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과학읽기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사진제공 HBO max

곰팡이가 창궐한 세상,
<더 라스트 오브 어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시즌1 포스터, 사진제공. HBO max

한류 덕을 보는 것 중 바나나맛우유가 있다. 그런데 바나나맛우유의 맛은 우리가 지금 과일 가게에서 사 먹는 바나나 맛이 아니다. 처음 출시되었던 1974년 6월 당시만 해도 유통되는 바나나는 대부분 그로 미셸(Gros Michel)이라는 한 품종이었다. 하지만 푸사리움 옥시스포룸(Fusarium oxysporum)이라는 곰팡이에 의해 발생한 파나마병으로 전 세계 생산지가 쑥대밭이 됐다.

바나나는 씨앗이 없기 때문에 꺾꽂이를 통해 복제된다. 따라서 우리가 먹는 모든 바나나는 유전자가 동일한 클론이다. 식품업계는 동일한 품종으로 규격화된 바나나가 생산과 유통에서 편리했기 때문에 전 세계 농장의 품종을 그로 미셸로 통일해서 키웠다. 하지만 한 품종만으로 이루어진 작물은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져 병충해에 약하므로 하나의 병이 발생하면 모조리 갈아엎어야 하는 위험성을 항상 안고 있다.

(왼쪽) 그로 미셸(Gros Michel) 바나나 ⓒ Shutterstock
(오른쪽) 캐번디시(Cavendish) 바나나 ⓒ Shutterstock

이후 업계는 대체품으로 파나마병에 저항성이 있는 캐번디시(Cavendish) 품종으로 갈아탔다. 하지만 바나나맛우유 제조사는 원래 그로 미셸의 맛이 더 뛰어나고 소비자들에게 각인되어 있어 당초의 성분을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바나나맛우유의 맛과 향이 지금 유통되는 과일 바나나와는 다르게 된 것이다. 사실 바나나를 비롯한 밀, 감자, 옥수수 등은 단일 품종의 재배가 보편화되어 환경이 변화하면 모두 몰살될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식물질병의 80 % 이상이 곰팡이에 의한 것이다. 또한 곰팡이는 세균 같은 원생동물과는 달리 인간에게 더 가까운 진핵생물이다. 따라서 곰팡이에게 적용되는 약품은 인간에게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또한 변이의 가능성이 커서 항진균제에 대해 저항성을 가지기 쉽다. 곰팡이는 인간에게 페니실린같이 이익도 주지만 바나나나 아일랜드 감자병처럼 무시무시한 위험성도 동시에 줄 수 있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 중에서 가장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드라마인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HBO max에서 2023년 1월에 시즌1이 처음 방영(한국 2025년 3월, 청소년 관람불가)되었고 2025년 4월 시즌3의 제작이 공식 발표되었다.

영화는 1968년 미생물학자 2명이 나오는 인터뷰로 시작된다. 가장 위험한 존재로 곰팡이(Fungi)를 꼽고 동충하초균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예방약도, 치료 약도 없다고 말한다. 현재 곰팡이는 인체의 체온인 36도에서는 살지 못하지만, 기온이 상승하고 거기에 적응하는 종이 생기면 더 이상 행운을 바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2003년 곰팡이인 동충하초균에 감염된 인류는 대부분 좀비가 되고, 소수만이 정부군, 저항군이나 약탈자로 살아남는다. 어린 딸을 감염자에게 잃은 조엘(페드로 파스칼 분)은 20년 뒤 동충하초에 면역이 있는 14살의 엘리(벨라 램지 분)를 격리구역에서 빼내 미국을 가로질러 파이어플라이라는 비밀 단체로 데려가는 임무를 떠맡게 된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하던 두 사람은 생사의 고비를 넘으면서 점점 부녀 사이와 같은 감정을 갖게 된다.

동명의 게임은 소니의 게임 스튜디오인 너티 독(Naughty Dog)에서 개발한 플레이스테이션용 삼인칭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6월에 출시됐다. 인간에 대한 고뇌와 가치관의 갈등 등 기존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어 성공한 작품으로 꼽힌다.

개미에 침투한 동충하초, ⓒWikimedia Commons by David P. Hughes, Maj-Britt Pontoppidan

동충하초균

게임과 드라마의 주요 소재는 자낭균류에 속하는 동충하초균(冬虫夏草菌, Cordyceps sinensis Sacc.)이라는 곰팡이다. 좀비곰팡이(Ophiocordyceps unilateralis)로 알려진 이 곰팡이는 드라마에서는 감염자에게 물리거나 포자를 통해 호흡기로 감염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감염되면 균사체가 뇌 조직에서 자라고 숙주가 된 인간은 기억과 이성을 잃은 좀비로 변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려는 폭력적인 광기에 휩싸인다.

동충하초는 겨울에는 곤충이고 여름에는 약초가 된다는 신비로운 버섯으로 알려져 있다. 곤충에 침입하여 외골격을 깨고 내부로 침입한 후 곤충의 내장을 양분으로 겨울을 나고 여름에는 자실체가 성장하는 균류이다. 곤충의 신경을 장악하여 생존에 유리한 환경으로 움직인다. 호박 속에 들어 있는 곤충 화석으로부터 백악기 전기부터 존재했다고 밝혀졌다. 아직 인간에게 전염된 사례는 없다.

늘어나는 곰팡이 질병

2016년 11월 4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사망률 및 이환율 주간보고서>에는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의외의 곰팡이 감염이 등장했다. 전 세계적으로 갑자기 동시에 나타난 이 질병은 진단이 어렵고 치사율이 30~60 %에 이를 정도로 높았다. 감염의 원인은 효모의 한 종류인 칸디다 아우리스(Candida auris)였다. 강력한 스테로이드 약물을 복용하는 환자,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 장기 이식 환자같이 면역력이 저하된 환자에게 자주 발생하는데 특히 진균제에 내성이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갑자기 세계 곳곳에서 창궐했다는 점도 매우 특이했다.

칸디다 아우리스 ⓒShutterstock

칸디다 아우리스는 2006년 일본 환자의 귀에서 처음 분리되었다. 같은 해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되었다. 2009년에는 우리나라 노인 한 명과 유아 두 명의 혈류에 이 곰팡이가 침입해서 유아 한 명만 살아남았다. 대한임상미생물학회는 2025년 3월에 신종 다제내성(두 가지 이상의 약물에 내성이 있는) 진균인 칸디다 아우리스의 국내 감염 사례 증가에 따라 법정 감염병 지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멀리 있는 질병이 아닌 것이다.

일반적으로 포유류는 높은 체온이라는 ‘곰팡이 필터’로 감염을 피해 왔지만, 기온이 올라가면서 이를 돌파하는 곰팡이가 늘어날 수도 있다는 점이 문제다. 게다가 곰팡이 질환은 치료의 예후도 안 좋다. 인간만큼 단일 종이 빽빽하게 분포한 종도 없다. 직접적인 인체 위험뿐만 아니라 단일 작물화된 식량 체계에 타격을 가할 수도 있어 식량 고갈에 따른 기아 문제도 발생 할 수 있다.

기후변화로 어쩌면 이제 곰팡이의 진격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2000)에 보면 곰팡이 포자가 떠도는 부해(腐海)에서 사는 인간들이 등장한다. 그 상황에서도 인간은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애니메이션에서 그린 세상이 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포스터, 사진제공.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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