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5+06 Vol.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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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깊이보기

BTS의 종소리 ‘No. 29’,
세계에 울려 퍼진 꽃다운 인연

‘두~엉! 두~엉!’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3월 내놓은 5집 ‘아리랑’에 의미심장한 곡이 담겨있다. 작곡가의 음악이 아니다. 771년(혜공왕 7)에 완성된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와 긴 여음으로만 1분 38초를 채웠다. 종소리는 6번 트랙 ‘No. 29’에 실려있다. 현재 번호는 없어졌지만, 성덕대왕신종이 국보 29호였던 것에 착안했다.

글. 이기환 히스토리텔러

맥놀이의 조화

높이 3.66 m, 무게 18.9 t에 달하는 이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 비결은 무엇일까. 성덕대왕신종만의 맥놀이를 꼽을 수 있다. 맥놀이는 비슷한 두 개의 주파수가 간섭할 때 진동이 주기적으로 커졌다 작아지는 것을 반복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종의 경우 두께의 불균일, 모양의 비대칭성 등으로 종의 각 부분에서 다른 진동수의 소리가 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성덕대왕신종은 더 특별한 존재다. 미소한 비대칭성이 절묘한 주파수쌍을 만들어 그 간섭으로 특유의 맥놀이 현상이 발생한다. 성덕대왕신종의 주파수 스펙트럼을 분석하면 1,000 ㎐ 범위 내에서 50여 개의 고유주파수가 확인된다. 그런데 이 50여 개의 주파수가 어느 하나 거슬리는 것 없이 조화를 이루며 은은한 소리를 낸다. 이것이 천상의 합창을 빚어낸다.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 비결로는 맥놀이를 꼽을 수 있다. 맥놀이는 비슷한 두 개의 주파수가 간섭할 때 진동이 주기적으로 커졌다 작아지는 것을 반복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어린이의 울음

성덕대왕신종은 기본음인 168 ㎐(168.52 ㎐와 168.63 ㎐)와 여음(餘音)인 64 ㎐(64.07 ㎐와 64.42 ㎐)의 고유주파수를 각각 갖고 있다.

1초에 168번, 64번 떨림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성덕대왕신종의 기본음은 168.52 ㎐와 168.63 ㎐의 두 가닥 음파가 한 쌍을 이룬 것으로 측정된다. 즉 두 가닥 음파의 차이는 0.11 ㎐, 즉 1초에 0.11번 떨림이다. 맥놀이 주기는 주파수의 역수로 정의된다. ‘1/0.11=9.1초’로 계산할 수 있다. 즉 성덕대왕신종의 기본음 맥놀이 주기는 ‘9.1초’이다.

여음의 경우 두 가닥의 음파 차이는 0.35 ㎐이고, 여음의 맥놀이 주기는 2.86초이다. 즉 성덕대왕신종의 경우 종을 치면 168 ㎐의 대표음은 9.1초 뒤 ‘…어~엉…’ 하고 울고는 사라지듯 하다가, 다시 한번 9.1초 뒤에 약하게 울음을 토해낸다. 64 ㎐의 여음은 2.86초 간격으로 끊어질 듯 이어지는 맥놀이를 보인다. 그래서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는 곡하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0.3 %의 오차, 스윗 스팟

성덕대왕신종에는 또 하나의 비밀이 숨어있다. 타종 때 망치가 맞는 부분인 당좌의 높이가 가장 경쾌한 소리가 나오는, 이른바 ‘타격중심(sweet spot)’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야구 배트나 테니스 라켓으로 공을 때릴 때 타격중심에 맞으면 매우 경쾌한 타격이 된다. 종의 경우 역시 타격중심과 일치한 당좌를 타격할 때 종걸이의 충격이 최소화되고 종소리의 여음 역시 길어진다. 타격중심에서 벗어나면 반작용력이 커지고 종걸이가 울려 잡소리가 많이 나게 된다. 성덕대왕신종(높이 3,030 ㎜)의 타격중심은 종 하단으로부터 846 ㎜ 높이에 있었다. 그런데 실측(김석현 강원대 교수팀) 결과 실제의 당좌 중심은 856 ㎜의 높이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0 ㎜의 차이가 났다. 종신의 높이에 대한 값과의 상대적인 오차는 단 0.3 %였다.

사료에 없는 에밀레종 전설

성덕대왕신종은 ‘봉덕사종’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종이 완성된 후 걸린 사찰이 봉덕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까지 이 종의 유명한 별칭은 따로 있었다. ‘에밀레종’이다.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같다는 표현은 바로 에밀레종의 전설을 떠올린 것이다. 이 에밀레종 전설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같은 정사는 물론이고 각종 야사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19세기 말 서양인들의 채록에서 처음 보인다. 즉 1895년 구한말 선교사인 호러스 앨런(1858~1932)이 <코리안 리포지터리>(4월호)에 기고한 ‘서울의 큰종’에 나온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의 지시로 서울에 큰 종을 제작하려고 전국적으로 구리를 모았다. 그때 경상도 지방에 구리를 모으러 갔던 관리 앞에 3살짜리 아기를 업고 있던 여인이 나타났다. 그 여인은 “나에게는 구리가 없고, 이 아이뿐인데 이 아이라도 데려가라”고 제안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관리는 그냥 그 집을 떠났다. 우여곡절 끝에 구리를 모은 기술자들이 종을 제작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금이 생기고 깨졌다. 이에 어떤 기술자가 ‘아기 업은 여인 이야기’를 꺼내며 ‘그 여인은 마녀가 틀림없다. 그 마녀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종은 계속 깨질 것’이라고 아뢰었다. 결국 가련한 아이는 쇳물에 던져졌고, 종은 마침내 완성됐다. 이후 종을 칠 때마다 깊고 풍부한 음색으로 긴 음률을 맞추며 ‘아(Ah)-메이(mey)-라(la)’ 소리를 냈다. 이는 ‘Mother’s fault(어미탓)’라고 하는 소리다. 이것은 쇳물에 던져진 아기의 울음소리다.

성덕대왕신종은 최근까지 ‘에밀레종’으로 알려졌다. 마치 종소리가 마치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같기 때문이었다. ⓒ Shutterstock

에밀레종=서울 보신각종

1901년, 교육자인 호머 헐버트(1863~1949)는 <코리안 리뷰>(1월호)에 시 ‘종의 영혼(The Spirit of The Bell)’한 편을 쓴다. 이 시에서 헐버트는 ‘종 제작의 어려움과 한 마녀가 아기를 바치는 장면’을 전한다.

“…(쇳물) 속에 아이의 생명이 흐르고 있었다…동굴 같은 목구멍에서 나온 것은 종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에미(Emmi), 에미(Emmi), 에미(Emmi), 에밀레(Emmille)’였다. ‘어머니, 슬픕니다. 오 나의 어머니!’”

헐버트는 ‘에미’, ‘에밀레’ 대목에서 각주를 달아 ‘종을 쇠가 아닌 나무 막대로 치면 울림 있는 엠(Em) 소리가 난다. 이 소리의 유사성(‘Em과 에미’) 때문에 그 전설이 생겨났을 것’이라 풀이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묘사한 에밀레종은 경주 성덕대왕신종이 아니라 ‘서울 보신각종’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밀레종 전설은 앨런(1895)-헐버트(1901)-<별건곤>(1929)으로 이어지는 동안에도 성덕대왕신종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밀래=성덕대왕신종

그런데 1934년 10월 18일 자 매일신보에 언론인 류광열이 ‘조선에 현존한 최대의 봉덕사종’을 주제로 흥미로운 기사를 쓴다.

“아이는 그 어미를 원망하여 ‘어밀래(엄마 때문에) 어밀래!’ 하고 울다가 그 소리가 그치면 또 원한이 북받쳐 ‘어밀래!’ 소리를 더 지르며…종소리가 그렇게도 처량하고 또 그치다가는 다시 나는 것이 그 어린아이 원한 때문….”

이것이 성덕대왕신종에 에밀레종 전설을 입힌 첫 번째 기사가 아닐까 생각된다. 또 7년 뒤인 국민신보 1941년 2월 16일 자는 ‘청년동화’란에 성덕대왕신종의 전설을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즉 신종 제작 기술자의 누이가 시주한 아이의 희생 덕분에 종이 완성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완성된 종을 치니 ‘어미! 어미!’하는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즉 1930년대 중반 무렵부터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의 등식이 자리잡힌 것 같다.

성덕대왕신종의 명문에는 “여기에 하늘 종을 본떠 만들었네…맑은 종소리는 북방의 산봉우리에까지 울려 퍼지니 듣고 보는 이 모두 신심(信心)을 일으켜 꽃다운 인연을 진실로 심었다”라고 새겨져 있다.

1901년 교육자이자 국어학자였던 호머 헐버트는 ‘종의 영혼’이라는 시를 발표, 앨런이 소개한 한국 종의 전설을 애절한 어조로 읊었다.

부처의 소리에 아기 공양?

물론 사람 몸에서 배출되는 인 성분이 탈산제의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주장도 있기는 했다. 즉 인 성분이 쇳물 속에 남아 있는 산소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기포를 없애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아이를 희생시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이의 육신에서 추출될 수 있는 극미량의 인으로 12만 근의 황동이 들어간 18.9 t짜리 큰 종을 감당할 수 없다. 또 신라는 502년(지증왕 3)에 순장 제도를 공식 폐지했다.

그런 만큼 8세기 중후반(771), 성덕대왕신종 제작에 아이를 희생시켰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무엇보다 불교에서 종소리는 불음(佛音)이라 한다. 부처의 소리를 내기 위해 사람의 생목숨을 희생한다는 것은 불교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성덕대왕신종에서 에밀레종 전설은 거의 지워진 듯하다. 이제 종에 새겨진 명문 중 한 대목을 인용해 본다. “여기에 하늘 종을 본떠 만들었네…맑은 종소리가…울려 퍼지니 듣고 보는 이 모두 신심(信心)을 일으켜 꽃다운 인연을 진실로 심었구나.” 성덕대왕신종에 글을 새긴 이의 혜안이 놀랍기만 하다. 1250년 후 BTS가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로 전 세계에 꽃다운 인연을 심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