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3+04 Vol. 304

소통·협력·공감한국원자력연구원의 새로운 기준입니다.

길 위에서 추억쌓기

흐드러지는 벚꽃비를 즐기다

하동 화개십리벚꽃길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는 시오리가 좋은 길이라 해도 굽이굽이 벌어진 물과 돌과 장려한 풍경은 언제 보아도 길 멀미를 내지 않게 하였다.’ 소설가 김동리는 자신의 소설 <역마>에서 화개십리벚꽃길을 질리지 않는 풍경이라 칭찬했다. 황홀한 분홍 꽃잎의 향연을 맘껏 즐길 봄이 왔다. 지체없이 하동으로 향했다.

글. 편집실

봄의 한가운데로 향하다

화개십리벚꽃길은 1931년, 주민들에 의해 지어진 이름이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5 ㎞ 구간의 도로가 개통된 것이 계기였다. 하동군 사람들은 성금을 모아 벚나무 1,200그루와 복숭아나무 200그루를 심어 지금의 화개십리벚꽃길을 조성했다. 이곳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걸으면 백년해로한다는 말도 있어 ‘혼례길’이라고도 부른다.

매년 벚꽃이 만개할 시즌이 되면 화개장터 벚꽃축제도 함께 열려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러니 평일, 아침 일찍 이곳을 방문해 여유 있게 구경하기를 추천한다. 3시간이 안 되게 부지런히 운전해 도착한 하동. 온 세상이 만개한 벚꽃에 수놓아진 광경이었다. 고개를 돌려 시선을 보내는 모든 곳에 활짝 펴 바람에 살랑거리는 벚꽃이 가득하다. 날아다니는 벚꽃잎이 길거리에, 담벼락에, 차 위에, 사람들 머리 위에 안착한다. 봄이 흩날린다. 화개십리벚꽃길이 유난히도 더 아름다운 이유는, 햇빛에 받아 반짝거리는 화개천과 이따금 보이는 야생차밭의 초록빛 가득한 모습이 영화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벚꽃에 취해 열심히 거닐다가 화개장터에 들렀다. 화개천이 섬진강에 합류되는 지점에 5일마다 장이 섰던 화개장터.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모여 없는 게 없을 정도로 수많은 식재료와 상품들이 거래되는 대규모의 장이 섰었다고 한다. 지금은 현대식 화개장터가 상설 운영되고 있고, 과거와는 비교할 순 없겠지만 다양한 먹거리와 농수산물, 수공예품 등 볼거리가 많았다. 화개장터의 명물이라는 시원한 재첩국과 은어 튀김으로 배를 채웠다.

하귤나무가 가득한 포토존

아무리 보아도 싫증 나지 않는 벚꽃을 마음껏 감상해 보자.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김지호

노리매 곳곳의 포토존

현실이 된 소설 속 공간

화개장터에서 나와 차를 타고 10여 분을 이동하면 최참판댁 드라마 세트장에 닿게 된다. <토지>는 섬진강이 둘러싸는 하동 평사리의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를 참고해 드라마 세트장으로 조성한 공간이다. 2002년에 완공됐다. <토지>의 주인공인 최치수와 최서희의 일가인 최참판댁과 그 주변 캐릭터들의 생활공간까지 총 14동의 한옥이 재현되어 있는데 조선 후기 생활상을 들여다보며 산책하기 좋다. 집마다 어떤 캐릭터의 집인지 설명해 놓은 안내문이 있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2,000원.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한옥은 들어가 볼 수 있기도 하고, 한옥 내의 창을 통해 하동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넓은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 물줄기가 그림같이 펼쳐져 있는 풍경을 잠시 멍하니 바라본다. 쌓여있던 고민이 잠시 잊혀지는 기분이다. 최참판댁 드라마 세트장은 <토지> 촬영 이후에도 <구르미 그린 달빛>, <미스터 션샤인>, <은애하는 도적님아> 등 다양한 작품들이 계속 촬영되고 있다.

촬영장 내에는 박경리 문학관도 있다. 박경리 소설가의 육필 원고부터 그녀가 사용했던 국어사전, 만년필 등의 유품들, 각종 출판사에서 발행됐던 <토지> 전집, 소설과 관련된 미술작품 등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문학관에서는 토지 문학제를 비롯해 문학 창작 교실을 계속 주최하고 있다.

하귤나무가 가득한 포토존

그림같이 펼쳐지는 풍경을 배경 삼아 기념사진을 남겨볼 것을 추천한다.

노리매 곳곳의 포토존

매화나무로 수놓아진 광양을 둘러보는 것도 추천한다.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김종석

또 다른 봄을 찾아서

화개십리벚꽃길을 거닐며 벚꽃을 즐기다가, 화개장터에서 요기를 해결하고, 약간의 이동을 통해 토지 드라마 촬영장까지 알차게 보낸 여행 코스. 이대로 봄이 가는 것이 아쉽다면 좀 더 이동해 광양의 매화마을까지 섭렵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차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로, 화개십리벚꽃길이 긴 드라이브 코스라면, 광양은 마을 전체가 매화나무로 수놓아져 있어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순식간에 스쳐 지나갈 봄을 마음껏 만끽해 보자. ‘기회가 생기면’이 아닌 기회를 만들어 봄을 즐겨보자. 올해의 봄은 올해로 끝나버릴 테니 말이다. 운전대를 고쳐잡고 광양으로 향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