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 처리 및 시뮬레이션 평가 기술 전문 기업에 이전해 수십억 원에 이르는 항공화물용 보안검색기 국산화 추진
공항 수하물이 세균이나 바이러스로 오염됐다면 바로 조치할 수 있을까. 현재 미국 등 해외에서 널리 사용하는 시스템은 바이러스를 검사할 때 약 3~6시간이 소요된다. 반면 방사선을 활용하면 보안검색과 살균 모두 5분 이내로 완료돼 세계적으로 관련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팬데믹으로 공항 방역이 더욱 중요해진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자체기술로 물질검색과 검방역을 동시에 수행하는 일체형 시스템 개발에 나선다.
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는 지난 10월 24일 국내 최초로 ‘검방역 일체형 보안검색기’를 개발하고자 ㈜위드케이에이씨(대표 김진오, WITHKAC)에 보유기술을 이전하고 상호협력협약(MOA)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으로 보안검색기 및 검방역 기술 공동연구, 연구시설 및 장비 공동 활용, 기술·정보교류, 인력교류 등을 상호 협력할 계획이다. ㈜위드케이에이씨는 한국공항공사 벤처기업으로 출범해, 인체에 무해한 플라스마 UV 방역 및 IP 기반 스마트 헬스케어 제품을 개발하는 살균시스템 전문 기업이다.
방사선 조사에 따라 변화하는 탄소 구조 영상
플라스틱을 임의로 늘렸을 때의 안전성 평가 시뮬레이션 영상
연구원이 이전한 ‘수하물의 방역·보안검색을 위한 방사선 처리 및 시뮬레이션 평가 기술’은 국내 특허 5건과 노하우 기술 1건이다. 물질별로 적절한 방사선량을 사전에 파악하는 ‘시뮬레이션 평가’와 방사선을 조사해 살균하는 ‘방사선 처리’과정이 핵심이다. ‘시뮬레이션 평가’로 방역 대상이 손상되지 않을 최대 방사선량을 정확히 계산한다. 검출센서에서 세균·바이러스가 감지되면, 이들 분자구조의 결합을 끊을 수 있는 수준의 X-선을 쪼여 살균한다. 5 eV(전자볼트, 현 UV 살균 에너지)에서 100 KeV(킬로전자볼트)까지 조절이 가능하다. 연구원 방사선반응모델연구실 권희정 박사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사선기술개발사업 및 기관 주요사업의 지원을 받아 본 성과를 이뤄냈다.
이를 활용해 연구진은 방사선 조사에도 내구성을 유지하는 ‘플라스틱 방사선 변형에너지 보존 소재’를 설계했다. 공항 수하물을 담는 플라스틱 컨테이너가 X-선을 여러 차례 통과하더라도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기존의 PE, PS, PVC 등 10여 종의 범용 플라스틱은 일정 수준 이상의 X-선에서는 부서진다는 한계가 있다. 연구진은 이들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실시, 각각의 성능을 조합해 최적의 플라스틱 소재를 고안한 상태다.
항공화물용 보안검색기는 한 대당 수십억 원에 이르는 값비싼 장비지만, 아직까지 국내 자체 기술로 개발되지 않았다. 연구원은 보안검색과 살균을 한 기기에서 수행하는 ‘검방역 일체형 보안검색 시스템’을 3~4년 이내로 국산화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구원은 앞서 2016년 항만용 컨테이너 보안검색기 상용화에 성공했으며, 2020년 기준 국내 3기를 설치·운용한 바 있다. 올해는 X-선과 중성자선을 복합 활용한 컨테이너 보안검색기를 개발하며 관련 역량을 쌓아왔다.
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 이남호 소장은 “이번 기술은 일반 수하물뿐 아니라 향후 동·식물,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며 “연구원은 앞으로도 기업체와 협력해 국민 실생활에 유용한 방사선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가볍고 튼튼한 차세대 자동차 소재 개발
전자선을 이용해 기존 소재 대비 성능은 3배 향상되고, 무게는 10분의 1로 줄인 탄소섬유강화복합소재가 상용화에 첫발 내디뎠다
세계 자동차 시장의 화두는 가볍고 튼튼한 소재를 개발하는 것이다. 탄소배출량 감축과 탑승객의 안전 모두를 지키기 위함이다. 탄소섬유와 플라스틱으로 구성된 ‘탄소섬유강화복합소재(CFRP, Carbon Fiber Reinforced Plastic)’가 가장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액체에서 고체로 바꾸는 ‘경화’ 공정 시간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국내 연구진이 전자선을 이용해 탄소섬유강화복합소재를 단시간에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차세대 자동차 부품 대량생산에 근접했다.
연구원은 11월 8일, ‘전자선 경화 탄소섬유강화복합소재를 이용한 자동차 부품소재 기술’을 ㈜엠에스오토텍(대표 김범준)에 이전해 상용화에 첫발을 내디뎠다. ㈜엠에스오토텍은 1990년부터 제품설계, 구조·충돌 시뮬레이션, 신뢰성평가 등의 R&D 역량을 쌓아온 자동차 차체부품 전문 기업이다. 현재 중국, 인도, 브라질, 미국 등 해외시장에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탄소섬유강화복합소재를 굳히는 방법에는 열경화와 상온경화가 있다. 섬유, 플라스틱, 경화제 등이 혼합된 액상 물질에 열을 가해 경화하면 3~4시간, 상온경화에는 3일 정도 걸린다. 반면 연구원이 자체 보유한 10 MeV(메가전자볼트)급 전자선가속기를 활용하면 경화 공정 시간이 10분 이내로 줄어든다. 전자선은 파장이 짧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방사선으로, 물질에 쪼이면 빠르고 단단하게 분자구조를 변화시킨다. 전자선 경화 시 촉매나 경화제도 필요 없다.
연구원은 탄소섬유강화복합소재에 40 kGy(킬로그레이)의 전자빔을 쪼였다. 3 m 크기의 대형 자동차 부품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 연구원이 개발한 이번 소재는 잡아당기는 힘에 버티는 인장 강도와 꺾으려는 힘에 버티는 굴곡 강도 모두 1 GPa(기가파스칼) 이상으로, 이는 시중 자동차 부품 소재와 유사한 수준이다. 이에 반해 무게는 기존 대비 89 % 수준으로 한층 가볍다는 장점이 있다. 전자선으로 탄소섬유강화복합소재를 경화하는 방식은 이미 존재했으나, 금속을 대체할 수준으로 기계적 물성 강도를 높이는 것이 과제였다. 연구진은 전자선 조사 이전 단계에서부터 복합재료의 구성과 제조방법을 달리해 문제를 해결했다. 조직이 치밀한 T700급 탄소섬유와 액상의 에폭시 아크릴레이트를 결합시킨 새로운 재료 구성을 찾아냈다. 이후 전자선으로 경화해 복합소재의 물성을 높인 것이다. 300 MPa(메가파스칼)이었던 기존의 전자선 경화 탄소섬유강화복합소재와 비교해 성능이 약 3배 향상됐다.
연구원은 개발 기술의 상용화를 목표로 ㈜엠에스오토텍, 고등기술연구원, 충남대학교와 협력해 시제품 제작, 금속접합 실험, 신뢰도 평가 등을 모두 마쳤다. 이번 성과는 연구원 방사선연구부 김현빈 책임연구원을 중심으로 2019년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사선고부가신소재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다. 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 이남호 소장은 “자동차 산업 외에도 항공·드론, 국방, 해양·선박 등 여러 산업 분야에 적용 가능한 소재 기술”이라며 “앞으로도 국민 일상에 와 닿는 방사선 기술 개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