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3+04 Vol.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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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우 칼럼

AI 해고와 과학자

글. 조선일보 박지민 기자

인공지능(AI)발 대규모 해고가 현실화되고 있다. 재무 플랫폼 래셔널FX는 올해에만 4만 5,363명의 기술직 종사자가 해고됐다고 집계했다. 이 중 약 20 %에 해당하는 9,238건의 감원이 AI 관련이다. 기업들은 ‘AI 개발에 집중하기 위한 구조조정’, ‘AI로 인한 효율성 증가로 인한 감원’ 등을 배경으로 내세운다. 기업들이 다른 이유로 진행했을 해고를 AI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는 ‘AI 워싱’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AI 위협론은 여전히 거세다. 아직 한국에서는 본격적인 AI 감원이 이뤄지지는 않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AI로 타격을 받는 것은 초급 개발자다. 기존에는 단순 기능 구현이나 버그 수정, 테스트 코드 작성, 문서 정리 같은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작업을 맡으며 경험을 쌓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제는 AI가 이런 단순한 업무를 넘어 코드 작성·검토·설계까지 수행한다. ‘주니어’의 역할을 AI가 훨씬 적은 비용으로 대체한 것이다. 스탠퍼드대 디지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개발자 등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에서 경력직 고용은 안정적으로 유지됐지만, 초급 인력(22~25세) 고용은 16 % 줄어들었다. 쉽고 간단한 일 처리를 할 사람이, 더는 필요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 연구에도 AI가 활발하게 접목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앞다퉈 과학자들의 연구를 돕는 AI를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게 구글의 ‘AI 공동과학자(AI co-scientist)’다. 연구자가 자연어로 연구 목표를 적으면, AI가 검증 가능한 가설과 문헌 요약, 실험 방법까지 제시해 준다.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공동과학자에게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는 간 섬유증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시판되는 약물 중에 가능성이 높은 것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AI가 생의학 논문을 검토해 찾은 3개의 약물 후보 중 2개가 실제 실험에서 효과를 보였다. 림프종 치료제로 쓰이던 ‘보리노스타트’는 특히 효과가 탁월했는데, 보리노스타트를 간 섬유증과 연관 지은 연구는 거의 없었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하기 힘든 일을 해냈다며 연구팀도 혀를 내둘렀다.

AI 탓에 개발자 세계에서 ‘주니어’가 사라진다면, 과학자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앞으로 과학자는 모든 연구 과정을 직접 수행하는 게 아니라, 연구 방향과 가설을 설계하고, AI와 협업하며 오류와 한계를 보완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AI가 논문을 검토하고 가설을 제안하며 실험 방법까지 설계한다면, 초급 과학자의 필요성 자체가 줄어들 수도 있지 않을까. 미래의 과학자는 논문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AI가 만든 가설을 검증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이미 대학원에서는 AI를 쓰지 않고 논문을 쓴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들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논문 초고 작성부터 실험 설계, 복잡한 데이터 분석과 시각화에 이르기까지 AI가 개입하지 않는 분야가 없다는 것이다. 칭화대와 시카고대 연구팀은 4,130만 편의 논문을 분석한 결과, AI를 쓰는 과학자들은 그렇지 않은 과학자보다 3.02배 많은 논문을 내고 피인용 횟수는 4.84배 많다는 결론을 내렸다. AI는 연구 생산성을 높이는 것도 확실하지만, 미래의 과학이 어느 정도까지 인간의 것일지에 대한 질문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