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과학읽기

사람이 개미만큼 작게?

영화 앤트맨 속 나노과학

‘바닥에는 풍부한 공간이 있다.’
(There's a plenty room at the bottom)
영화 ‘앤트맨’ 포스터

‘나노’(nano)라는 기술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1나노미터(nm)라고 하면 10억 분의 1m(10-9m)의 길이로, 머리카락의 1만 분의 1이 되는 초미세의 세계이다. 대략 원자 3~4개를 줄 세운 길이다. 고대 그리스어로 난쟁이를 뜻하는 ‘νᾶνος’(nanos)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Phillips Feynman, 1918~1988)은 나노라는 개념을 처음 세상에 드러내 보였다.
1959년 미국 물리학회 주최로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열린 강연회에서다. 파인만은 ‘바닥에는 풍부한 공간이 있다’ (There’s a plenty room at the bottom)라는 제목의 연설을 펼쳐 훗날 나노기술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파인만은 강연에서 브리태니커(Britannica) 백과사전을 예로 들었다. ‘24권 전권 분량의 브리태니커 사전을 1.6mm 지름 핀머리에 기록할 수 없을까’ 질문을 던지고, 백과사전의 모든 기록을 2만 5,000배 축소하면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이러한 논리로 인간의 모든 정보가 세포 속 DNA에 담겨 있으며, 몸 속을 돌아다니며 치료하는 기계 의사를 만들 수 있고, 이는 원자 재배열을 통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파인만은 원자 수준에서 인간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재배열하고,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인류가 직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과학자들에게 연구를 제안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저 상상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로부터 6년 후 파인만은 양자역학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됐고, 2000년대 초 나노라는 단어가 빠지는 곳이 없을 정도로 ‘나노 붐’이 일었다. 이미 나노기술은 전자·통신, 의료, 재료·소재, 환경·에너지, 생명공학, 국방, 항공우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나노과학이 가져올 변화가 만들어내는 혁신의 파도를 상상해 볼 수 있는 좋은 공상과학 영화가 있다. 사람이 개미만큼 작아지는 ‘앤트맨’이다. 이 영화를 보면 나노 세계가 가져다줄 미래 세상에 대한 시나리오를 미리 그려볼 수 있다.

사람・사물의 크기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것이 가능할까?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사람과 사물은 각각의 특성을 갖는 기본 단위인 분자로 구성돼 있다. 분자는 원자라는 입자들이 결합한 상태다. 더 깊게 들어가면 원자는 다시 원자핵과 전자로,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나눌 수 있다. 현재는 쿼크를 비롯해 더 작은 물질들을 찾고, 원리를 설명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원자핵과 전자 사이의 거리다. 둘 사이의 거리에 따라 에너지가 달라지는데, 이때 원자핵과 전자는 에너지가 가장 낮은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특성이 있다. 우리의 몸이나 사물은 최적의 거리를 갖는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된 상태다.
만약 사람의 몸이 커지거나 작아질 경우, 성질은 유지해야 하니 원자는 그대로인 상태에서 원자핵과 전자 사이의 거리만 변화하게 된다. 거리가 멀어지든 가까워지든 에너지는 증가하게 되며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 이때 발생하는 추가적인 에너지를 상쇄시키거나 혹은 밖으로 빼줄 존재가 필요한데, 현재로는 이 기술이 불가능하다. 영화 속에선 ‘핌 입자’라는 가상의 입자가 이 역할을 하고 있다. 핌 입자와 같은 입자를 발견하거나 개발한다면 이론상으론 사람이나 사물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핌 입자와 같은 에너지 조절 입자를 발견했다고 가정해보자. 영화에서는 커다란 건물을 작은 상자 크기로 줄여 캐리어 가방처럼 끌고 다닌다. 사실 원자핵과 전자 사이의 거리를 조절해 크기를 변화시켰을 뿐, 질량은 변하지 않는다. 본래의 큰 건물과 상자처럼 작아진 건물의 질량은 똑같다. 작은 크기에 질량이 압축된 상태이기 때문에 쉽게 끌고 다닐 수 없다. 이것이 그 유명한 ‘질량보존의 법칙’이다.
생체활동에 소비되는 에너지 또한 해결해야 한다. 우리의 몸은 3차원으로 구성돼 있다. 정육면체로 예를 들면 길이가 10배로 늘어날 때 표면적은 100배, 부피는 1,000배 늘어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줄어들게 된다. 우리의 키가 커지고 작아지는 것보다 더 많은 표면적과 부피가 변한다는 뜻이다. 에너지 불균형 때문에 사람은 사물보다 크기 조절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고스트처럼 사람이 사물을 통과 할 수 있을까?

사람은 다른 사람이나 물질을 통과할 수 없다. 사람은 질량을 가지고 있고, 서로 특성에 맞는 분자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서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사람과 사물을 결합할 수 없다.
세상에서 물질을 통과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바로 ‘빛’이다. 빛은 질량이 없다. 파장의 길이에 따라 에너지가 달라진다. 파장의 길이가 짧을수록 에너지가 커지고 투과력이 강해진다. 사람이 볼 수 있는 사물은 가시광선이 반사되어 나온 빛이 눈을 통해 인식되는 원리다. 이 가시광선보다 더 파장이 짧은 빛의 대표적인 예가 ‘엑스레이’(X-ray)다. 병원에서 촬영하는 엑스레이는 파장이 짧아 피부를 투과해, 흰색과 검은색의 촬영물이 나오게 된다.
사람의 사물 통과는 이론적으로 아주 복잡한 과정이 일어나야 한다.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을 통과하려 한다고 가정해보자. A가 B에 닿는 순간 접촉면부터 통과하는 신체 부분의 분자구조가 순간적으로 B의 분자구조와 같아져야 한다. 그리고 통과 후 다시 반대쪽으로 나올 때는 본래의 A 신체의 분자구조로 돌아와야 한다. 이를 자가조립이라고 한다. 마블 영화에서는 ‘페이징’(Phasing)이라는 개념으로 등장한다. 페이징을 사용하는 히어로가 바로 ‘비전’이다.
비전은 상대방의 공격을 그대로 통과시켜 버리거나, 방해물을 통과해 이동한다. 이는 비전의 모태가 되는 슈퍼컴퓨터인 ‘자비스’의 분석·계산 능력과 인피니티 스톤(마인드 스톤)이라는 상상의 물질이 더해져 가능한 것이다. 비전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신체를 통과하려는 물질에 맞춰 분자구조를 동화시킨다.
페이징은 말 그대로 물질의 상태를 뜻하는 ‘페이즈’(Phase)에서 따온 이름이다. 물질의 상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 고체, 액체, 기체 그리고 플라즈마로 이뤄져 있다. 페이징은 물체의 상태를 바꾸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고스트와 비전의 페이징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간단한 페이징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얼음이 물로 상태가 변하고, 물이 증발해 수증기로 대기 중으로 날아가는 현상은 아주 간단한 페이징이라고 볼 수 있다.

양자영역의 시·공간은 어떻게 다른가?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공간, 역행할 수도 있는 시간. 쉽게 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영역이다. 양자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면 우리가 체감하는 것이 모두 달라진다. 원자보다 더 작은 ‘아원자’의 세계에서는 전자들이 파동성을 갖는다. 우리는 원자핵과 전자의 구성을 그릴 때 전자를 행성과 같이 공전 궤도를 그리고 동그랗게 표시해놓는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보기 편하게 그린 것일 뿐이다. 전자는 해당 궤도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있는 확률을 가지고 있다. 동그라미로 그린 전자는 수많은 전자 중 딱 하나의 경우의 수일 뿐이다. ‘전자는 이 지점에 있다’가 아닌 ‘전자는 이 궤도 중의 한 곳에 있다’가 되는 것이다. 위치가 정확한 좌푯값이 아닌, 확률로 나타나는 것이다.
전자는 아무 위치에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원자핵으로부터 일정한 거리 위에 궤도를 갖고 있고, 전자는 해당 궤도에만 존재한다. 궤도와 궤도 사이는 비어있으며, 전자는 띄엄띄엄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앤트맨에서 주인공이 양자영역에 들어갔을 때 모습이 여러 개로 분산돼 보이는 것도 이러한 원리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앤트맨의 위치가 띄엄띄엄 확률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여러 앤트맨이 겹쳐 보이는 것처럼 표현된다.
만약 우리의 모습을 양자영역처럼 띄엄띄엄 나타내면 우리는 레고 블록과 같은 외관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거시세계의 관점에서는 궤도 사이의 거리가 너무 좁아서 연속성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성질을 이용한 것이 바로 반도체다. 전자가 존재하는 공간과 존재하지 않는 공간의 ‘0과 1의 값’을 적용해 전기적 성질을 띠게 하는 원리이다. 양자역학이 일상에 녹아있는 대표적인 예다.
양자영역은 우리가 사는 3차원 공간과 달리 더 고차원이다. 우리가 양자영역에 들어갔을 때 인식할 수 있는 범위는 3차원에 한정되어 있다.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의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2차원에 사는 동그라미와 세모, 네모들은 서로의 평면상의 모양만 보고 살고 있는데 갑자기 공중에 3차원의 사과가 나타나면 어떨까? 안타깝게도 평면상의 이들은 사과를 볼 수 없다. 높이라는 축이 없어서 위에 있는 사과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지 못할 뿐, 사과는 존재한다.
만약 사과가 2차원의 세계에 내려와 안착한다면 어떨까? 비로소 동그라미와 세모, 네모는 사과가 나타났음을 알게 된다. 이들은 평면에 나타난 모습만 볼 수 있어서 사과를 ‘구’가 아니라 ‘원’의 단면으로만 인식한다. 이처럼 우리가 양자영역에 들어간다 한들, 고차원의 존재에 대해선 3차원으로만 인식하는 한계를 갖게 될 것이다.
과학하는 원연이에서도 양자역학을 쉽게 알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