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연구원의 새로운 기준입니다.
글
충코 크리에이터
연말이 다가오면 행사가 많아집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축제에 가기도 합니다.
왜 사람들은 연말을 바쁘게 보낼까요?
한 해가 끝나가니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되기 때문일 겁니다.
인생을 충실히 즐기지 않은 것, 사랑을 충분히 나누지 않은 것….
아쉬움이 많아 평소 안 하던 일도 용기를 내 해보게 됩니다.
‘끝’은 생각을 깨우는 경종입니다. 만약 한 해의 끝이 없다면 우리는 지나간 365일을 돌아보는 일을 훨씬 더 소홀히 하게 될 겁니다. 끝없이 이어진 벌판에서는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 무뎌집니다. 벌판이 끝나고 강이나 산이 대지를 가를 때 우리는 비로소 내가 발 디딘 이 땅의 위치를 명확히 돌아보게 됩니다.
삶 자체에 대한 성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삶의 끝을 마주할 때 비로소 삶 전체를 천천히 돌아보게 됩니다. 고대 그리스의 한 신전에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경구가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한 해석에 따르면 이 말은 ‘너 자신이 죽을 존재임을 알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모든 게 언젠가 끝난다는 걸 직시하면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고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삶에 회의를 느꼈습니다. ‘왜 살아야 하지? 이대로 모든 게 다 끝나버려도 상관없지 않나?’ 이런 생각으로 몹시 괴로웠습니다. 이 문제에 어떻게든 답을 찾고 싶었던 저는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보다 똑똑한 과거의 사람들이 무언가 해답을 내놓지 않았을까 기대했습니다.
그때 집어 든 책 중 하나가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었습니다. 거기서 하이데거는 삶의 끝, 즉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주장에 반대했습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육체의 죽음과 완전한 죽음은 다릅니다. 몸이 죽으면 자신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질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추정에 불과합니다. 죽음 후에 나는 사라질까요, 사라지지 않을까요? 아마 이 수수께끼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습니다. 그건 바로 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죽고 나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내가 완전히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큼은 확실히 있습니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우리가 평상시 이 가능성을 마주하길 피한다고 주장합니다. 마치 자신이 죽지 않을 존재인 것처럼, 끝이 없는 생명체인 것처럼 산다고요. 하이데거는 우리가 평소 죽음에 대해 생각하거나 남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마저도 이런 도피를 돕는 역할을 한다고 봤습니다. 막연하게 죽음의 표면에 대해 생각하면서, 정말로 내가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진지하게 마주하지는 않는 거죠. ‘나는 이미 생각해 봤어’라는 생각이 오히려 생각을 막는 겁니다.
‘내일 죽는다면 오늘 뭐 할래?’ 이런 질문을 통해 정말로 죽음을 생각하게 될까요? 어쩌면 우리는 ‘내가 실제로 내일 죽는 건 아니잖아’하고 안도하며 또다시 도피하는 수단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걸지도 모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죽어’라고 말할 때는 어떨까요? 어쩌면 ‘나는 아직이야’라는 안심을 위장한 표현에 불과한 걸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은 거의 평생 삶의 끝을 제대로 응시하지 않은 채 살아갑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당장 볼거리가 많다는 이유로 정작 이 모든 경험의 중심에 선 나의 존재가 어디까지인지 살피지는 않습니다.
죽음에 대한 하이데거의 철학적 성찰은 고등학생 시절 삶에 대한 제 의문을 말끔히 해결해 주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게 됐습니다. ‘나는 과연 정말로 삶의 끝을 진지하게 응시해 본 적이 있을까? 나는 삶이 끝나도 상관없지 않나 하는 허무를 느꼈는데, 과연 정말로 삶의 끝을 마주해본 상태에서 그 느낌이 든 걸까? 마음의 여유를 갖고 인생길을 더 걸으며 삶의 끝을 응시하는 경험을 충분히 쌓은 후 판단을 내리는 게 맞지 않을까?’
인생의 많은 오류나 실수는 넓게 보지 못하는 데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시야가 자꾸만 좁아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삶 자체를 넓게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주어진 현실에 골몰하느라 삶의 경계가 어디인지, 이 세계에 대한 나의 경험과 여정이 어디까지인지 조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좁아지면 세계가 좁아집니다.
삶에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시나요? 나는 옳고 타인은 그른 것 같나요? 혹은 나는 저주받았고, 타인은 축복받은 것 같나요?
아직 이릅니다. 지금의 그 판단이 인생 최후의 판단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끝을 살필 여유, 삶의 더 넓은 지평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을 때, 비로소 최선의 판단이 흘러나올 겁니다. 당신은 그럴 가능성을 품은 존재입니다.
충코
유튜브 <충코의 철학>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 일상과 철학을 연결하여 통찰 거리를 담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서울대학교와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