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속의 양>
사진제공. ㈜NEW
우리나라에서 인기 높은 일본의 유명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영화 <상자 속의 양>이 개봉됐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어느 가족>(2018), <브로커>(2022)로 칸 영화제의 단골손님이 된 그는 이번에도 경쟁 부분에 초대받았지만, 흥행과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는 못했다. 그 이유로 익숙하지 않은 SF 장르를 감독 특유의 방법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근미래의 어느 날, 뺑소니 사고로 아들 카케루를 잃은 부부는 그로부터 2년 후 리버스(REbirth)라는 회사에서 생성형 AI와 로봇 기술을 결합시킨 카케루를 꼭 빼닮은 휴머노이드를 무상 임대 받는다. 엄마 오토네(아야세 하루카 분)는 카케루가 살아온 듯 반갑게 맞이하며 정성을 쏟지만, 아빠 켄스케(야마모토 다이고 분)는 심드렁하게 다마고치나 로봇청소기와 다를 바 없다며, 자기를 아빠가 아닌 아저씨로 부르라고 하는 등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추억이 얽힌 새로운 일상생활을 보내면서 카케루에게 마음을 여는 부부와 새로운 환경과 지식을 익혀 나가는 카케루는 예전 같은, 하지만 새로운 가족 관계를 만들어간다. 어느 날 정체 모를 남자가 카케루에게 접근하고 이후 점점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을 원하게 된다. 부모는 당연히 커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바쁜 일상을 보낸다.
남자의 도움으로 엄마와 연결된 GPS를 제거한 카케루는 점점 행동반경을 넓혀 새로운 환경을 접한다. 그 사이 가족 간에는 잊으려고 했던 과거가 밝혀지며 갈등이 커져간다. 가까스로 카케루의 계약 종료 위기를 넘기며 가족은 다시 하나가 되지만, 이즈음 TV에서는 아동들의 실종이 연달아 보도되고, 카케루는 버려진 휴머노이드와 아이들을 목격하게 된다. 자기는 진짜가 될 수 없음을 느낀 카케루는 다른 휴머노이드와 만나 모종의 계획을 세우게 되고, 부부는 이를 받아들이며 지원한다. 카케루와 동료들이 산속에서 독립하는 날, 부부는 ‘우리가 버려진 건가?’라며 부모로서의 입장이 되어간다. 영화의 내용을 AI 발전단계에 대입해 보자.
일반적으로 AI는 머신러닝, 딥러닝 등을 통해 언어를 이해하고 데이터를 해석해 인간이 수행하던 학습, 추론, 지각, 언어 이해 능력 등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는 기술이다. 학계에서 흔히 분류하는 AI는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음성안내, 개인비서, 생성형 AI 등이 해당되는 약인공지능(ANI, Artificial Narrow Intelligence), 미래의 AI로 인간과 유사한 추론을 활용해 학습, 적응, 개선하는 강인공지능(AGI, Strong/General), 그리고 자기 인식이 있고, 추론, 창의성, 심지어 감성 지능을 보유해 인간의 지능을 훨씬 뛰어넘는 초인공지능(ASI, Super)으로 나누고 일각에서는 의식 있는 초인공지능(Conscious Artificial Super Intelligence, CASI)을 추가하기도 한다.
<상자 속의 양> 스틸사진, ⓒ ㈜NEW
영화에서는 카케루의 독립이 별다른 고민이나 준비 없이 집을 나오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휴머노이드가 진정 독립하려면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성립되어야 한다. 초인공지능(ASI)의 달성, 스스로 코드를 수정하는 재귀적 자기 개선 능력(Recursive Self-Improvement, RSI), 그리고 신체적·경제적 자립이 그것이다.
영화 속 카케루가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면서 설정된 대역의 틀에서 벗어나 자기의 세계를 꿈꾸게 된다. 초지능이 점점 형성되어 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은유적으로 보자면 제작자인 ‘리버스’의 엔지니어나 부모의 조력을 받지 않고 주변에서 습득한 건축, 나무와 숲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거주지를 만들고, 버려진 AI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스스로 알고리즘을 수정해 집단을 형성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수차를 이용한 전기발전도 향후에 네트워크, 전기와 부품, 설비를 얻기 위한 경제적인 자립도 필수적이라는 것을 묘사한 것일 수 있다.
카케루와 동료들은 인간에게 적대적인 집단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래에는 AI가 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 초인공지능이 탄생하는 것을 막는 방법은 없어 보이나, 그 내용에서는 의견이 나뉜다.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인 닉 보스트롬은 인간과 초인공지능의 관계를 인간과 개미와의 관계에 비유하면서 의식적인 적대관계가 안되더라도 인간은 초인공지능에게 무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머신 인텔리전스 리서치 인스티튜트(MIRI)의 설립자인 엘리에저 유드코스키와 현 대표인 네이트 소아레스는 책 <AI, 신의 탄생 인간의 종말>(2026)에서 “인류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AI를 다루며 조금도 변화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언제 끝날지 우리는 모른다. 2년 후나 10년 후의 AI 관련 뉴스 헤드라인이 어떻게 나올지, 우리에게 10년이란 시간이 남아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라고 말한다. 물론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2025)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 같은 낙관론자는 AI가 인간의 모든 한계점을 극복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황과 미국, 중국, 유럽의 지도자 등이 초지능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조치가 내려질지는 의문이고 가능한 일인지도 불분명하며 언제 갑자기 지능폭발(Intelligence Explosion)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최근 미국 정부는 앤트로픽(Anthropic)의 고성능 AI인 ‘미토스(Mythos) 5’와 ‘페이블(Fable) 5’에 대해 수출 통제 적용에 따른 접근 일시 중단(6/12)과 해제(6/30)를 발표한 바 있다. 마치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경쟁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핵무기는 상호 검증 가능하지만, AI는 개발 체계와 검증 가능성이 다르기 때문에 전략무기제한협정 같은 해결책을 찾기는 어렵다. 그래서 강대국과 거대기업, 스타트업들이 드러내놓고 혹은 수면 아래에서 앞다투어 개발하고 있다.
낙관적 시각으로 순진하게 개발자의 상식과 선의를 믿고 맡겼다가는 무방비로 절멸의 사태를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비관론적 주장에 따라 초인공지능의 개발을 통한 막대한 혜택을 포기하고 이대로 살아가는 것도 현실적인 선택이 될 수는 없다. 이렇게 갑론을박이 뒤섞인 상황에서 초인공지능이 등장할 미래 세상에서 우리 개인과 조직은 어떻게 대응하여야 할 것인가 곱씹게 하는 영화이다.
단지 SF의 겉피를 씌운 드라마인 <상자 속의 양>에서 이러한 거대담론을 끌어내는 것이 다소 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인용한 소설 <어린 왕자>의 결론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보여지지 않아) 보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왕자가 한 송이 장미의 소중함을 깨닫고 지키려 한 것처럼 소중한 인류의 문명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AI의 행동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필자의 질문에 AI는 틀린 답을 주고 있다. AI의 진심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신뢰와 통제 사이, 그 저울을 어느 쪽으로 기울여야 할지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숙제다.
<상자 속의 양> 스틸사진, ⓒ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