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과학읽기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가 선물한
수학의 즐거움

리만 가설부터 오일러 공식까지 수학에 가까워지는 시간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포스터(출처 : ㈜쇼박스)

수포자. 수학을 포기한 자의 준말이다. 학창시절 수포자의 길에 들어서 어른이 돼서도 수학을 거들떠보기 싫은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다. 수포자의 확산이 갈수록 늘어나는 양상이다. 수포자 증가 현상은 국가 미래에 걸림돌로 여겨진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수학은 인재 양성의 근간이 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수포자 학생들에게 다시 수학에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계기가 있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가 바로 그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치열한 대한민국 대학입시 환경 속에서 수학 점수로 고민하는 학생 한지우와 학문의 자유를 갈망하며 탈북해 경비원으로 살아가는 천재 수학자 이학성이 만나 학문의 가치와 인생의 바른 길을 동시에 찾아가는 이야기다.
‘정답보다 중요한 것은 답을 찾는 과정’, ‘틀린 질문에서는 옳은 답이 나올 수 없다’, ‘문제가 안 풀릴 때는 포기하는 대신 내일 아침에 다시 풀어봐야겠다고 하는 게 수학적 용기’등 수학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과정 자체가 위로와 힐링이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리만 가설이나 오일러 공식 등 수학이 줄 수 있는 다양한 가치를 맛보게 된다. 특히 이학성이 오일러 공식을 마주하며 한지우에게 ‘아름답지 않니?’라고 반문하는 장면이 인상 깊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입시 위주의 한국 교육계에 경종을 울린다. 어려운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담담하고 꾸준하게 풀어내려는 자세는 단순히 수학 문제를 푸는 것 그 이상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의 삶을 대하는 인생과 같다.

현 암호체계 무너뜨릴 리만 가설?
리만은 누구?

베른하르트 리만,1863(출처 : 위키백과)

영화에서 이학성은 160년간 전 세계 누구도 풀지 못한 ‘리만 가설’을 증명한 것으로 나온다. 현실 속 리만 가설은 아직까지 미해결 상태이며, 여전히 많은 수학자들이 이를 증명하고자 노력 중이다.
리만 가설은 독일의 수학자 리만(Geoorg Friedrich Bernhard Riemann)이 1859년 제안한 소수(약수가 1과 자기 자신만 존재하는 자연수)의 분포에 대한 가설이다. 기하학의 기초를 확립한 다비트 힐베르트(David Hilbert)가 다시 태어나면 리만 가설의 해결 여부를 물어볼 것이라고 할 정도로 어렵고, 사회적 파급력이 큰 가설이다.
리만은 독일의 수학자로 가우스(Johann Carl Friedrich Gauss)의 직계 제자다. 가우스는 유로화 이전 시대 독일 지폐에 들어가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웬만하면 다른 사람 칭찬을 거의 하지 않았던 가우스가 리만의 박사 논문 심사를 보다가 하수구에 빠졌을 정도로 훌륭하다고 리만을 치켜세웠다.
리만은 40세로 단명했지만, 생전 10여 편의 논문들은 각기 현대수학의 출발점을 마련했다. 미분기하학, 위상수학, 복소해석학, 대수기하학, 이론물리학 등의 분야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특히 리만의 기하학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은 탄생할 수 없었다.
리만 가설이 풀리면 소수의 분포를 잘 파악할 수 있으므로 암호체계가 무너지지 않을까 예상한다. 현재 암호체계 대부분은 RSA(Rivest, Sharmir, Adleman) 알고리즘 소인수분해를 이용하였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공인인증서나 신용카드 암호도 RSA 기반의 암호체계다. 수학에서 암호를 만드는 방법은 어려운 계산을 암호로 만드는 방식이다. 두 수를 곱하는 것보다 주어진 수를 소인수로 나누는 것은 굉장히 계산하기 힘들다. 아직까지 RSA보다 빠른 알고리즘은 출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수학자들은 리만 가설이 풀리더라도 소인수분해를 빨리 계산할 수 없기 때문에 기존의 암호체계를 완전히 와해시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영화 속 한지우는 이학성에게 수학 이상의 삶의 태도를 배우게 된다. (출처 : ㈜쇼박스)

밀레니엄 7대 난제,
문제 풀면 상금 100만 달러

그레고리 페렐만, 1993 (출처: 위키백과)

2000년 세계적인 수학연구소 미국 클레이 연구소가 향후 100년 수학계를 이끌어갈 밀레니엄 7대 수학난제(Millenium Problem)를 발표했다. 리만 가설도 밀레니엄 난제 중 하나다. 7대 난제는 갑자기 발표된 게 아니다. 1900년대 힐베르트 대수학자가 제시한 23개 난제가 기반이 됐다.
밀레니엄 7대 난제는 ▲리만 가설 ▲P대 NP 문제 ▲양-밀스 이론과 질량 간극 가설 ▲나비에-스톡스 방정식 ▲푸앵카레 추측 ▲버치와 스위너톤-다이어 추측 ▲호지 추측 총 7개다. 이 난제를 해결하면 100만 달러의 상금을 받게 된다.
이 중 풀린 난제가 있다. 푸앵카레 추측(Poincare Conjecture)이 러시아 수학자 그레고리 페렐만(Grigori Perelman)에 의해 풀렸다. 푸앵카레 추측은 2002년 논문이 등장한 뒤 검증을 거쳐 2006년 증명되었다. 페렐만은 이 공로로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수상을 거부했다. 거액의 상금뿐만 아니라 여러 교수직 제안도 거절한 것으로 유명하다. 페렐만은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은둔의 수학자다. ‘자신은 부와 명예에 관심이 없다’는 짧은 인터뷰 기록만 있다. 분명한 것은 수학 난제를 풀면 부와 명예는 따라온다는 것인데, 역설적으로 100만 달러 상금의 가치만큼 부를 얻는 방법 중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방법이 난제를 푸는 길이라는 말이 있다.

수학계의 3대 노벨상

학문의 자유를 갈망해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 (출처 : ㈜쇼박스)

노벨과학상에는 수학 분야가 없다. 대신 수학 분야에서 권위 있는 세 가지 상이 있다. 필즈상(Fields Medal)과 아벨상(Abel Prize), 울프상(Wolf Prize)이다.
필즈상은 매년 수상자를 선정하는 노벨상과 다르게 4년마다 2~4명의 젊은 수학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세계수학자대회(ICM)에서 시상하며, ICM 유치 국가의 대통령이 직접 상을 수여하기도 한다. 다른 상과 가장 큰 차이점은 나이다. 40세 미만이라는 제한이 있다. 대개 수학 천재가 10대에서 20대 사이에 두각을 나타내는 점을 볼 때 수학 인재의 발전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수학계에서는 올해 7월 예정된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프린스턴 대학의 허준이 수학과 교수의 필즈상 수상을 기대하고 있다.
아벨상은 노르웨이의 수학자 아벨의 이름을 딴 상이다. 노르웨이 왕실에서 수여하는 상으로 필즈상과는 다르게 매년 시상하며 평생의 업적을 평가한다. 평생의 공로를 평가하기에 수상하기 상당히 어렵다는 평이 많다.
울프상은 이스라엘 울프 재단에서 매년 수여하는 상이다. 수학뿐만 아니라 농학, 화학, 의학, 물리학 그리고 예술 부문까지도 시상하고 있다.

이학성에 만년필을 준 수학자는 누구?

에르되시 팔, 1992 (출처: 위키백과)

영화에서 어린 시절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한 이학성이 남한의 수학 신동과 함께 만년필을 세계적인 수학자로부터 선물 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 수학자는 누굴까.
바로 에르되시 팔(Erdos Pal)이라는 헝가리 수학자이자 수학계의 거장이다. 1,500여 편에 달하는 수학 논문을 써낸 다산의 수학자다. 울프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재산에 관심이 없어 평생 자산이 가방 하나라는 말도 있다.
어린 신동을 가르치길 좋아했고, 다른 연구자와 함께하는 공동 연구를 좋아했다. 1,500편의 논문을 써낼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에르되시 팔은 수학계 연구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에르되시 수’를 따지는 게임도 있다. 에르되시 팔 본인을 0, 같이 연구한 사람을 1, 공동 연구자와 연구한 또 다른 사람을 2로 가정했을 때 얼마나 수학자 자신의 연구가 타 수학자와 관계가 있는지 네트워크를 측정하는 게임이다. 수학 저널에 논문을 게재한 수학자의 경우, 대부분 8 이하의 에르되시 수를 갖는다고 한다.
참고로 수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 수 1, 0, π(원주율), e(자연상수), i (복소수)는 ‘e+1=0’이라는 간단한 항등식으로 정리된다. ‘오일러 항등식’이라 불리는 이 공식은 수학자들 사이에서 인기투표를 하면 항상 1위를 할 정도로 가장 아름다운 공식으로 꼽힌다. 영화에서 파이(π)의 숫자를 악보로 만든 파이송도 감상해 보자.
영화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Q.E.D’란 표현이 나온다. 증명 완료를 뜻하는 라틴어 ‘Quod Erat Demonstrandum’의 준말이다. 고대 그리스 학자들부터 르네상스 시대 수학자 및 철학자들이 증명을 마칠 때 사용해왔다. 영어로 직역하면 ‘보여져야(증명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 수학은 아름답다고 증명한다. 증명 끝. Q.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