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연구원의 새로운 기준입니다.
글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사진제공
㈜빌리언스플러스
사진제공. ㈜빌리언스플러스
먹방 프로그램 중 아직도 심심치 않게 케이블TV에서 볼 수 있는 ‘엄청 유명한’ 혼밥 먹방 프로가 있으니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孤独のグルメ>이다. 원작은 쿠스미 마사유키가 스토리를 쓰고, 다니구치 지로(谷口ジロー, 1947~2017)가 작화를 한 동명의 만화책이다. 다니구치 지로는 앙굴렘 국제만화제에서도 여러 번 상을 받아서 국제적으로 유명한데 <개를 기르다>, <아버지>, <신들의 봉우리> 등 감명 깊은 작품들이 소개됐다.
인생에서 부담지는 것을 싫어하는 50대 아저씨인 이노가시라 고로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결혼도 연애도 안 하고 술도 안 마신다. 다만 자기 가게도 없이 가방만 들고 수입 잡화를 여기저기 팔고 다닌다. 그런 그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오직 행복하게 밥을 먹을 때이다.
드라마는 테레비 도쿄에서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시즌 10으로 제작되었다. 구성은 아주 단순해서 잠깐 일 이야기가 나오지만 음식을 먹을 핑계일 뿐, 끝내자마자 밑도 끝도 없이 그 유명한 장면인 “하라가 헷따(배가 고프다)” 라고 외치는 줌 아웃 장면이 나온다. 분주하게 식당을 찾고 주문을 고민하다 음식이 나오면 혼잣말을 하면서 맛있게 먹는다.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스틸 컷 ⓒ㈜빌리언스플러스
2025년에는 테레비 도쿄 개국 60주년 기념으로 극장판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가 나왔는데, 드라마 주인공 고로를 연기한 마스시게 유타카가 각본, 감독, 주연을 맡았다. 옛 애인의 딸에게 의뢰를 받고 파리를 찾은 고로는 고픈 배를 프랑스 음식으로 채운 후, 의뢰인의 집을 방문한다. 거기서 귀향을 포기한 노인으로부터 어릴 때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국물을 찾아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받는다. 단서는 이름이 ‘잇짱지루’이며 육고기, 생선, 해조류와 채소로 만든 감칠맛이 있는 순하고 훌륭한 음식이었다는 것이다. 마음 약한 고로는 팔자에도 없는 음식 재료 찾아 삼만 리를 펼친다.
음식을 먹을 때 우리가 느끼는 맛은 달고, 짜고, 시고, 쓴 네 가지 기본 맛이다. 매운 것은 통각이며, 떫은맛, 구수한 맛은 네 가지 기본 맛이 복합적으로 작용된 것이다. 여기에 뭔가 다른 맛이 있다는 게 동양에서는 인식되고 있었는데, 감칠맛이 그것이었다. 감칠맛은 사전적으로 ‘음식물이 입에 당기는 맛’으로 정의된다.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알려져 있던 감칠맛은, 그 실체, 작용기와 방법이 과학적으로 알려지지 않아 맛으로 인정되지 못했다.
결국 1908년 도쿄제국대학 화학과 이케다 기쿠나에(1864~1936) 교수가 38 kg의 다시마에서 복잡한 과정을 거쳐 30 g의 글루탐산염을 분리하는 데 성공하면서 그 실체가 밝혀졌다. 이는 나중에 물에 녹는 물질로 개량되었는데, 그것이 글루탐산나트륨(MSG, monosodium glutamate)이다. 그 후 가다랑어, 멸치, 액젓, 소고기에서 이노신산(inosinate, IMP), 표고버섯에서 구아닐산(guanylate, GMP) 등 핵산계 조미료가 추가로 발견됐다.
MSG의 발견은 상업적인 성공으로 이어져 아지노모토라는 제품으로 출시됐고, 우리나라에서도 미원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하지만 감칠맛이 공용어로 인정된 것은 77년이 지난 1985년이었고 2002년에야 미국 마이애미대학 연구진이 감칠맛 수용체를 발견했다. 일본에서 발견되어 공용어가 된 쓰나미(Tsunami)처럼 감칠맛은 우마미(Umami)라는 이름으로 통용된다.

이케다 기쿠나에(1864~1936) 교수 ⓒ Wikimedia Commons
네 가지 재료를 찾았지만, 노인이 그토록 원한 여러 감칠맛이 어우러진 느낌은 아니었다. 셰프도 재료가 잘못됐을 거라는 추측을 한다. 비슷한 맛이지만 뭔가 다르다는 것이다.
감칠맛은 재료의 조합에 따라 다른 맛을 나타낸다. 궁합이 잘 맞는 소재로 함께 조리하면 음식의 맛이 좋아진다. MSG가 IMP나 GMP를 만나면 감칠맛이 폭발한다. MSG와 IMP를 50:50으로 섞으면 감칠맛이 7배 증가한다. 그래서 다시마에 가쓰오부시나 멸치를 함께 넣어준다. 또한 MSG와 GMP의 경우, 반반 비율이면 30배가 증가한다. 그래서 국물 요리에 버섯을 넣는다.
감칠맛을 증강시키는 조리법은 나라마다 다르다. 글루탐산과 이노신산을 얻기 위해 일본은 다시마+가쓰오부시, 우리나라는 다시마+멸치, 중국은 배추, 파+닭 뼈의 조합을 쓴다. 이 조합이 불변은 아니어서 원리만 따르면 다른 식재료의 조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혀의 미뢰에 있는 감칠맛 수용체는 글루탐산염이나 핵산염과 같은 물질과 결합해 감칠맛을 느끼게 하는 제5의 맛 수용체이다. 여기에는 주로 T1R1과 T1R3 수용체가 있으며, 글루탐산과 특히 높은 결합력을 보여 감칠맛을 느끼게 된다. 이 수용체는 T1R1과 T1R3이라는 두 가지 단백질이 쌍떡잎 같은 이합체(heterodimer)를 형성해 작용한다. MSG는 T1R1의 안쪽에, IMP는 입구 쪽에서 결합하는데, 이렇게 되면 단백질이 꼭 다물게 되어 더욱 안정적인 결합이 유지되고 감칠맛이 지속된다.
황태덕장의 풍경
고민하던 고로는 노인의 어머니가 어렸을 때 한국에서 살았다는 것과 자신이 한국에서 맛본 황태해장국의 기억을 연결해 황태가 포함된 재료를 완성한다. 분자량이 큰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분해하는 과정에서 감칠맛을 내놓는다. 황태는 겨울 동안 얼고 녹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단백질이 분해되어 글루탐산, 타우린, 메티오닌 등이 풍부하게 나온다. 노인은 대만족을 하며 잇짱지루의 비밀이 밝혀진다.
MSG에 대한 안전성 문제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MSG 자체는 건강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게 요즘의 대세이다. 하지만 우리가 맛으로 음식을 선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음식의 맛은 음식이 가지고 있는 영양분을 알려주는 지시자다. 감칠맛은 단백질의 지시자이며 그래서 고기가 맛있는 것이다. 고기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우리에게 그 존재를 알린다. 따라서 고기 없는 감칠맛은 공허한 맛일 뿐이다. 맛이야 있겠지만 우리가 고기를 먹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건강한 식재료에서 우러나오는 맛에 우리가 높은 평점을 줘야 하는 이유가 역설적으로 조미료의 맛이다.

황태해장국 ⓒClipart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