)-헐버트(1901)-<별건곤>(1929)으로 이어지는 동안에도 성덕대왕신종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1934년 10월 18일 자 매일신보에 언론인 류광열이 ‘조선에 현존한 최대의 봉덕사종’을 주제로 흥미로운 기사를 쓴다.
“아이는 그 어미를 원망하여 ‘어밀래(엄마 때문에) 어밀래!’ 하고 울다가 그 소리가 그치면 또 원한이 북받쳐 ‘어밀래!’ 소리를 더 지르며…종소리가 그렇게도 처량하고 또 그치다가는 다시 나는 것이 그 어린아이 원한 때문….”
이것이 성덕대왕신종에 에밀레종 전설을 입힌 첫 번째 기사가 아닐까 생각된다. 또 7년 뒤인 국민신보 1941년 2월 16일 자는 ‘청년동화’란에 성덕대왕신종의 전설을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즉 신종 제작 기술자의 누이가 시주한 아이의 희생 덕분에 종이 완성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완성된 종을 치니 ‘어미! 어미!’하는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즉 1930년대 중반 무렵부터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의 등식이 자리잡힌 것 같다.
성덕대왕신종의 명문에는 “여기에 하늘 종을 본떠 만들었네…맑은 종소리는 북방의 산봉우리에까지 울려 퍼지니 듣고 보는 이 모두 신심(信心)을 일으켜 꽃다운 인연을 진실로 심었다”라고 새겨져 있다.
1901년 교육자이자 국어학자였던 호머 헐버트는 ‘종의 영혼’이라는 시를 발표, 앨런이 소개한 한국 종의 전설을 애절한 어조로 읊었다.
물론 사람 몸에서 배출되는 인 성분이 탈산제의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주장도 있기는 했다. 즉 인 성분이 쇳물 속에 남아 있는 산소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기포를 없애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아이를 희생시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이의 육신에서 추출될 수 있는 극미량의 인으로 12만 근의 황동이 들어간 18.9 t짜리 큰 종을 감당할 수 없다. 또 신라는 502년(지증왕 3)에 순장 제도를 공식 폐지했다.
그런 만큼 8세기 중후반(771), 성덕대왕신종 제작에 아이를 희생시켰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무엇보다 불교에서 종소리는 불음(佛音)이라 한다. 부처의 소리를 내기 위해 사람의 생목숨을 희생한다는 것은 불교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성덕대왕신종에서 에밀레종 전설은 거의 지워진 듯하다. 이제 종에 새겨진 명문 중 한 대목을 인용해 본다. “여기에 하늘 종을 본떠 만들었네…맑은 종소리가…울려 퍼지니 듣고 보는 이 모두 신심(信心)을 일으켜 꽃다운 인연을 진실로 심었구나.” 성덕대왕신종에 글을 새긴 이의 혜안이 놀랍기만 하다. 1250년 후 BTS가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로 전 세계에 꽃다운 인연을 심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