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연구원의 새로운 기준입니다.
글 서영진 여행칼럼니스트
홍콩은 로망의 도시다.
눈부신 스카이라인과 레트로풍 2층 트램이 도심을 가로지르는 풍경은 여행자의 뇌리에 짙게 남아있다.
홍콩은 거대 자본력을 밑거름 삼아 IT 혁신의 선두 주자로도 부상하던 도시다.
최근에는 싱가포르 등에 맹주 자리를 내준 뒤, 힘겨운 재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홍콩의 위세는 한때 대단했다. 아시아 최고의 관광, 쇼핑 도시였으며 세계를 대표하는 금융 허브로 군림하기도 했다. 거대 자본은 홍콩이 아시아 첨단 IT의 대표 허브로 박차고 나가는 데 큰 몫을 했다.
2004년에는 홍콩 남부에 아시아 최초의 IT 산업단지인 사이버포트(Cyberport)가 조성됐고,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1,800여 개의 기술 테크기업들이 입주해 문전성시를 이뤘다. 사이버포트는 판교 테크노밸리 등 아시아 IT 신도시의 표본 모델이 되기도 했다.
홍콩의 질주는 최근 몇 년 사이 주춤해졌다. 코로나로 큰 시련을 겪었고, 중국과의 합병 후속 조치로 각종 규제책이 발표되면서 해외자본과 연구인재들이 이탈하는 수순이 이어졌다. 아시아 금융 허브의 위상은 흔들리고 있으며, 첨단산업의 버팀목이 된 벤처 캐피털 규모 역시 대폭 줄어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홍콩 정부는 허들을 뛰어넘어 글로벌 자본을 확보하고 젊은 인재 재영입을 위해 고심 중이다. 홍콩이 본거지이며 생명과학, 천문학, 수학자에게 상을 수여하는 ‘쇼상’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공고하게 정착시킨다는 계획이다. 쇼상의 부대 행사에 세계의 유명 석학들을 연이어 초청하고, 정부 차원의 수십억 달러 과학기술 투자 의지를 표방하고 있다.
높은 빌딩과 레트로풍 2층 트램의 조화는 홍콩의 시그니처라 해도 무방하다. ⓒUnsplash
‘흔들리는’ 홍콩에서 미래 과학의 열망과 자취를 엿볼 수 있는 홍콩과학기술대학교와 우주박물관, 과학박물관이다. 홍콩과학기술대는 91년 설립된 이공계 종합대학으로 연구소와 연구센터가 총 52개에 달한다. 이공계의 신흥 명문으로 우뚝 섰으며 매년 ‘유니콘 데이’ 행사를 개최해 첨단 스타트업의 국제 협력을 꾀하고 있다.
침사추이에는 돔 형태의 우주박물관과 과학박물관이 도심 한가운데 가깝게 들어서 홍콩의 과학 시대를 강변한다. 우주박물관은 우주 체험 공간으로 인기가 높으며, 오로라, 천체 영화관람 외에 달에 착륙하는 우주선 체험, 로봇팔 운석 채취 체험, 무중력 체험 등을 즐길 수 있다. 과학박물관은 광학, 소리, 전기 등의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갖추고 있으며, 공의 낙하를 통해 에너지전환을 보여주는 4층 높이의 에너지전환 기계가 명물이다.
우주박물관은 다양한 체험활동이 가능하다. ⓒShutterstock
침사추이 역 일대는 미래뿐 아니라 홍콩의 과거와 현재가 함께 어우러진 곳이다. 나단 로드에 나서면 70년대 모습을 간직한 낡은 아파트와 해변 산책로, 명품 거리가 이어진다. 캔톤 로드에는 전 세계 명품 가게들이 즐비하며. 해변가 워터프론트 프롬나드는 홍콩 연인들의 아지트로 자리매김했다.
구룡반도 북쪽의 템플 거리는 야시장으로 명성 높다. 낮에 한적했던 거리는 어둠이 깔리면 불야성을 이룬다. 노천에서는 경극 공연이 펼쳐지며 운세를 점치는 천막도 줄지어 도열한다.
밤이면 더 밝아지는 템플거리ⓒUnsplash
홍콩섬에서 로망은 무르익는다. 2층 트램이 오가는 센트럴의 란콰이퐁이나 소호에는 영화로웠던 홍콩의 모습이 담겨있다. 편안한 노천 바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는 란콰이퐁은 흡사 서울의 홍대 앞을 닮았다. 낮에는 한산한 식당가이지만 해가 저물면 온갖 클럽들이 불을 밝히며 이방인들을 유혹한다. 격조 높은 레스토랑들은 두 블록 건너 소호지역에 밀집해 있다.
성완 지역을 돌아다니는 2층 트램은 여행객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Shutterstock
센트럴역에서 메트로로 한 정거장인 성완지역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낡은 건물 사이에 손때 묻은 골동품 상점이 가득하다. 성완은 1841년 영국군이 홍콩에 주둔한 이래 상업지구로 성장한 곳이다. 20세기 중반 홍콩 곳곳에서 재개발 붐이 일었을 때도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남겨졌다.
밤이 이슥해지면 구룡반도 남단의 홍콩문화센터나 빅토리아 피크로 발길을 옮긴다. 세월이 변해도 홍콩은 여전히 밤이 탐스럽다. 홍콩 전역에 180 m를 넘는 초고층 빌딩이 120여 개. 해변에 늘어선 마천루 사이, 빅토리아항을 에워싸는 빛의 향연은 홍콩의 화려했던 과거를 투영한다.
화려한 홍콩의 밤은 놓쳐서는 안 될 하이라이트다.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