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포커스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 용융염원자로(MSR)

기원전 4세기경 아리스토텔레스는 태양을 비롯한 모든 행성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 이론을 세웠다. 2세기 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집대성한 후, 종교적 관념과 연결되며 사람들은 2천년 동안 이를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16세기 무렵 폴란드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는 천체 관측 도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와 다른 행성이 공전한다고 가정할 때, 천체 현상을 훨씬 더 정확하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고 주장하며 책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집필했다. 그동안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천문학 체계를 뒤집고, 지금까지 현대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지동설’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고의 틀을 깬 기발한 생각을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라 부르는 이유다.

최근 원자력 연구자들도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으로 새로운 원자로 모델 개발에 접근하고 있다. 바로 ‘용융염원자로(Molten Salt Reactor, MSR)’다. 용융염원자로는 2030년경 상용화를 목표로 둔 미래 혁신 원자로로, ‘제4세대 원자로’ 중 하나다. 핵연료가 냉각재에 녹아있는 형태여서 ‘액체연료 원자로’라고도 불린다. 기존 원자로에서 핵연료가 녹는 것은 가장 피해야 하는 상황으로 꼽혔다. 원자로의 냉각장치가 정지돼 내부의 열이 지나치게 상승하는 중대사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반면, 용융염원자로는 애초에 냉각재와 핵연료를 하나의 액체로 혼합시켜 가동하므로 냉각재가 없어지는 상황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용융염원자로는 핵연료로 우라늄 대신 용융염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용융염은 핵분열성 물질을 포함한 염소(Cl) 또는 불소(F) 화합물을 녹는 점 이상으로 유지한 것이다. 쉽게 말해 고체의 염을 고온으로 녹인 액체 상태다.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염 종류인 소금(NaCl)과 어떻게 다를까? 상온에서 소금을 물에 녹이면 액체인 소금물이 된다. 그러나 소금 자체를 녹는점 801 이상에서 가열하면, 투명한 ‘액체 소금’이 된다. 달고나를 만들 때 하얀 설탕이 녹는 모습과 유사하다.

소금물과 액체소금 둘 다 액체긴 하나, 물리적·화학적 성질은 완전히 다르다. 상온에서 녹인 소금물은 끓는점이 100보다 약간 높은 정도지만, 액체소금의 끓는점은 1,465로 매우 높다. 염 혼합물의 조합이나 비율에 따라 녹는점을 대략 300~500 정도로 낮출 수도 있다. 이처럼 녹는점이 높은 용융염을 핵연료로 이용하면, 원자로 용기가 파손돼 액체연료가 외부에 유출되더라도 걱정이 없다. 상온에서 즉시 굳어 바깥으로 세슘, 스트론튬 등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용융염원자로는 기존 원자로에 비해 그 구조가 매우 단순하다. 우선, 냉각재로 물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물의 증발을 방지하는 가압기가 설치되지 않는다. 또한, 대기압에서 운전하므로 두꺼운 원자로 용기나 커다란 격납용기가 필요 없다. 현재 상용화된 가압경수형원자로는 150기압을 견디기 위해 25cm 두께의 압력용기가 둘러싼 형태인 반면, 용융염원자로는 용융염을 담기 위한 2.5cm 두께의 용기로도 충분하다. 따라서 수 MW(메가와트) 규모의 초소형모듈원자로(MMR)를 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UN 산하 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까지 국제 선박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8년 대비 50%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해운업계에서는 탄소 배출 없는 친환경 선박 엔진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그 중 용융염원자로는 소형화가 가능해 비교적 선박에 싣기 쉽다. 또한, 핵연료의 사용주기가 30년 이상으로 선박 수명 주기와 같아 한번 탑재 후 교체하지 않아도 된다. 이 밖에도 고효율 전력은 물론 수소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어,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평가받는다. 나날이 치열해지는 미래 원자로 개발 경쟁 속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 가져올 변화에 주목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