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여래설법도(Buddha Shakyamuni Preaching to the Assembly on Vulture Peak)’. 2006년 3월 미국 LA 카운티 미술관 아시아 미술실에 부임한 김현정 큐레이터는 흑백 폴라로이드 사진 1장과 함께 목록에 간신히 명칭만 올린 대형 불화 1점을 발견했다. 수장고를 샅샅이 뒤지던 김현정 큐레이터는 한쪽 구석에서 동그랗게 말려있던 ‘설법도’를 찾아냈다. 예사 그림이 아니었다.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인도 영축산에서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였다.
무엇보다 불화에 적힌 화기(畵記·그림의 내력 등을 쓴 기록)가 놀라웠다. ‘건륭 20년(1755·영조 31) 6월 설악산 신흥사에서 영산해회(靈山海會)를 마치고 봉안한다’는 것과 ‘주상전하 이씨와 왕비전하 서씨, 세자저하 이씨의 수명이 만세·천세에 이르기를 기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즉 1775년 신흥사에서 왕(영조·재위 1724~1776)과 왕비(정성왕후·1692~1757), 세자(사도세자·1735~1762)의 만수·천수무강을 기원하며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다. 불화의 상태가 끔찍했다. 예리한 칼로 그어진 채 무려 6개로 산산조각 나 있었다.
김현정 큐레이터는 소장품 중에 신흥사 ‘시왕도’(十王圖, 1798년·정조 22) 6점의 존재도 확인했다. 시왕도는 죽은 자를 심판하는 저승세계 왕 10명을 그린 불화를 가리킨다. 시왕도 6점의 상태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었다. 6조각으로 갈가리 찢긴 ‘영산회상도’가 문제였다. LA 카운티 미술관 측은 가로 406.4 ㎝, 세로 335.2 ㎝에 달하는 미국 소재 한국 불화 중 가장 큰 영산회상도를 수술대에 올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수술 과정, 즉 복원 과정 전체를 일반에 공개하는 특별전시까지 구상했다. 복원 전문가로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의 박지선 용인대 교수팀이 선택됐다.
복원팀은 한국에서 1톤 컨테이너 3대 분량의 장비를 가져갔다. 2010년 9월부터 시작된 현지 복원은 미술관 전시장이었던 도자실을 비워 마련한 공개 작업장에서 진행했다. 열린 공간에서 펼치는 복원이다 보니 관람객들의 호응이 대단했다. 복원팀은 영하 10도 정도의 강추위 속에서 쑤어 10년 이상 묵힌 풀을 썼고, 비단은 수백 년 된 것처럼 광선을 쏘이고 염색해서 강도를 낮춰 사용했다. 오염 제거에만 한 달이 걸렸다. 드러난 오염만 제거할 뿐 세월의 흔적까지 지우면 안 됐다. 7겹이나 되는 배접지를 제거하는 데만 두 달 이상 걸렸다. 이후 다시 새로운 배접지로 7겹을 붙이는 작업이 진행됐다.
무엇보다 복원팀이 신경 쓴 부분이 있었다. 이 그림은 누군가 그림을 가로로 크게 두 번 칼질 해서 세 조각 낸 다음 윗부분만 다시 세로로 세 번 베어냈다. 그렇게 석가모니의 어깨와 가슴을 사정없이 잘라놓았다. 범인은 오로지 그 커다란 불화를 돌돌 말아 반출할 생각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6조각으로 찢긴 불화의 상처를 감쪽같이 없애야 했다. 마침내 지난한 1년 4개월의 과정을 거쳐 다시 온전한 영산회상도 그림이 2011년 12월에 복원·공개됐다. 영산회상도가 공개되자 많은 관람객이 미술관을 찾았다. 할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 등 유명 인사들이 찾아왔다.
영산회상도가 공개되자 많은 관람객이 미술관을 찾았다. 할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 등 유명 인사들이 찾아왔다.
LA 카운티 미술관의 전경
이렇게 LA 카운티 미술관이 미국 최초로 기획한 불화 복원 공개 프로젝트가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그러나 한국 불교계 입장에서 마냥 박수만 칠 수 없었다. 왜냐. 불교에서는 ‘환지본처 본지풍광(還至本處 本地風光)’이라는 말이 있다. ‘환지본처’는 본래의 장소로 돌아온다는 뜻이고, ‘본지풍광’은 태어날 때부터 지닌 부처의 성품을 일컫는다. 무엇보다 불화는 예술품이기 이전에 종교적인 예경의 대상인 ‘성보(聖寶)’라 할 수 있다. 때문에 본래의 자리에 있을 때 더 온전하게 빛날 수 있다. 게다가 영산회상도 1점 및 시왕도 6점 등이 불법 반출된 문화유산이라면 어떨까. 1943년에 제정된 미국 연방 도난품법은 ‘불법 반입된 유물을 유통 및 매매할 경우 재산형 및 몰수형의 처벌을 내린다’라고 규정했다. 더욱이 2014년 대한민국의 국가유산청과 미국 국토안보국(DHS) 소속 이민관세청(ICE)은 ‘한미 문화재 환수 협력 양해각서’를 맺기도 했다. 그러니 불법 반출품이 확실하면 미 연방법과 한미 양해각서에 따라 국내 환수되어야 마땅했다.
LA 카운티 미술관은 미술관 차원에서 복원작업 과정 전체를 일반에 공개하는 특별전시까지 결정했다. 이에 따라 복원 전문가인 박지선 용인대교수(정재문화재복원연구소)팀이 참여했다.
다행히 이 불화들이 미군의 불법 반출품이 분명했음을 알리는 증거가 속속 드러났다. 두 미군 장교가 1954년 5~6월과 그 해 10~11월에 각각 신흥사를 찾아와 찍은 사진 자료가 결정적이었다. 즉 1954년 5~6월 미군 통신장교(폴 뷰포드 팬처)가 신흥사 극락보전과 명부전을 찍은 사진에 보였던 ‘영산회상도’(극락보전)와 ‘시왕도’(명부전)가 10~11월 미 해병 중위(리처드 부르스 락웰)가 촬영한 사진에는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그러니까 신흥사 영산회상도와 시왕도는 1954년 5~11월 사이 누군가에 의해 뜯겨 반출되었다는 얘기가 된다.
설악산을 포함한 속초 지방은 1951년 8월 미군정 치하로 편입된다. 이 지역에는 한국군 제1군단사령부과 미군 항만사령부가 주둔하게 됐다. 이는 민간인 출입 금지구역이 된다는 뜻이다. 미군정은 한국전쟁이 끝나고도 1년 4개월이 지난 1954년 11월까지 이어진다. 신흥사 불화가 사라진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렇더라도 꼭 미군의 소행으로 단정할 수 있을까. 그러나 한국군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서양에서 기독교 성화를 훼손할 수 없듯이 한국에서 불화에 칼자국을 낼 강심장이 어디 있겠는가. 무엇보다 그때 뜯긴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미국에서 확인됐다. 범인은 미군 중 누군가로 특정될 수밖에 없다.
1954년 5~6월 미군통신장교인 폴 뷰포드 팬처가 찍은 설악산 신흥사 극락보전의 내부 모습(왼쪽 사진)과 같은 해 10~11월 미 해병 중위인 리처드 브루스 락웰이 찍은 극락보전 내부 모습(오른쪽). / 속초시립박물관 제공
그때 사라진 불화가 왜 6개로 산산조각 난 채, LA 카운티 미술관으로 흘러 들어갔을까. LA 카운티 미술관이 이 영산회상도를 소장하게 된 것은 1998년이었다. 뉴햄프셔 홉킨튼 지역에서 살던 매리 S 프렌치라는 인물이 대리인을 통해 “아들의 집 다락방에서 발견했는데, 중국에서 건너온 벽지 같다”고 판매를 의뢰했다. 그걸 미술관 측이 사들인 것이다. 아무튼 ‘미군=불법 밀반출자’라는 증거가 차고 넘치자, 국내 불교계와 시민 사회단체 등이 환수를 추진했다. 다행히 LA 카운티 미술관 측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LA 카운티 미술관은 공공 미술관의 명예를 중요시 여겼던 것이다. 마침내 LA 카운티 미술관이 소장했던 영산회상도 1점과 시왕도 6점은 2020년 7월 성대한 환영식과 함께 환수됐다. 무엇보다 6조각으로 산산조각 난 채 밀반출된 ‘성보’가 66년 만에 귀환한 것이다.
2025년 11월 강원 속초 신흥사가 돌려받은 시왕도 중 제10 오도전륜대왕도. 미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기증 형식으로 반환했다. / 국외소재문환유산재단 제공
아직 맞춰지지 않은 퍼즐이 있었다. ‘시왕도’다. 앞서 밝혔듯 저승세계 10명의 왕을 그린 시왕도는 10점이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LA 카운티 미술관이 소장했다가 반환된 작품은 6점뿐이었다. 남은 4점 역시 미국 내 어디엔가 흩어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
추적자들이 나섰다. 신흥사 반출 문화유산의 행방을 쫓고 있던 속초시 문화재제자리찾기위원회(이하 위원회)였다. 미국 내 미술관·박물관의 소장품을 검색하던 위원회 관계자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품에서 1점을 찾아냈다. 그것이 신흥사에서 반출된 시왕도 10점 중 마지막 작품인 ‘제10 전륜대왕도’였다. 그런데 이 작품을 비롯한 4점도, 이미 환수된 6점처럼 1954년 5~11월 사이에 한꺼번에 반출된 것일까. 그건 아니었다. 1953년 5~6월 미 통신 장교인 팬처가 찍은 명부전 사진에는 이미 ‘제8 평등대왕’과, ‘제10 전륜대왕’ 등의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2~4점은 이미 1953년 5~6월 이전에 누군가 떼어 갔다는 얘기다. 그중 1점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발견된 것이고….
그건 또 누가, 언제 가져간 것일까. 위원회는 용의자를 특정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해방 후 한국전쟁 전까지 북한 치하 기간 신흥사를 자주 놀러 왔던 주민(1934·1937·1940년생)의 증언을 청취했다. 주민들은 “전쟁 직전까지 신흥사의 모든 시설이 멀쩡했다”라고 입을 모았다. 위원회는 이런 증언을 토대로 만든 영상을 시왕도 1점이 소장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보냈다. 결국 2차례의 협상을 통해 2025년 11월, 반환이 성사됐다. 아직 끝이 아니다. 시왕도 10점 가운데 3점이 미국 내 어디엔가 남아있을 것이다. 추적자들은 남은 3점의 행방을 지금도 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