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 대왕과 클레오파트라의 흔적이 깃든 도시다.
알렉산드리아에 세워졌던 세계 최대의 도서관에는 고대 과학자들의 위업과 서적, 사연들이 담겨 있다.
과학자와 과학서적이 공존한 고대 도서관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4세기 이집트에 입성한 뒤 본인의 이름을 딴 30여 개의 알렉산드리아 도시를 세웠다. 그중 가장 먼저 정복의 단초를 마련하고,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도시가 아프리카 북부 지중해의 알렉산드리아다. 알렉산더 대왕은 세계 제패의 야망을 지식 세계에서도 이루려 했으며, 그 뜻을 이어받아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기원전 3세기 세계 최대 규모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완공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자연과학, 천문학, 의학, 기하학, 지리학 등을 총망라하는 70만여 권이 넘는 책을 소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온 세상의 책을 모으기 위해 알렉산드리아에 입항한 모든 선박에서 발견되는 책을 필사하도록 했다. 해시계로 지구의 둘레를 처음 계산했던 그리스의 천문학자 에라토스테네스가 당시 도서관 관장이었으며, ‘원뿔곡선론’을 집필해 행성 운동이 타원 운동임을 기술한 아폴로니우스의 저서 등을 소장하기도 했다.
도서관에 속했던 연구 집단인 ‘무세이온’(Mouseion)은 ‘지식의 전당’이라는 뜻으로 ‘박물관’(Museum)의 어원이 되기도 했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 기하학자 유클리드 등이 모두 무세이온에서 활동했다. 무세이온에는 하늘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천문대와 생체 연구를 위한 해부실이 있었으며,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도 병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실험실과 장비가 있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세계 최초의 과학박물관이라는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의 범람 시기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 일찍이 천문학에 관심을 두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화재로 인해 건물과 소장된 책들이 모두 불탔으며, 정확한 원인은 미궁 속에 남아 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2002년 유네스코의 협력을 받아 과거의 영화를 계승한 새로운 도서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도서관의 외관은 떠오르는 태양을 형상화 했으며, 50여만 본에 달하는 자료를 소장해 세계를 대표하는 도서관의 반열에 올랐다. 도서관 2층 전체에는 과학 관련 서적이, 3층에는 신기술 관련 서적을 보관 중이다. 5천여 권에 이르는 중세의 주요 과학 서적들도 함께 소장하고 있다.
클레오파트라가 머물던 이집트 옛 수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제국과 헬레니즘 문화의 주축이었다. 클레오파트라가 여왕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생을 마감한 곳 역시 알렉산드리아다. 로마의 장군들과 연정을 꿈꿨던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세인들의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는 나일강과 지중해가 만나는 곳에 들어서 있다. 아스완, 룩소르를 거친 강줄기는 카이로를 경유해 아프리카 북부 알렉산드리아로 흘러든다. 도시는 카이로 이전에 이미 천 년 동안 이집트의 찬란한 수도였고, 흥망과 성쇠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레코로만 시대의 수도로 천 년 동안 융성했던 알렉산드리아는 이슬람 세력에 의해 수도가 카이로로 옮겨진 뒤 쓸쓸한 어촌마을로 전락한 시기도 있었다. 인구 수백만 명인 이집트 ‘제2의 도시’로 부활한 것은 서구 열강이 주도한 19세기 근대화 열풍이 불면서부터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전해지는 도시의 윤곽들은 그동안 우연히 만났던 이집트와는 사뭇 다르다. 신화, 고대 파라오, 피라미드의 전설은 잠시 뒷전으로 밀어둬도 좋다. 도심 길에는 투박한 트램이 오간다. 알렉산드리아의 트램은 1860년에 처음 등장해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푸른색과 노란색으로 단장된 트램은 번화가와 시장(수크)을 오가며 옛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시절을 묵묵히 대변한다.
그레코로만 유물과 세계 불가사의 흔적
도시에서 바라보는 알렉산드리아의 유적들은 애틋하다. 지중해의 도시는 외세의 침략, 간섭과는 숙명적 관계임을 보여준다. 숱한 유적들은 지중해 일대의 변덕스러운 날씨까지 겹쳐 온전하게 보존되지 못했다. 기둥만 하나 덩그렇게 남은 폼페이의 기둥과 지하무덤인 카타콤, 원형극장 등이 그레코로만 시대의 흔적을 외롭게 강변한다. 몬타자 궁전, 그레코로만 박물관 등도 알렉산드리아에서 두루 둘러볼 곳이다.
해변에서 만나는 선명한 자취는 지중해 연안에 들어선 카이트베이 요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파로스 등대가 서 있던 자리에 요새가 세워졌다. 15세기에 축조되고 재건된 요새 자체로도 의미가 크지만, 요새 일부는 기원전 3세기 무렵 건설됐다 부서진 등대 석재의 일부를 사용한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알렉산더와 클레오파트라의 화려한 잔상을 뒤로하고 이곳 주민들의 삶은 잔잔하게 투영된다.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어선들이 도시의 중심인 오바리 광장 앞바다를 지난다. 포구로 접어들면 고깃배가 드나들고 꼬마들은 해변에서 물장구를 치며 해풍을 맞는다. 해안 도로변 알 무르시 아불 아바스 모스크는 돔과 첨탑을 드러내며 이곳이 현재 이슬람의 도시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