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흑토끼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심심풀이로 누구나 하는 사주풀이에 따르면
검은 토끼의 해에는 노력한 만큼 복이 들어온다고 한다.
연말이 되면 ‘다사다난’이라는 표현을 관용구처럼 쓴다. 지난 2022년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발사 성공, 월드컵 16강 진출처럼 많은 사람들을 뿌듯하게 만든 소식이 있는가하면 이태원 참사처럼 가슴 아픈 일도 적지 않았다. 한 해가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는 올해는 가슴 아프고 슬픈 일보다는 즐겁고 기분 좋게 하는 일들만 가득했으면 하는 생각들을 한다.
연말에는 한 해 동안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던 사건사고를 정리해 한해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고 반성하고 내년을 대비하는 일들을 한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언론매체와 단체들이 ‘10대 뉴스’를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학계도 마찬가지이다. 과학저널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네이처’와 ‘사이언스’도 지난 연말 전 세계 과학계가 주목한 연구성과 및 과학기술 동향, 과학계 인물을 선정했다.
네이처는 ‘2022년 올해의 과학계 인물’과 ‘과학계의 주요 사건’을 꼽았고, 사이언스는 ‘2022년 올해의 중요 연구성과(2022 Breakthrough of the year)’를 선정했다. 물론 네이처나 사이언스가 선정한 10대 뉴스나 10대 인물을 꼽을 때 발표되는 순서가 절대 순위를 매기는 것이 아니며, 올 한 해 과학계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을 되새기고 대중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읽는 사람들은 첫 머리에 올라오는 사건과 인물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네이처 올해의 인물 10명 중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것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우주비행센터의 천체물리학자이자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 운영 프로젝트 과학자인 제인 릭비 박사이다. JWST는 미국, 유럽, 캐나다 등이 25년 동안 약 13조 1,000억 원을 투입해 만든 세계 최대 크기의 우주망원경이다. JWST는 30년 넘게 임무를 수행한 허블 우주망원경을 대체하기 위해 2021년 12월 25일(현지시간)에 발사돼 2022년 1월 지구에서 150만 km 떨어진 라그랑주점이라는 관측지점에 도착해 우주 관측 임무 수행하고 있다.
릭비 박사는 2010년 JWST팀에 합류해 지난해 말 발사 성공을 이끌고 지금까지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있다. 2022년 7월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JWST 망원경으로 찍은 영상을 전 세계에 공개하는 자리에도 릭비 박사가 함께 했다. 재미있는 것은 릭비 박사가 JWST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지만, 망원경 이름을 말하는 것은 꺼린다는 점이다. 릭비 박사는 성소수자인데 망원경에 이름이 붙은 제임스 웹이 NASA 2대 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성소수자 과학자들을 무더기로 해고하고 괴롭혔기 때문이란다.
사이언스가 발표한 ‘10대 중요 연구성과’에서도 JWST가 지구로 보내온 첫 번째 이미지와 연구 결과 공개가 첫 번째로 꼽혔다. JWST는 허블 우주망원경보다 주경 지름은 2.7배, 면적은 6배 더 크다. 주경이 큰 것은 우주에서 오는 빛을 더 잘 모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허블 우주망원경보다 100배 더 선명한 영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전에 희미하게 포착됐던 천체의 모습을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됐다.
네이처의 ‘올해의 인물’에는 릭비 박사 이외에 기후 위기에서 지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 이들이 이름을 올렸다. 살리물 훅 국제기후변화발전센터 소장은 2022년 11월 이집트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7)에서 선진국이 기후변화로 인해 피해를 입는 개발도상국과 섬나라 등의 피해를 보상할 기금을 마련하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우크라이나의 기후학자 스비틀라나 크라코프스카 박사는 러시아 전쟁의 원인이 화석연료 때문이라는 것을 밝히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기후위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COP27에서 기후위기 심각성을 경고하고 선진국 지도자들에게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코로나19 변이 연구에 앞장선 윈룽 차오 중국 베이징대 교수, 원숭이 두창 연구와 방역에 큰 역할을 한 디미에 오고이나 나이지리아 니제르델타대 교수, 말기 심장병 환자에게 돼지 심장을 이식하는 데 성공한 미국 메릴랜드대 의대 무하마드 모히우딘 교수도 올해의 인물로 꼽혔다.
한편 사이언스는 JWST 성과 이외에 중국 윈난대 연구팀이 개발한 5년에 한 번씩만 심으면 되는 다년생 쌀 품종 PR23과 텍스트를 이미지로 변환하는 기능을 가진 인공지능 프로그램 ‘달리 2(DALL-E 2)’와 이를 이용해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미술전에서 수상한 사건을 ‘2022년 중요 연구성과’로 선정했다. 또 NASA가 소행성 디모르포스의 궤도를 바꾸는 데 성공한 다트 프로젝트도 주요 성과로 꼽혔다.
이와 함께 매년 겨울 영유아들에게 미세기관지염을 유발시켜 부모들을 힘들게 만드는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백신의 개발 임박도 주요 연구성과로 꼽았다. 이 밖에도 다발성 경화증을 유발시키는 바이러스의 발견, 일반 미생물보다 5,000배나 커 사람 눈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거대 미생물의 발견, 700년 전 유럽 인구 절반을 사망하게 만들었던 흑사병이 유럽인의 유전자에 남긴 흔적을 발견한 것도 주요 연구성과로 선정됐다. 더불어 그린란드 북부 지역에서 채취한 환경 DNA를 분석해 200만 년 전 그린란드 생태계 재현에 성공한 연구도 사이언스의 선택을 받았다. 올해는 과연 어떤 과학자와 연구에 전 세계가 주목할지 벌써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