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과학읽기

온천과 우주과학을 만나는 도시

일본 다케오

온천마을의 녹나무, 두 칸짜리 간이 열차, 도자기 가게
일본 규슈의 소도시인 다케오에서 만나는 정겨운 단상들이다.
만화에나 등장할 듯 소박한 옛 도시인 다케오에는 뜻밖에도 우주과학관이 들어서 있다.

옛 골목 사이 들어선 우주과학관

아이들에게 다케오는 호기심의 고장이다. 유명한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의 주인공 토토로가 살 것 같은 거대한 녹나무가 시내 곳곳에 심어져 있다. 녹나무 순례 프로그램이 따로 있을 정도다. 다케오 신사의 녹나무는 3000년이 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녹나무와 함께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은 바로 우주과학관이다. 큰 도시도 아닌 외딴 온천 동네에서 만나는 우주과학관은 생경하면서도 신비롭다. 일본 전통 사찰과 옛 골목들을 지나면 우주과학관 ‘유메긴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서 미래로 단숨에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다케오에 위치한 우주과학관 ‘유메긴가’ 플라네타리움 (출처 : 유메긴가 우주과학관)

다케오의 우주과학관은 규슈에서 가장 큰 규모로 사가현을 대표하는 과학관이다. 외관은 우주정거장에서 이륙을 준비하는 우주비행선을 형상화했다. 과학관 내부는 지구 발견존, 우주 발견존 등 흥미로운 체험공간으로 채워졌다. 달 위의 무중력 상태를 체험하는 ‘문워크’, 360도 빙글빙글 회전하며 우주 비행사를 경험하는 ‘우주 트레이너’ 등은 단연 인기다.
영화 ET의 한 장면처럼 달 모형 아래 밧줄 위를 자전거로 건너는 ‘스페이스 사이클링’ 체험에도 도전할 수 있다. 첨단 투영기기를 통해 우주의 입체공간을 재현한 ‘플라네타리움’, 대형망원경이 비치된 천문대 등은 온천마을과 우주가 공존하는 신비로운 모습이다.

1300년 세월의 문화재인 온천장

옛 일본 전통가옥

사가현은 현해탄 건너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땅이다. 다케오는 사가현 모퉁이에 한적하게 자리 잡았다. 마을 골목을 거닐면 따뜻한 온천장의 분위기가 발끝마다 스며든다. 열차에서 내려 옛 일본 전통가옥을 지나 온천장까지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다케오 온천의 역사는 1300년을 넘어선다. 도심을 오가는 온천문양의 자줏빛 택시는 이곳이 온천동네임을 대변한다. 다케오의 온천은 누문, 욕탕 등이 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주홍빛 누문은 도쿄역과 한국은행 본점을 설계한 다쓰노 긴고의 작품이다. 옛 영주가 사용했다는 본관 욕탕은 대리석으로 내부를 꾸몄다. 히노키탕, 노천탕 등 대중탕은 입구와 가격이 제각각 다르다.
천년 세월의 온천마을 다케오는 해질 무렵이면 온천 누문과 녹나무 등 시내 명소 곳곳에 조명을 켠다. 온천에서 기차역까지는 작은 상가들이 열을 맞춘 아담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40년 된 교자집과 에키벤(도시락)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사가규 에키벤 가게도 저녁 산책 중 들러봐야 할 곳이다.
다케오 시립도서관은 온천장, 우주과학관과 함께 소도시의 명물이다. 온천마을 도서관의 연간 이용자수는 백만 명쯤 되고 그 중 절반은 이방인이다. 개방형 2층으로 단장한 서가에는 카페, 갤러리, 문구점이 공존하며 바리스타 체험과 음악회가 열린다. 그래서인지 온천욕 후 도서관에 들러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여행코스가 인기다.
다케오의 온천장

다케오의 시립도서관

도공들의 흔적 서린 도자기마을

도자기마을

사가현은 오래 전부터 한반도와 다채로운 문화적 소통을 이어왔던 곳이다. 조선에서 건너간 도공과 도자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다케오의 골목길에는 도자기를 파는 공예품 가게들과 흔하게 조우한다.
사가지역 곳곳에서 생산된 명품 도자기들은 서쪽 이마리를 거쳐 유럽 각지로 비싼 값에 실려 갔다. 그 중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마리의 도예촌 오카와치야마는 17세기 후반부터 약 200여 년간 도자기를 만들던 숨겨진 동네다. 비법이 새나가지 않도록 기술을 보전했던 산골에는 지금도 30여 개의 도자기 가문의 ‘요’가 들어서 있다. 깊은 산 속, 자기 조각으로 곳곳이 장식된 오카와치야마에서는 자기로 만든 풍경 축제가 열린다. 바람에 흩날리는 맑은 풍경 소리는 마을의 길목을 청아하게 채운다.
사가현을 품은 현해탄 바다는 시리게 푸르다. 가라쓰성 인근의 포구마을 요부코는 오징어가 대표선수다. 오징어 아침 시장도 열리고, 포구에서는 오징어 구이를 즉석에서 맛볼 수 있다.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오징어회는 이 지역의 간판메뉴다.
도심 분위기는 사가현의 중심인 사가에서 가장 활발하다. 사가는 풍요로운 농토와 도자기 산업으로 예로부터 부를 축적했던 도시다.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였던 이방자 여사의 외가도 이곳 사가였다. 해마다 벌룬 축제가 열리는 사가에는 일본 최대 목조 건물인 혼마루 역사관과 산책로가 어우러진 사가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다. 익살맞게 웃으며 물고기와 낚싯대를 든 풍요의 신 ‘에비스’도 시내 곳곳에 등장한다. 800개나 흩어져 있다는 에비스를 찾아내는 별도의 투어도 마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