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3+04 Vol.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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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누기

커피향으로 채우는 시간

이른 아침, 차가운 공기와 계절의 온기가 맞닿는 시간. 조용히 잠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한다. 하루를 여는 첫 의식은 늘 커피다. 정확히 말하면 두 잔의 커피다. 첫 번째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 커피, 두 번째는 출근 전 나를 위한 커피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원두를 계량해 그라인더에 붓는다. 곱게 갈린 커피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부엌과 거실의 공기가 서서히 깨어난다.

글. 심재범 커피 칼럼니스트

첫 번째 커피는 조금 더 부드럽게 내린다. 아직 잠이 덜 깬 사람에게는 날카로운 산미보다 편안한 향과 둥근 단맛이 어울린다. 물의 온도를 조금 낮추고 물줄기도 천천히 조절한다. 커피 향을 따라 아내가 거실로 나오면, 아침이 비로소 시작된다. 누군가에게 첫 커피를 건네는 일은 단순한 음료 준비가 아니다. 커피는 나를 깨우는 음료인 동시에 누군가의 아침을 여는 신호이다.

이렇게 시작되는 아침 덕분에 나는 오랫동안 커피와 가까이 살아왔다. 나는 스페셜티커피를 평가하는 커피 칼럼니스트다. 2011년 미국 보스턴에서 22개 과목의 시험을 통과해 커피 감정사 자격을 취득했다. 커피를 좋아해 미국까지 다녀왔지만, 그때만 해도 스페셜티커피가 이렇게 널리 알려질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스페셜티커피는 단순히 값비싼 커피를 의미하지 않는다. 재배와 가공, 유통의 과정이 투명하게 관리된 커피를 뜻한다. 산지와 품종, 고도와 가공 방식이 분명하게 기록되고, 그 차이가 맛으로 드러난다. 한 잔의 커피에는 생산지의 기후와 토양, 농부의 시간과 노력이 담긴다. 맑은 산미와 또렷한 단맛, 깨끗한 여운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스페셜티 커피를 즐기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핸드드립, 혹은 푸어오버 방식을 가장 좋아한다. 분쇄한 원두 위에 뜨거운 물을 부어 중력과 확산의 과정으로 맛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먼저 소량의 물로 원두를 적셔 내부의 가스를 빼내는 ‘뜸 들이기’를 한다. 이후 물을 나누어 부으며 향과 농도의 균형을 맞춘다. 물의 온도, 분쇄 굵기, 물줄기의 속도와 높이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너무 빠르면 밋밋해지고 너무 느리면 과하게 진해진다. 결국 한 잔의 커피는 작은 변수들의 균형 위에서 완성된다.

커피를 오래 마시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맛을 구분하는 일보다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중요해졌다. 작은 변수 하나가 결과를 바꾼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서두르는 마음이 얼마나 쉽게 균형을 무너뜨리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핸드드립은 몇 분이면 끝나는 과정이지만 그 몇 분 동안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물이 스며드는 속도를 바라보고 향이 피어오르는 시간을 기다린다. 그 짧은 집중이 하루의 리듬을 고르게 만든다.

봄이 가까워진 아침, 창밖의 공기는 겨울보다 한결 부드럽다. 커피잔 위로 옅은 김이 오르고 가벼운 산미와 맑은 향이 천천히 입안에 머문다. 계절이 바뀌듯 마음의 속도도 조금 느슨해진다. 식탁 위에 놓인 두 잔의 커피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오늘 하루도 햇살처럼 서두르지 않고, 커피 향처럼 오래 머물 수 있기를.

커피를 맛있게 마시기 위한 팁

첫째, 원두는 가능하면 분쇄하지 않은 상태로 구입해 마시기 직전에 간다.
커피 향은 분쇄 직후 가장 선명하다. 공기와 닿는 순간부터 산화가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작은 그라인더 하나만 있어도 향의 차이를 분명히 느낄 수 있다.

둘째, 커피는 감각의 음료이면서 동시에 과학의 음료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20 g의 커피를 사용한다면 약 93 ℃ 정도의 물로 40 g을 먼저 부어 뜸을 들이고,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물을 나누어 부으면 비교적 안정적인 추출이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화려한 기술보다 일정한 조건을 유지하는 일이다.

셋째, 봄철에 어울리는 원두로 에티오피아 커피를 추천한다.
긴 겨울을 지나 봄 햇살이 피어오르듯, 에티오피아의 싱글오리진 커피는 장미 같은 꽃 향과 밝은 과일향을 매력적으로 표현한다. 커피리브레, 모모스, 프릳츠와 같은 믿을 만한 커피 회사의 사이트를 참고해도 좋다.

커피를 준비하는 시간은 몇 분에 불과하지만, 그 시간은 생각보다 깊다. 물의 온도와 흐름을 살피는 동안 마음도 자연스럽게 정돈된다. 그래서 내게 커피 타임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하루의 리듬이다. 매일 아침,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는 작은 아침 습관이다. 여러분들에게도 커피와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이 전해지기를 기원한다.

심재범
커피 칼럼니스트

커피를 마시고, 기록하는 커피 칼럼니스트입니다. <카페마실>, <동경커피>, <교토커피> 등의 책을 썼습니다. 싸모님을 누구보다 싸랑하고, 커피를 다음으로 좋아합니다. 참, 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