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눔

나무에 새기는 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속리산 법주사. 국보나 보물을 다수 보유한 사찰이나 꼭 보고 싶었던 문화재는 원통보전의 보물 목조 관음보살 좌상이다. 한동안 머물며 살펴봤다. 조선 중 기 이후 최고라는 전문위원의 설명대로 문외한의 눈에도 어쩌면 저리도 정교하고 화려하며 아름다운지 놀랍기만 했다.
그래서 부처를 조각하는 장인의 삶이 궁금했다. 자료를 보니 지방무형문화재 몇 분이 전통 의 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조성 방법과 형상은 조금씩 달랐으나 깊은 신심을 담아야 한다는 맥락은 같았고 법주사 인근에 충북 지방무형문화재 하명석 목불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인연은 느닷없이 닥치기도 하고 또 다른 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겨울 알게 된 국가무형문화재 김영조 낙화장의 소개로 하명석 장인을 만났다. 공방에 들어서자 망치와 끌을 내려놓고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40여 년간 불상을 다루며 살아오느라 거칠어진 손이 느껴진다. 보통 키에 야무진 체격, 반백의 긴 곱슬머리, 숯 검댕이 눈썹, 번뜩이는 강렬한 눈빛이 범상치 않았다.
남해가 고향인 장인은 네 살부터 범어사 공양주 보살인 셋째 고모에게 맡겨졌다. 부모가 돌볼 수 없는 아이라는 생각에 애잔했다. 첫돌 무렵, 집을 떠난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가 홀로 키웠던 나보다 훨씬 더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성장 환경이 사찰이라 흙으로 불상을 빚던 스님을 따라 하던 것이 영향을 끼쳤다. 중학교 때 장인의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께서 그림보다 조각이 낫겠다고 말씀해주신 이후로 마음을 굳혔다. 이후 지리산 칠성암에서 스승인 청원 스님을 만나며 불교 조각에 본격적으로 입문하였다.
몇 십 년 둥치를 키운 나무가 얼마나 조이며 깎여야 부처가 될까. 은행나무로 조성하는 목불은 다른 소재보다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된다는 장점이 있다. 부처의 얼굴은 사부대중을 향한 양 눈은 마냥 자애롭고 온화하면서도 근엄해야 하며 미소 띤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야 하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곳이다. 조성된 목불은 삼베에 생칠과 풀을 섞어 붙이고 대여섯 번 옻을 입히는 건칠(乾漆) 후 금박을 하면 몇 백 년을 넘어 영원을 기약하기도 한다.
나무를 다루는 도구라야 자귀와 망치, 끌 종류인 반원도, 환도, 굽은 원도, 삼각도, 평도, 창칼이 전부다. 수만 번 망치로 끌의 머리를 쳐야 하고 무한의 끌질로 섬세하게 다듬자니 온통 손바닥은 굳은살투성이다. 한 구의 부처를 완성하는 데 거의 일 년이 걸린다니 쏟아 부어야 하는 공력이 얼마일지 가늠조차 어렵다.
나무에 장인의 혼을 넣어 불상을 조성하려면 뛰어난 조각 기술도 필요하지만, 불교에 대한 조예가 깊어야 했기에 잠시 승복을 입었던 시절도 있었다. 부모를 그리워하며 흘려야 할 눈물조차 잊은 채 만고풍상 겪어가며 한 곳만 바라보며 살아온 장인이다. 평범한 통나무를 한 번의 망치질과 끌질에 한 자 한 자 경전을 새기는 간절함으로 임했을 것이다. 불도를 전하는 부처의 조성은 깨달음을 찾아가는 구도자의 고행과 다름없다는 생각이다.
인시(寅時)에 법주사 범종이 울리면 심신을 정갈하게 하고 공방을 찾아 사람의 왕래가 적은 오전 11시까지 끌과 조각도를 잡는다. 몇 해 전에는 반드시 해보려고 다짐했던 법주사 보물 목조 관음보살 좌상을 완벽하게 축소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장인은 불상뿐만 아니라 옻칠, 금박, 개안과 채색까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특히 휴대용 불상인 불감(佛龕)은 독보적인데도 대를 이을 사람이 없어 안타깝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국가나 지방무형문화재 중 가장 경제적으로 풍요로운데도 말이다. 맥을 이어갈 재능 있는 젊은이의 도전을 기대한다.
전통이란 한번 맥이 끊기면 다시 잇기가 어렵지 않은가. 공방에 오면 깊은 관심을 보이며 집중하는 초등학생 외손녀를 염두에 두지만, 당신의 뒤를 이을지는 미지수라며 씁쓸하게 웃는 모습에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내려놓고 버리는 수행자의 심정으로 평생 매달렸으니 곡절이 왜 없었을까. 전통을 잇느라 누리지 못한 것도 있었고 잃어버린 것들도 많았다. 결코 지방무형문화재 목불장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었다. 부모 사랑도 받지 못했고 배움 역시 적었지만 자기 일에는 완벽을 추구하는 고집으로 정상에 오른 인간승리이다.
극한 환경에서 생명체가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진화해야 한다. 평생 외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일찌감치 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받아들였고 무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향후 계획은 한국 최고의 목불장답게 서울에서 전시회를 갖는 것이라 한다. 확신에 찬 눈빛이 전시회를 찾는 이들에게 큰 감동을 줄 것이라 믿기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섬세한 손길로 나무에 혼을 새기는 하명석 불모(佛母)는 산통을 겪으면서도 매일 끌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