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연구원의 새로운 기준입니다.
글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봉준호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제작비 1억 2천만 달러가 들어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SF영화다. 설국열차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소설 원작이 있는 작품이다.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영화 플랜B에서 제작하고 워너브러더스에서 배급을 맡았는데 우여곡절 끝에 2025년 2월 말 공개됐다.
아득한 미래 인류의 어느 식민지 행성. 지구의 기억은 아련히 사라지고 인류는 뭉쳐 살면 서로 죽여 멸망한다는 교훈을 얻고 은하계 여기저기로 디아스포라(우주 개척)를 하게 된다. 미키가 태어나 살던 ‘미르가르드’ 역시 개척 식민지였다. 변변치 못한 능력에 직업도 없고 궁지에 몰린 미키에게 개척 후보지인 ‘니플하임’으로 가는 개척단 우주선인 ‘드라카’는 유일한 탈출구이다. 기술도 빽도 없던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임무는 익스펜더블(소모품) 직종이었다. 자세히 읽어보지도 않고 덜컥 지원서를 써서 개척단에게 쓰임새가 많지만 인간 취급 못 받는 익스펜더블이 된다.
우주식민지 개척에는 여행 중 급박한 환경에 대한 대처, 테라포밍 과정에서 생화학적인 환경의 평가 등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상황이 벌어진다. 특히 우주여행은 그때도 비싼 여행이라 우주선 크기와 실을 수 있는 자원에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발전된 유전공학을 이용하면서 익스펜더블을 투입하면 사고가 나도 폐기해 버린 후, 저장된 정보로 다시 프린팅하면 된다. 문제라면 제정신이 박힌 사람은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영화에서는 적당히 각색됐지만 원작인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17>(황금가지, 2022)에 보면 천문학적인 부를 물려받은 소시오패스이자 천재인 앨런 미니코바라는 괴짜가 인간 정신까지 복제하는 데 성공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몫 잡은 그는 ‘콜트’라는 개척지로 이주해 개척민을 속이고 몰래 수많은 자신의 멀티플을 만들어 개척지를 손아귀에 넣는다. 그의 음모는 다행히 ‘파홈’이라는 개척지의 기지로 막을 수 있었지만, 이후 멀티플은 전 우주에서 가장 악독한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됐다.
영화에서 목적지인 니플하임에 도착한 일행에서 주인공 미키는 이미 미키 17이었다. 여행을 시작한 미키 1은 도중에 갖가지 계획된 그리고 계획되지 않은 사고 때문에 죽고 재활용구덩이(사이클러)에 던져진 뒤 16번째까지 복제된 것이다.
재생탱크에서 출력되는 미키
니플하임에 착륙한 미키 17은 탐사 작전 중 실족하여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하지만 동행한 절친인 니모 녀석은 어차피 복제될 테니 안됐다는 말만 남기고 구하지도 않고 기지로 돌아가 버린다. 하지만 미키 17은 이해하기 어려운 계기로 무사히 살아남아 기지로 돌아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 순간, 미키 18이 이미 복제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멀티플 문제가 닥친 것이다. 유일한 해결 방법은 누군가를 재활용 구덩이로 밀어 넣는 것이다. 죽음에 익숙하지만 또 죽기 싫은 미키 17과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미키 18은 지혜를 모아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멀티플이 된 미키
영화 속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바이오 프린팅은 3D 프린팅의 생물학 버전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3D 프린팅은 수치 제어 프로그램을 통해 3차원의 물체를 만드는 기술을 의미한다. 1986년 찰스 헐(Charles Hull, 1939~)이 광조형법(LSA, Stereolithography)에 대해 최초로 특허를 출원하면서 현실화했다. 초기에는 기술의 한계로 피규어, 시제품의 제작, 교육용 모 형의 제작 등 소소한 작업에만 사용됐다.
바이오 프린팅은 기술력이 발전한 3D 프린팅을 응용해 바이오 잉크에 세포, 구조체(알지네이트 등), 성장인자 등을 혼합한 후 프린팅 하는 것을 의미한다. 프린팅된 조직을 배양, 분화시키면 인체 조직과 유사한 형태와 기능을 갖게 만들 수 있다.
바이오 프린팅 활용을 통해서 조직 및 오가노이드 생성, 장기 이식 문제 해결, 신약 개발, 수술 도구, 환자 맞춤형 수술 모델의 개발, 개인 맞춤형 의수족 제작, 동물복지의 증진 등 수많은 장점이 생긴다.
바이오 프린팅에 사용되는 바이오 잉크는 구조물을 만들 수 있는 물리적 성질과 세포증식 및 배양이 될 수 있는 생물학적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이때 사용된 구조체 물질은 인체에 무해해야 하고 기능이 필요 없어지면 자연스럽게 사라져야 한다. 또 아무 세포나 쌓으면 안 되고 목적하는 세포로 분화가 가능한 줄기 세포를 써야 한다. 장기 복제에는 분화 능력이 가장 좋은 배아줄기세포가 가장 좋다. 하지만 여성 난자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는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있다. 따라서 선진국에서는 14일 이상 배양한 인간 배아줄기세포의 연구 및 사용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일본의 교토대학 야마나카 신야(山中 伸弥, 1962~) 교수가 유도만능줄기세포(induced Pluripotent Stem Cell, iPS)를 개발하면서 만능줄기세포 활용화의 길이 열렸다. 분화가 끝난 체 세포를 배아세포로 역분화시킬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iPS로 신야 교수는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다. 물론 아직 원치 않는 세포의 분화가 많아 이를 줄이는 것이 가장 시급한 기술적 목표다.
현재 바이오 프린팅은 확산 영양(diffusion feeding)이 가능한 두께 1 mm 정도의 세포나 구조가 단순한 장기 조직을 만들어 질병이나 장애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이식해 성공적으로 치료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가장 만들기 쉬운 것은 각막, 연골(귀) 등의 얇은 막으로 된 조직이고 방광이나 피부 등의 재현에도 성공하고 있다. 하지만 조직의 두께가 동전보다 커지면 이러한 방식으로 영양분을 공급할 수 없고 세포가 죽을 수 있다. 결국 혈관계를 사용해야 하는데, 모세혈관은 너무 작아 현재는 3D 프린팅으로 만들기 어렵다.
바이오 잉크를 프린팅한다고 순식간에 자라는 것이 아니다. 세포 배양은 경우에 따라 12주 이상이 소요된다. 혈관계가 자리 잡아 영양액이 순조롭게 흐르고 다른 장기와 상호작용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현재 세포를 프린팅하는 수준인 기술로 완전한 개별 장기, 나아가서 개체 전체를 프린팅해 복제하는 시기를 속단할 수는 없다.
<미키 17>처럼 성체를 순식간에 복제하는 것은 멀고 먼 이야기이다. 또한 뇌를 복제하고 여기에 원본의 기억까지 이식하는 것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과학의 사례들이 그렇듯이 상상하는 것이 현실로 만들어지는 법이다. 그래서 공상하고 상상하는 것은 헛된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후배들에게 상상을 장려해야 한다.
(왼쪽) 배양접시 위에 사각형 모형을 만드는 바이오 프린팅 장면 ⓒWikimedia Commons by Philip Ezze
(오른쪽) 바이오프린팅 실험실에서 약물 효능검사를 위한 인간 조직과 장기를 바이오 프린팅 하고 있다. ⓒWikimedia Commons by National Center for Advancing Translational Sci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