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연구원의 새로운 기준입니다.
글·사진
생활모험가
서툴렀던 첫 캠핑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배낭 하나만 메고 떠난 첫 백패킹.
1박 2일의 짐을 단 하나의 배낭에 담아야 했던 그 도전은, 무모함과 설렘이 뒤섞인 시작이었다.
처음부터 백패킹을 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바로 ‘간소함’이었다.
작고 가벼운 장비들, 마치 소꿉놀이를 연상케 하는 백패킹의 캠핑 도구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런 짐이라면 배낭 하나에 충분히 넣고 가뿐히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첫 캠핑 전날, 배낭을 꾸려보니 생각보다 짐이 너무 많았다. 하나하나는 작고 가벼웠지만, 그 작은 것들이 쌓이니 금세 배낭이 터질 지경이었다. 이것이 없으면 불편할 것 같고, 저건 혹시 몰라 챙겨야 할 것 같고, 모든 짐에 이유가 붙었다. 결국 짐을 꾸리는 데만 3~4시간을 허비하고서야 백패킹 준비가 끝났다. 하지만 겨우겨우 짐을 욱여넣은 배낭의 모양새는 엉망이었고, 미처 다 담지 못한 짐은 배낭에 매달거나 손에 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나 어설프고 서툴렀지만,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이건 분명 내 삶의 새로운 페이지였으니까. 다음 날, 캠핑장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며 창밖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어제까지는 회사로 향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오늘은 커다란 배낭을 멘 낯선 여행자의 모습이다. 버스를 타는 순간, 마치 전혀 다른 세계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캠핑장에 도착해 작은 텐트를 치고, 커피 한 잔을 끓였다. 도시의 소음 대신 나무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들렸고, 작은 화롯불 앞에 마주한 고요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멈춤’이었다. 아기자기한 장비들은 소꿉놀이하듯 소박한 즐거움을 줬고, 하루의 리듬은 단순했다. 도시에서는 심심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를, 그 단순함이 오히려 큰 위로로 다가왔다. 자연 속 하루의 집은 너른 품으로 나를 안아주었고, 도시에서 지친 나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져 주었다. 자연은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자연의 그런 묵묵함이, 나는 참 좋았다.
그렇게 캠핑의 매력에 폭 빠진 나는 주말이면 배낭을 메고 전국을 다니며 ‘주말의 작은 집’을 짓는 백패커가 됐다. 신기한 건, 그렇게 고민고민하며 꾸린 배낭 속 짐 중에서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 꼭 한두 가지씩은 생긴다는 점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진짜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자연스레 구분됐다. 매번 짐이 줄어들수록 마음은 더 가벼워졌다. 마치 일상에서 불필요한 감정이나 걱정까지 함께 내려놓는 기분이었다. 꼭 가져가야 할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배낭은 점점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자연에서 얻은 에너지로 늘 가득 차 있었다. 주중엔 도시에서 분주한 생활인으로, 주말엔 배낭 하나만 메고 자유롭게 자연을 누비는 모험가로. 나만의 밸런스를 맞추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을 주말마다 배낭을 메고 자연으로, 계절 속으로 다니며 캠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이 되었다. 캠핑의 감동은 어느새 글이 되고, 사진이 되고, 영상이 됐다. 함께 캠핑을 시작한 남편은 카메라를 들었고, 나는 작은 노트에, 휴대전화 메모장에, 사부작사부작 글로 적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심스레 SNS에 사진 한 장, 글 한두 줄을 올렸고, 그것이 조금씩 쌓이며 사람들과의 연결로 이어졌다. 캠핑이 준 위로와 에너지를 누군가에게도 전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콘텐츠가 됐다. 몇 년 간의 기록은 쌓여 책이 됐고, 그렇게 여섯 권의 책을 펴냈다. 인스타그램에서 시작된 기록은 브런치와 블로그, 유튜브로 이어졌고, 강의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캠핑 이야기였지만, 점차 삶과 일, 동기부여, 나다운 삶을 찾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게 됐다.
그렇게 나는 작가가 되었고, 인플루언서가 되었으며, 유튜버이자 강연가가 되었고, 지금은 1인 출판사의 대표로 살아가고 있다. 그저 캠핑이 좋아서 시작했던 기록이 새로운 도전의 문을 계속해서 열어준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캠핑을 하고 있다. 여름이면 계곡 옆 그늘을, 가을이면 단풍 물든 산길을, 겨울엔 눈밭 위에서 불멍을 즐긴다. 모닥불 앞에 앉아 있으면, 가끔은 처음 텐트를 치던 날이 몽글몽글 떠오른다. 허둥지둥 짐을 꾸리던 그 어설펐던 날들이 지금은 떠올리면 웃음이 나오는 다정한 기억이 됐다. 그날 이후로 내 삶엔 작은 변화들이 생겨났고, 나는 그 변화를 따라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흘러왔다. 익숙한 길이 아닌, 조금은 낯선 길을 향해 또 한 걸음 내딛고 싶어지는 마음. 그 설렘이 아직도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이 참 좋다.
한 번의 작은 용기가, 내 안의 가능성을 조금씩 깨워주었다. 캠핑은 지금도 내게 조용한 방식으로 다음 도전을 건네고 있다.
생활모험가
캠핑·여행 전문 크리에이터이자 작가. 오랜 시간 해온 다양한 캠핑 경험을 글, 영상, 강의 등 여러 매체와 콘텐츠로 나누고 있다. 「콘텐츠로도 먹고삽니다」, 「작은 캠핑, 다녀오겠습니다」, 「캠핑하루」, 「숲의 하루」, 「리브 심플리」, 「시작은 브롬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