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과학읽기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

VS 조선 ‘판옥선’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둘러싼 궁금증들
서양배 vs 동양배 차이는? 항해 기술과 진수의 원리

‘해적선이 나타났다~!’

영화 <한산: 용의출현> 포스터(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바다에 배를 타고 가는데 해적이 쫓아온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두렵다. 대부분 해적들은 거칠고 욕심 많은 악당들이었다. 전쟁 전문 저술가 브렌다 랄프 루이스(Brenda Ralph Lewis)의 ‘해적의 역사’에 따르면 해적의 삶은 배신, 절망, 만행 등의 반복이었다. 대부분 럼주를 즐겨 마신 탓에 알코올 중독으로 단명했다.
해적의 공식 기록은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류의 항해가 시작된 시점부터 해적이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기원전 8세기 트로이 전쟁 이후 10년의 모험을 담은 대서사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도 해적이 등장한다. 고대 지중해와 에게해에 해상무역이 번성하며 해적들이 들끓었다. 고대 해적들과 바이킹, 일본 왜구, 제국주의 시절의 사략선(정부로부터 적의 배를 공격하고 나포할 권리를 인정받은 무장 선박), 현대의 소말리아 해적들까지 끊임없이 계보를 잇고 있다.
해양 안전체계가 강화된 오늘날에도 해적의 존재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세계 곳곳의 바다에서 여전히 해적질이 드세다.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해사국(IMB) 공식 집계에 따르면 1998~2012년 15년간 총 5,112건의 해적 공격이 발생했다. 1990년대 초부터 증가해 2007∼2012년에는 매년 260∼450건이 발생했고, 지난 2018년 한 해에만 201건으로 여전히 해적의 기승은 꺾이지 않고 있다. 소말리아 해적은 위축되고 있지만, 기니만(Gulf of Guinea) 중심의 서부 아프리카 해역이 새로운 해적 발호지가 되고 있다.
캐리비안의 해적 주인공 ‘검은수염’ (출처: 디즈니)

그런 가운데 한편으로 해적은 모험과 낭만의 대상으로 포장된 선입견도 존재한다. ‘캐리비안의 해적’이라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멋진 이미지의 해적을 만들어 냈다. 캐리비안의 해적은 상상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미국 디즈니랜드 테마파크에 운영되던 같은 이름의 놀이기구로부터 시작됐다. 실존했던 검은 수염(Blackbeard) 별명의 에드워드 티치(Edward Teach)라는 악명 높은 해적과 영국 해군 중위 로버트 메이나드(Robert Maynard)의 전투 이야기를 모티브로 다룬 영화다. 캐리비안의 해적을 둘러싼 여러 가지 호기심들을 풀어보면서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해보자.

호기심 #1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과 조선 ‘판옥선’이 싸우면?

조선 판옥선 (출처: 국립해양문화재 연구소)

비슷한 시대에 등장한 캐리비안의 해적 대표 해적선 ‘블랙펄’과 조선의 최초 전함 ‘판옥선’이 바다 위에서 전투를 벌인다면 누가 이길까?
우선 객관적인 전력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속도는 서양의 배가 빠르다. ‘캐리비안의 해적’ 속 블랙펄이 8노트(시속 15km), 영화 ‘명량’ 속 거북선이 4~6노트(시속 10km)다. 속도로만 해상에서 겨룬다면 거북선과 판옥선 모두 블랙펄을 따라 잡지 못한다.
판옥선의 단점은 이동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다. 3~5노트 수준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판옥선의 단점을 보완해 거북선을 만든 뒤 돌격선으로 삼았다. 속도가 빠른 거북선을 먼저 돌진시켜 적의 대열을 분열시킨 다음, 판옥선에서 화포 공격을 퍼붓는 전략을 구사했다.
판옥선은 임진왜란 때 왜선을 무찌르기 위해 1555년(명종 10년) 만든 배이다. 1층에 노를 젓는 노꾼이, 2층에는 전투원을 배치했다. 승선 인원은 약 125~130명이었고, 조선 후기에는 200명까지 늘었다. 조류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면 판옥선이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고, 총통 특성 등 블랙펄 보다 장점이 있다. 판옥선은 하나의 노를 5명의 노꾼이 저을 수 있어 기동성과 견고함을 갖췄다. 판옥선은 배가 높은 2층 구조로 왜구들이 기어오를 수가 없었고, 위에서 아래를 향하여 활을 쏘기에 유리했다.
결론적으로는 싸워봐야 안다.
배의 규모나 속도도 중요하지만 전투를 이끄는 리더가 조류, 해풍, 장소 등 바다를 얼마나 알고 지휘 하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전투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호기심 #2 서양과 동양의 배는 어떻게 다를까?

우선 외관상으로 볼 때 배의 바닥이 다르다. 서양배는 볼록한 모양인데 비해 통일신라 시대나 조선 시대 배들의 바닥은 평평하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이고 리아스식 해안으로 조수간만의 차가 커 언제든지 배가 육지로 올라갈 수 있어야 하고,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평평하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16세기 스페인 군선, 영국 군선, 18세기 네덜란드 무역선 등은 노가 없는 바닥이 볼록한 갤리언(Galleon) 선이었다. 이들 군선과 무역선은 연안이 아니라 대양 항해가 주목적이었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등장하는 죽어가는 갈매기, 블랙펄, 프라잉더치맨, 앤여왕의 복수 등 선박의 대부분 바닥이 볼록한 갤리언 타입이다. 갤리언 선은 항상 바람이 뒤에서 불어와야 잘 갈 수 있다. 선박의 돛에 따라 종범선과 횡종범선으로 나뉜다. 삼각형 돛이 종적으로 연결돼 있는 종범선은 주로 경기용 선박으로 많이 활용된다. 바람으로 기울어진 상태가 최적의 형상을 유지하는 비결로 속도를 올리는 관건이다.
횡종범선은 삼각형 돛을 종범 형태로 달아서 순풍이 아니더라도 방향을 바뀔 수 있도록 한 선박이다. 18세기 후반 등장한 모든 범선은 횡범과 종범을 모두 장착한 횡종범선이다. 기본적으로 범선이나 요트는 바람을 이용해 항주한다. 때문에 높은 돛대와 큰 돛이 필요하다. 제대로 항주하기 위해서는 풍력 등을 잘 담아 배를 설계해야 한다. 사람의 척추처럼 배에는 선체의 세로 강도를 맡은 킬(keel, 용골)에 그 기술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풍력을 이겨내며 항주 할 수 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돛을 조정해 앞으로 가는데 바람이 위에서 불어오면 힘이 분산돼 배가 지그재그로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바람이 앞에서 불어 오면 배가 나아가지 못한다. 때문에 바다에서는 바람을 잘 읽는 게 가장 중요하다.
조선 판옥선

종범선

횡종범선

호기심 #3 천문학과 항해술의 관계는?

지도나 나침반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어떻게 목적지까지 항해가 가능했을까. 정답은 별의 위치를 이용한 천문학에 있다. 영화 속 천문학 연구자인 여주인공이 별을 따라 지도에도 없는 지역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처럼 과거에는 별의 위치로 방향을 측정할 수 있었다. 천문학은 일상생활에 밀접한 도움을 준 대표적인 과학이다. 농수산업뿐만 아니라 사냥, 항해, 운송, 전쟁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항해사라면 기본적으로 천문항해술에 능통해야 했다.
바다에서 목적지를 가려면 자기 위치와 시간을 알아야 하는데, 나침반이나 시계도 없던 시대에 자신 위치 알기는 거의 불가능 가까웠다. 대항해를 위해선 별의 각도를 파악하고, 시계가 있어야 어떤 별이 언제 어디서 보인다는 걸 계산할 수 있었다. 지금은 GPS로 자기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지만, 당시에는 별의 위치를 기반으로 방향을 측정하고 목적지로 향할 수 있었다.
측정의 발전은 과학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m(미터)라는 길이 측정도 처음에는 시계추의 길이를 기준으로 정의하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지구의 크기를 기준으로 변경되고, 원자가 내는 빛의 색깔을 기준으로, 지금은 빛이 정해진 시간 동안 움직인 거리로 기준이 바뀌었다.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거대한 과학적 진보를 이뤄 다시 1m의 정의가 바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