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 과학읽기

유용하 서울신문 과학전문기자
문화체육부장

올해 노벨과학상 주목해야 할 부분은
美 캘리포니아 大·日 강세

올해도 어김없이 10월 초 먼 북구의 나라 스웨덴에서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지난해 노벨과학상의 키워드가 ‘인공지능’(AI)이었다면, 올해 키워드는
‘일본’과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이라 할 것이다.
지난해에는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이 인공지능과 관련된 이들에게 돌아감으로써 다소 파격적이었다고 한다면 올해 노벨상은 다시 전통적인 기초 과학자들 품에 안겼다.
노벨 생리의학상은 면역학자, 물리학상은 양자 물리학자, 화학상은 무기(無機) 화학자들이 수상했다.

생리 · 의학상은 말초 면역 관용 현상 연구자에게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면역 체계가 자기 자신을 공격하지 않도록 조절되는 ‘말초 면역 관용’(peripheral immune tolerance)을 발견한 메리 브렁코(64) 미국 시스템 생물학 연구소 박사, 프레드 램즈델(65) 소노마 바이오테라퓨틱스 과학 고문, 시몬 사카구치(74) 일본 오사카대 교수가 선정됐다.

면역 관용은 면역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물질이나 조직에 대한 면역계의 무반응 상태를 말한다. 특정 항원에 대해 사전에 노출됐을 때 유도되는 면역 관용은 외부에서 항원이 들어왔을 때 면역에 의해 제거되는 면역 반응과는 다르다. 면역 관용은 가슴샘과 골수에서 작용하는 중추 면역 관용, 림프샘을 비롯한 다른 조직에서 작용하는 말초 면역 관용으로 분류된다. 면역 관용 발생 메커니즘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효과는 유사하다.

우리 몸의 강력한 면역 체계는 잘 조절되지 않으면, 신체의 장기를 공격할 수 있다. 면역 관용은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 정상적인 생리 상태를 유지하게 해주는데, 말초 관용은 다양한 환경 물질에 대한 면역계의 과민 반응을 예방한다.

노벨 위원회는 “이 연구 결과는 암과 자가면역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의학 기술 개발은 물론 장기 이식의 성공률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며 실제로 다양한 치료의 임상 시험 단계에 있다”라고 설명했다.

양자역학 탄생 100주년 맞아 양자 물리학자 품에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양자 터널링과 에너지 양자화를 연구한 존 클라크(83)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프랑스 국적의 마이클 데보레트(72) 예일대 교수 겸 UC산타바바라 교수, 존 마티니스(67) UC산타바바라 교수가 선정됐다. 최근 양자 컴퓨터, 양자 암호, 양자 반도체 등의 양자역학을 이용한 기술의 실용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때마침 양자역학 탄생 100주년을 맞은 올해 정통 물리학자에게 노벨상이 돌아가면서 더욱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양자역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초미시 세계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런데, 물리학계에서는 양자역학 효과를 보여줄 수 있는 시스템 최대 크기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런 가운데, 올해 수상자들이 손에 들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큰 시스템인 전기 회로로 실험해 양자 터널링과 에너지 양자화 모두를 증명해 낸 것이다.

1984~1985년에 이번 수상자 3명은 전기 저항이 0인 물질인 ‘초전도체’로 만든 전자 회로를 이용해 실험했다. 이들은 두 개의 초전도체 사이에 나노미터 두께의 매우 얇은 절연체 막을 끼워 넣은 ‘조지프슨 접합’ 구조물을 만들었다. 이를 이용해 눈으로 볼 수 있는 거시적 규모에서 전압 변화를 측정함으로써 양자 터널링 현상을 관찰하고, 동시에 이 시스템이 에너지를 아무 값이나 흡수,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정해진 양으로만 주고받는 ‘에너지의 양자화’도 관측에 성공했다.

기초 과학자들에게 돌아간 올해의 노벨과학상. 해당 사진은 역대 노벨상과 수상자들의 정보가 전시된 노벨상 박물관 ⓒShutterstock

화학상은 만능 분자 제작한 무기화학자들 품에

그런가 하면, 노벨 화학상은 탄소 포집, 독성 가스 검출 및 포집, 화학 반응 촉진 등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분자 구조를 연구·개발한 기타가와 스스무(74) 일본 교토대 교수, 리처드 롭슨(88) 호주 멜버른대 교수, 오마르 M. 야기(60)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를 선정했다. 지난해 노벨 화학상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응용 분야에 돌아가면서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위원회는 다시 기초 분야에 수상의 영광을 돌렸다.

이번 수상자들은 기체와 기타 화학 물질이 드나들 수 있는 넓은 공간을 지닌 분자 구조물인 ‘금속-유기 골격체(MOF)’를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 2000년대 초부터 계속 노벨 화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돼 왔다. MOF는 금속 이온이 모서리에 위치하고 탄소 기반 유기 분자들이 이를 서로 연결하는 구조다. 금속 이온과 유기 분자가 결합한 구조는 내부에 큰 공간을 가진 MOF 결정을 형성한다. MOF를 이루는 구성 성분을 바꾸면 특정 물질을 선택적으로 포집, 저장할 수 있으며, 화학 반응을 구동하거나 전기를 통하게 할 수도 있다.

이에 노벨위원회는 “이번 수상자들의 획기적 발견은 자연 분해되지 않는 물질인 과불화화합물(PFAS)을 물에서 분리하고, 물이나 토양에 녹아 있는 미량의 화학 물질을 분해하는 한편 이산화탄소 포집, 사막에서 물 공급, 수소에너지 저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이 가능해 인류가 직면한 중대 과제 해결에 기여할 잠재력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시아 기초과학 맹주 ‘일본’의 비결은

올해 노벨 과학상 수상자 면면을 살펴보면 미국 캘리포니아대 소속이 4명으로 총 9명의 수상자 중 절반에 이른다. 한국 사람들에게 더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일본의 2개 분야 수상이다. 이로써 일본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올해까지 27명. 이 중 22명이 2000년 이후에 쏟아져 나왔다.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노벨과학상은 미국, 독일, 영국 3강 체계였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일본이 독일을 제치고 3강의 한 축을 차지하게 됐다. 또,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어느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끌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일본이 명실공히 아시아 기초과학의 맹주로 우뚝 서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21세기 들어 일본의 약진은 최근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100여 년이 넘는 기초과학 전통 때문이다. 또, 기초과학 분야 강화를 위해 물질적 투자보다 사회환경과 교육여건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도 일본 과학계의 특징이다. 일본 역시 경제 상황에 따라 기초연구 투자비가 늘거나 줄기도 한다. 그렇지만, 기초과학을 경제 논리에서 접근하기보다 과학문화라는 차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도전적이고 독창적 연구에 대해서는 적더라도 꾸준히 지원한다.

동시에 하나에만 몰두하는 ‘오타쿠 문화’도 기초과학에 강한 일본을 만든 배경이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파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직 남아 있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연구자를 키우는 토양이 됐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유학파들보다 국내파들이 많다는 점이다. 그리고, 명문대가 아닌 다양한 대학 출신의 수상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는 오랫동안 일본 과학 연구 전체의 저변이 확대되면서 거점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과학기술 지원 정책의 모토인 ‘선택과 집중’과는 다른 결을 보인다는 분석이다.

더 볼만한 기사

초록공감 사랑나눔

연구원 거점지역과의 상생 협력을 위한
‘원자력 아카데미’, 소통의 문 활짝 열다 外

도시 속 과학읽기

가우디를 넘어 모바일 박람회의 도시로,
스페인 바르셀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