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과학읽기

온라인 논문 검색 엔진
‘Sci-Hub’가 태동한 곳

카자흐스탄 알마티

카자흐스탄은 ‘요지경’의 나라다. 문화 수도인 알마티의 도심을 벗어나면 말과 양이 뛰노는 풍경과 흔하게 마주친다. 유목민의 후예가 세운 카자흐스탄은 과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괴짜 여성 프로그래머를 배출한 국가이기도 하다.

무료 논문 검색 엔진으로 과학계 뒤흔든
여성 생물학도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2016년 세계 과학계를 뒤흔든 10인의 인물을 선정해 발표했다. 인공지능(AI)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미스 허사비스와 어깨를 나란히 한 주인공이 바로 카자흐스탄 출신의 프로그래머 알렉산드라 엘바키얀이다.
그녀는 과학 논문 무료 검색 엔진인 ‘사이허브(Sci-Hub)’를 개발해 과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동안 과학 학술지의 논문을 구독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연구자들은 논문의 무료 열람이 가능한 사이허브의 탄생으로 갈증을 풀 수 있었다.
생물학도였던 엘바키얀은 2011년 알마티에서 처음 사이허브를 만들었다. 엘바키얀은 카자흐스탄의 논문작성 플랫폼을 뚫어 학문적 욕구를 채우는 것을 시발점으로, 무료 논문 검색 엔진인 사이허브까지 구현해 냈다. 여러 학술지와 국가로부터 소송과 제재를 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사이허브는 10여 년이 지난 시점에도 과학도와 연구자들에게는 단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사이허브의 모토는 ‘학문의 길에 놓인 모든 장벽을 없애기 위하여’다.
카자흐스탄인들의 휴대폰 사용 모습

텐산산맥이 에워싼 경제문화예술의 수도

내륙 국가 카자흐스탄은 세계에서 9번째로 큰 대국이다. 2000년대 초반 카스피해 일대에 유전이 개발되며 국가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중앙아시아의 IT 강국으로 우뚝 선 카자흐스탄이 집중하는 분야가 핀테크다. 알마티의 아르바트 거리를 활보하는 청춘들이 애용하는 앱은 ‘카스피 뱅크’ 이다. 언뜻 은행 앱 같지만 전화번호로 자료 전송, 송금이 가능하며 QR코드를 통해 일상 업무까지 해결한다. 거리의 연주자들도 현금 대신 ‘카스피’ 번호를 통해 기부를 받는다. 알마티 청춘들 사이에서는 “카스피로 보내!”라는 표현이 익숙하다.
70년간 카자흐스탄의 수도였던 알마티는 카자흐스탄의 경제·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알마티의 해발고도는 평균 900 m. 도시 주변으로는 만년설을 간직한 텐산산맥이 드리워져 있다. 숙소에서 눈을 뜨거나, 도심 어느 거리를 활보해도 눈 덮인 텐산산맥이 동행이 된다. 텐산산맥 너머가 바로 중국 우루무치 지역이다. 중앙아시아를 가르는 실크로드는 알마티를 거쳐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부하라까지 이어진다.
텐산과 알마티 도심이 어우러진 풍경을 조망하려면 꼭토베 타워에 오른다. 알마티의 ‘남산타워’ 격인 꼭토베는 시민들에게 유희의 공간이다. 미니 동물원과 대관람차가 있고, 곤돌라가 웃음을 실어 나른다. 석양이 아름다운 꼭토베에서는 해가 지면 댄스파티가 열린다. 알마티 고등학생들의 졸업 나이는 17세. 졸업식이 있는 6월이면 전통의상 ‘코일레크’에서 유래된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고 졸업생들이 꼭토베를 찾는다.
알마티의 ‘남산타워’인 꼭토베

알마티 최대 전통시장인 질료니 바자르

알마티 커피농장

우아한 젠코프 성당 & 만년설의 침불라크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정답다. 이방인들을 낯설게 대하지 않는다. 환대의 뜻을 지닌 바삭바삭한 ‘바우르삭’ 빵을 한번쯤은 맛보게 된다. 카자흐스탄은 130여 개 다민족국가로 러시아, 이슬람계, 위구르족, 고려인까지 다채롭다.

알마티 최대 전통시장인 ‘질료니 바자르’를 방문하면 폭넓은 민족과 종교를 지닌 그들만의 문화가 낱낱이 드러난다. 소, 양, 말, 닭고기 외에도 코너 한편에서 돼지고기를 판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잔치가 열리면 서열에 따라 대접하는 고기 부위가 달라진다. 초원에서 자라는 ‘쌉싸울 나무’는 고기의 향을 다스리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질료니 바자르에서는 당근김치, 김밥 등 카레이스키(고려인) 반찬을 판다.
‘사과’라는 뜻을 지닌 알마티는 풋풋한 공원의 도시다. 도심거리에는 늘 공원과 숲이 함께 한다. 중심가인 아르바트를 나서면 중앙박물관까지 숲길이 이어지고 질료니 바자르는 판필로프 공원으로 연결된다. 판필로프 공원의 젠코프 성당은 중앙아시아의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목조 건축물로 추앙받는다. 1887년 지진을 견뎌낸 성당은 주변을 장식한 꽃들만큼 색의 조화가 눈부시다. 거리의 관광지나 시장은 난전과 호객행위가 없는 평온한 분위기다.
알마티 외곽에서는 텐산산맥의 만년설을 간직한 침불라크 (2,300 m), 옥빛 빅알마티 호수와 조우한다. 중앙아시아 최대 스키장인 침불라크는 여름에도 곤돌라로 올라 설원을 거닐 수 있다. 버기카를 타고 봉우리까지 질주하거나, 하이킹으로 침엽수림을 가르는 체험이 가능하다. 빅알마티 호수 초입의 ‘팔콘쇼(매쇼)’ 공연장에서는 유목민의 동반자였던 매의 활약이 흥미진진하다. 알마티 관광지 어디를 가나 꼭 덩치 큰 매들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