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 칼럼

최성민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미국 연구로 설계 수출,
한 번으로 끝낼 수 없다

지난 4월 17일, 원자력연구원이 주도한 컨소시엄이 미국 미주리대학교로부터 20메가와트(MW)급 차세대 연구용 원자로의 초기 설계 사업을 수주했다. 원자력 기술의 종주국인 미국에 한국이 연구로 설계를 수출한 것이다. 불과 66년 전인 1959년, 우리나라는 미국으로부터 첫 연구용 원자로(TRIGA Mark-II)를 도입하며 원자력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전형적인 기술 수입국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출발점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기술 수출국이라는 새로운 위상에 올라섰다. 금번에 체결된 연구용 원자로 초기 설계 계약은 단순한 산업적 성과를 넘어, 대한민국의 원자력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음을 상징하는 중요한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정부의 꾸준한 투자와 정책적 지원, 그리고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기술 축적을 통한 도전과 성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술 자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걸어온 오랜 노력의 결실이다.

연구로 분야만 보더라도 그 여정은 분명하다. 1995년, 한국형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HANARO)’의 개발은 우리나라가 연구로를 독자적으로 설계하고 건설할 수 있음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됐다. 2009년에는 요르단에 연구용 원자로를 성공적으로 수출하며 기술력과 사업 역량 모두를 국제적으로 입증해 냈다. 현재는 수출형 연구용 원자로인 기장 연구로 건설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번 미국 수출은 이 모든 경험과 성과가 집약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번에 수주한 초기 설계는 신규 원자로 건설의 첫 단추다. 부지 조건, 환경 영향 등 설계에 필요한 사전단계의 정보를 분석하는 것으로, 전체 사업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 단계다. 해당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후속 단계인 상세설계와 실제 건설로 이어질 것이며, 우리나라가 이를 수주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확대되고 있는 세계 연구용 원자로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은 한층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성과를 일회성 이벤트로 끝내지 않는 일이다. 정부는 연구로 기술을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장기적 안목에서의 연구개발 투자와 전문 인력 양성에 정책적 집중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건설 중인 기장 연구로의 적기 완공과 가동 중인 하나로 연구로를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시설로 도약시키는 것이다.

연구용 원자로는 핵분열 반응을 통해 중성자를 생산하는 소형 원자로로, 그 활용 범위는 매우 넓다. 생산된 중성자는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의 안정적 공급은 물론, 재료 조사시험, 고성능 전력 반도체 제조, 기초과학 연구, 이차전지 및 약물 전달 물질 등 첨단소재 개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 자원으로 사용된다. 이처럼 연구용 원자로는 국민 건강 증진과 첨단 산업 경쟁력 강화, 그리고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하는 국가전략 인프라라 할 수 있다. 기장 연구로의 적기 완공과 하나로 연구로를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시설로 도약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 또 다른 이유다.

대한민국 원자력 기술은 지금,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기술 수입국에서 기술 수출국으로, 뒤따르던 나라에서 앞서가는 나라로 도약하는 지금이야말로, 그 흐름을 이어가기 위한 국가적 의지와 전략적 실행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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