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1+02 Vol.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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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시보기

경이로운 내 꿈속의 나,

<바닐라 스카이>

2026년은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 1840~1926)의 서거 100주년이다. 이에 따라 세계적으로 인상주의의 아버지를 기리는 기념행사와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수련 연작>으로 유명한 모네는 1871년 파리 근교 아르장퇴유로 이주해서 7년 동안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중 <아르장퇴유의 센강(The Seine at Argenteuil)>(1873)은 크림색이 도는 아침 하늘을 몽환적으로 그려 영화의 제목이자 별칭으로 ‘바닐라 스카이’라 불리게 됐다.

글.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당신에게 행복은 뭔가요?, 바닐라 스카이

잘생긴 톰 크루즈가 못생긴 얼굴로 나온 스릴러/SF 영화인 <바닐라 스카이>(2001)는 자각몽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카메론 크로우 감독은 이미 1996년에 <제리 맥과이어>로 톰 크루즈와 합을 맞춰본 경험이 있다. 남다른 매력과 탄탄한 재력으로 수많은 여성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이빗 에임즈(톰 크루즈 분)는 아버지로부터 유력 출판사와 잡지사를 물려받은 금수저다. 심심풀이로 줄리(카메론 디아즈 분)를 만나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느 날 자신의 생일 파티에 온 친구 브라이언의 애인 소피아(페넬로페 크루즈 분)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다. 데이빗과 소피아는 순식간에 서로에게 끌리며 뜨거운 연인 사이가 되어간다.

하지만 데이빗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줄리는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혀 이들을 미행하고, 마침내 데이빗과의 동반자살을 기도한다. 간신히 데이빗은 목숨을 건지지만, 얼굴과 육체가 처참하게 망가진 것을 알고 괴로워한다.

하지만 소피아의 헌신을 통해 얼굴과 몸은 원래대로 회복되고, 물려받은 사업을 번창시켜 다시 출판계의 스타가 되는 등 꿈같은 삶을 산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줄리의 환영에 괴로워하며 엄청난 사고를 치게 된다. 혼란에 빠진 데이빗은 자기가 LE라는 회사와 계약해 사망 후 냉동인간이 되었고, 특약으로 ‘살아있는 꿈’이라는 자각몽 프로그램을 계약했음을 알게 된다. 이제까지 벌어진 일들은 이미 사망한 그의 꿈속에서 자신이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제야 진실을 깨달은 데이빗은 어떤 삶을 선택했을까?

일요일 새벽 3시간 동안 뉴욕 타임스 스퀘어를 비우고 찍은 오프닝 장면은 100만 달러를 들인 당시까지 영화 역사상 가장 비싼 장면으로 알려졌다. 스페인 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가 원작인데, 여기서도 페넬로페 크루즈가 소피아역을 맡았고, 영화 초반 데이빗의 생일 파티에 당시 예지몽이 소재인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2002)를 함께 찍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축하객으로 깜짝 출연했다.

영화에는 또 다른 인상파 그림이 나오는데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의 <사이프러스 나무가 보이는 밀밭>이다. 인상파 그림과 크림색 하늘은 데이빗이 자각몽 상태에 있음을 관객에게 귀띔해 준다. 마치 영화 <인셉션>(2010)에 나오는 토템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귤나무가 가득한 포토존

클로드 모네, 아르장퇴유의 센강, 1873 © Wikimedia, Public domain

노리매 곳곳의 포토존

빈센트 반 고흐, 사이프러스 나무가 보이는 밀밭, 1889 © Wikimedia, Public domain

자각몽이란

자각몽(lucid dream)은 꿈속에서 자신이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꿈이다. 자각몽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4세기에 쓴 <꿈에 관하여>에서 ‘잠들어 있을 때 종종 내 의식 속에 지금 나타나는 것이 꿈일 뿐이라고 선언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라고 언급했을 만큼 그 역사가 오래됐다. 자각몽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네덜란드의 정신과 의사 프레데리크 반 에덴(Frederik Willem van Eeden)이다. 그는 500여 개의 꿈을 분석해 작성한 <A Study of Dreams>(1913)라는 논문에서 꿈을 9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면서 그중 7번째 유형을 자각몽으로 명명했다.

하지만 꿈 자체의 정의가 의식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의식이 있다는 것은 모순적으로 보였다. 또한 개인의 꿈속에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증언에만 의존하며, 잠을 잘 때는 눈 아래 전체가 마비된 것과 동일하여 어떤 신호도 보낼 수 없기 때문에 최근까지 과학적으로 그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주 어려웠다.

1970년 중후반, 모두 대학원생이던 영국 헐앤드리버풀 대학교의 키스 헌(Keith Hearne)과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스티븐 라버지(Stephen LaBerge)는 독자적인 연구 끝에 공교롭게도 눈 시선 운동을 연구해 동일한 결론을 도출했다(이런 경우는 의외로 과학 분야에 많다). 수면다원검사 전에 피시험자와 자각몽에 빠지면 눈동자를 왼쪽-오른쪽-왼쪽-오른쪽(LRLR)으로 순서대로 움직이라고 약속했다. 평범한 꿈속에서는 눈동자의 움직임(EOG)은 무작위적이다. 수면 중 평상시보다 안구 전위도 차트의 진폭이 훨씬 큰 뚜렷한 신호를 포착해 자각몽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현재, 이 방법은 모스부호와 같이 자각몽의 표준 검사방법으로 사용된다.

암 치료 전문 기관인 ‘시티 오브 호프 재단’의 신경생물학자 라훌 잔디얼(Rahul Jandial) 박사는 저서 <당신이 잠든 사이의 뇌과학>에서 ‘오랫동안 신비주의자와 괴짜들의 영역으로 치부됐던 자각몽이 이제 진지하게 연구할 가치가 있는 새로운 형태의 의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수면다원검사 © Wikimedia, National Heart Lung and Blood Institute(NIH)

자각몽의 활용

의학계에서는 자각몽을 이용해 악몽의 퇴치, 기면병과 조현병의 치료 등에 활용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치료외적 방법으로 창조적 문제 해결, 메타 인지적 성찰 등 고차원적 의식 상태를 응용해 보려는 연구도 진행 중이고, 안전한 자각몽 상태에서 운동 훈련을 통한 평상시 운동 능력 향상을 시도해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도 했다. 자각몽을 유도하는 장치와 신경 화학물질의 개발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화는 마지막에 묻는다. “당신에게 행복은 무엇인가요?” 이 물음에 데이빗은 “진짜 인생을 살고 싶어요. 이제는 꿈꾸고 싶지 않아요.”라고 답한다. 흔히 우리 일생을 일장춘몽이라고도 한다. 비몽사몽 중에 깨어나서 허겁지겁 현실 속에서 헤매다가 멍하게 백일몽을 꾸기도 한다. 당신은 꿈속에 살고 있는가 현실에서 살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