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과학읽기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사진제공 ㈜마인드마크

왜 갈등 해결이 필요한가
<시빌 워: 분열의 시대>

2025년 세계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전쟁으로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상황이다. 선거 이전 미국의 정치적인 혼란도 여전히 이어지는 모양새다. 사회 전체가 정치적, 인종적, 문화적, 경제적 견해 등에 따라 극단적으로 분열된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정보 불확실성, SNS에 대한 의존도 증가, 대응에 대한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많은 나라에서 분열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2024)는 가까운 미래의 미국에서 전체주의 연방 정부와 분리주의 세력 사이에 벌어진 내전이 배경이다. 이 와중에 반군이 수도를 점령하기 전에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인터뷰하기 위해 뉴욕에서 워싱턴 D.C.까지 여행하는 종군 기자 4명이 1400 km의 여정에 오른다. 전쟁의 상처와 인간성 말살, 분열주의의 폐해를 잘 그린 디스토피아 전쟁 영화이자 로드무비, 성장영화로도 볼 수 있다.

<엑스 마키나>, <서던 리치: 소멸의 땅>를 연출한 알렉스 가랜드(Alex Garland, 1970~)가 감독을 맡았다. 완숙한 연기를 한 커스틴 던스트가 유명 사진기자 리 역, 와그너 모라가 친화력 좋은 인터뷰 기자 조엘 역, 요즘 떠오르는 젊은 여배우인 케일리 스패이니가 종군기자 지망생 제시 역을 맡았고, 관록의 스티븐 헨더슨이 원로 기자 새미 역으로 출연했다. 스토리와 연기만큼 절제된 영상과 음악으로 깔끔한 작품이 나와서 역시 A24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소규모 배급사로 시작한 A24는 감독에게 전권을 주는 파격으로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성 짙은 영화를 만들어 내는 개성 있는 제작사로 알려져 있다. A24의 대표 작품으로는 <브루탈리스트>(2024), <애프터 양>,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더 웨일>(이상 2022), <미나리>(2021), <레이디 버드>(2017), <문라이트>(2016), <엑스 마키나>(2014) 등이 있다.

2020년 미국 대선이 트럼프에 대한 바이든의 승리로 결정됐고, 이에 대한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을 일으킨 지 1년 만인 2022년에 제작이 결정됐다. 아직도 코로나 팬데믹은 진행 중이어서 사회 분열이 심화되어 가던 시기였다. 충격적인 소재지만 현실과 닮아서 그런지 흥행도 성공했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 컷

사회 분열의 원인

사회 분열의 주된 원인으로는 정치적 분열과 경제적 불평등이 꼽힌다. 여기에는 정치적 갈등, 정치적 양극화, 정치 신뢰 감소 그리고 소득 불평등, 고용 불안정, 경제적 불확실성 등이 하위 요인으로 포함된다. 하나의 문제에서 유발된 것이 아니라 여러 문제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서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

물론 정치적 양극화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념적 양극화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양당 시스템에 기반을 둔 양극화는 민주주의의 기능적 측면으로 간주됐다. 뚜렷한 정책 대안의 제시, 활발한 참여 유도, 강력한 정체성 형성 그리고 견제와 균형이 강화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 차이가 극단적이고, 만성적이며, 점차 편협해지면 보통 유해하고 병리적으로 바뀐다.

컬럼비아대 심리학과 교수인 피터 T. 콜먼(Peter T, Coleman)은 자신의 책 <분열의 시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상상스퀘어, 2022)에서 현재의 분열을 만드는 원인이 단순하지 않고 다양한 원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분열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는 여러 원인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갈등을 야기하는 근본적인 역학 구조를 해체하고 재정립해야 갈등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콜먼 교수는 이는 복잡계적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주장한다.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Wikimedia Commons by TapTheForwardAssist

카오스와 복잡계

카오스 이론(혼돈 이론, Chaos Theory)과 복잡계(Complex System)는 구별해야 한다. 카오스 이론은 이중 진자 같은 구성 요소가 비교적 단순한 계에서 일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복잡한 운동을 가리키고, 복잡계는 수많은 변수가 상호작용하는 계를 말한다. 대통령 선거나 국제관계 등 수많은 변수가 상호 작용하는 경우가 복잡계의 예인데, 이 경우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인다. 카오스 이론에서 복잡계로 확장되어 왔다.

카오스 이론에서 ‘나비 효과’는 유명한데, 이는 미국 MIT의 기상학 교수 에드워드 노튼 로렌츠(Edward Norton Lorenz, 1917~2008)가 진행했던 한 강연 제목을 “브라질에서 한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는가?” 라고 이름 붙인 데서 유래됐다. 1963년 발표된 로렌츠의 끌개(Lorenz Attractor)를 나타내는 아래 사진은 마치 나비처럼 보이지만 ‘나비 효과’는 여기서 나오지 않았다. ‘나비 효과’는 초기조건의 민감성을 나타낸다. 즉 초기조건이 아주 조금만 달라져도 결과는 큰 차이를 만든다는 것인데 반대로 이를 극복한다면 결정론적 이론이 된다는 뜻이다.

로렌츠의 끌개(Lorenz attractor), ⓒWikimedia: Wikimol, public domain

복잡계는 카오스와는 달리 수많은 요소가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구성 요소의 단순한 합보다 복잡한 특성을 갖는다. 각 요소의 속성만으로 전체 시스템을 설명하기 어렵다. 이렇게 미시적인 부분의 특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전체로서 나타나는 복잡한 현상을 ‘창발 현상’이라고 부른다. IMF구제금융 시 금 모으기 운동, 붉은 악마 신드롬 같이 어떤 단체가 조직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자발적인 상호작용으로 발생한 것이 그 예이다. 다른 나라의 경제난이나 경기 응원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한국만의 현상이었다.

세상은 하나의 의견으로 통일된 적이 한 번도 없다. 문제는 현대 세계의 불안정성이 증가하면서 그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다방면에서 문제의 진단 및 해결책을 모색하는 반향이 일고 있다. 분열은 양극화이고, 서로 간의 믿음의 부재, 악마화, 대화의 상실이 뒤따르거나 원인이 된다. 그럼에도 이를 해결해야 할 사회의 지도층인 정치인이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 속 기자들처럼 멀리서 빠져 있으면서 관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콜먼 교수의 책에는 체로키 인디언 장로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손자에게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싸움은 네 안에서 일어난단다. 네 안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지. 한 마리 늑대는 두려움, 분노, 시기, 탐욕, 오만, 이기적 자아를 나타내고, 다른 늑대는 기쁨, 평화, 사람, 희망, 친절, 너그러움, 믿음을 나타낸단다. 네 안에서 벌어지는 싸움과 똑같은 싸움이 다른 사람에게서도 일어나고 있단다.” 손자는 잠시 생각하고는 이렇게 물었다. “어느 늑대가 이길까요?” 늙은 장로는 대답했다.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기지.” 나의 마음뿐 아니라 타인의 마음도 헤아리는 현명함이 절실한 때이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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