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1+02 Vol.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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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우 칼럼

과학은 충분히 설명되고 있는가

글. 충청투데이 조정민 기자

과학기술 관련 기사는 넘쳐난다. 인공지능, 에너지, 원자력, 바이오까지 하루에도 수십 건의 과학 뉴스가 쏟아진다. 정보의 양만 놓고 보면 과학은 더 이상 낯선 영역이 아니다. 그럼에도 과학기술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과 불안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정보는 늘었는데, 이해는 따라오지 못하는 듯한 이 괴리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기자로서 과학기술 기사를 쓰다 보면 종종 이런 질문에 부딪힌다. ‘나는 과연 이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가.’ 보도자료를 토대로 연구 성과를 전달하고 수치를 정리해 기사를 내보내지만 독자가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하기 어렵다. 전달은 했지만 설명은 부족했을지도 모른다는 고민은 늘 남는다.

문제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다. 오히려 전문적인 정보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다. 연구자에게는 익숙한 개념과 용어가 독자에게는 맥락 없이 던져진다. 그 사이에서 과학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판단의 대상’이 된다. 찬반 논쟁으로 단순화되거나, 막연한 불안의 대상으로 소비되는 이유다.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기술은 신뢰를 얻기 어렵다.

최근 과학계에서도 이와 맞닿은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이 연구 현장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디까지를 인간의 판단 영역으로 남겨둘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연구 윤리와 신뢰, 결과의 해석 책임을 둘러싼 질문 역시 커지고 있다. 기술의 진보 자체보다 그 결과를 사회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지가 더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

과학기술의 속도와 사회의 이해 속도가 어긋나는 장면은 반복돼왔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증폭되고 그 과정에서 설명의 공백은 오해로 채워진다. 이는 특정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을 사회에 전달하는 구조의 문제에 가깝다. 연구는 빠르게 진전되지만 그 의미를 풀어내는 언어는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지점에서 기자 역시 자유롭지 않다. 속보 경쟁과 분량의 제약 속에서 과학 기사는 종종 결과 중심으로 압축된다. ‘무엇을 했다’라는 사실은 전하지만, ‘왜 중요한지’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때가 많다. 과학을 쉽게 만들려는 시도가 오히려 맥락을 생략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공공 연구기관의 역할도 여기에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성과가 사회 속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 중요해지고 있다. 과학기술이 신뢰를 얻는 방식은 정답을 제시하는 데 있지 않다. 그 과정과 의미를 차분히 설명하는 데서 비롯된다.

과학은 점점 우리 일상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더 나은 설명일지도 모른다. 전달을 넘어 이해로 이어질 때 과학기술은 비로소 사회와 안정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기자로서, 그리고 과학을 바라보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