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하는 원연이

원자력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을까?

방사성의약품

원자력은 에너지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반도체 검사, 식품 살균, 식량자원 품종개량,
관상용 꽃 품종개량 등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에너지다.
특히 병원에 가면 엑스레이나 CT 등 원자력 기반의 검사 장비도 흔히 볼 수 있다.
최근 원자력은 질병을 찾아내는 것을 넘어 치료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 원리에 대해 알아보자.
방사성의약품이란 이름 그대로 의약품에 방사선을 내는 동위원소를 붙인 것인데요.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들은 몇 분에서 며칠 내에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인체에 유해하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인체 투과력은 약하나 세포를 죽이는 힘이 강한 방사선 유형을 이용해 치료용 방사성의약품을 제조합니다.
다양한 의료용 방사성의약품 중 I-131 mlBG가 있는데요. 이 약품의 원료인 I-131 mlBG는 짧은 시간에 강한 방사선을 내뿜는 방사성동위원소로 신경모세포종 등 희귀소아암 치료에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I-131 mlBG는 취급이 매우 까다로워 허가시설에서만 제조가 가능하며, 국내 수요량이 많지 않아 민간 기업에서는 생산하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유효기간도 매우 짧아 해외 수입 또한 쉽지 않았고요.
2001년 국내에서 유일하게 I-131 mlBG 취급이 가능한 동위원소 생산 시설을 보유한 한국원자력연구원이 I-131 mlBG을 공급했고 2017년에는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을 충족하도록 시설을 개선하여 지속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에 3천 명 이상의 소아암 환자들이 걱정없이 치료 받을 수 있게 된 것이죠.
국내 연구진은 한 개의 의약품으로 진단과 치료를 모두 할 수 있는 일명 테라노틱스 특성의 방사성동위원소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입자가속기인 RFT-30 사이클로트론을 활용해 국내 최초로 Cu-67(구리-67) 생산에 성공했습니다.
Cu-67은 진단용인 감마선과 치료용인 베타선을 모두 방출하는데, 반감기가 2.5일로 짧아 암치료에 효율적인 의료용 동위원소로 전망됩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까다로운 생산공정에 필요한 여러 장치를 자체 개발하고, 실험을 통해 폐암 세포의 80%를 없애는 효과까지 입증했습니다.
Lu-177과 Ho-166 또한 대표적인 테라노틱스 방사성 핵종입니다. Lu-177은 베타선과 감마선을 동시에 방출하며 신경내분비종양에 효과적인 방사성동위원소입니다. Ho-166은 고 에너지 베타선을 방출하며 간암에 효과적인 방사성동위원소입니다.
본래는 연구용원자로인 하나로를 활용해 생산하고 있었으나 기존 방식에서는 운반체로 작용한 표적물질이 남아 순도가 낮은 편이었어요. 필요한 방사성동위원소만을 선별, 추출하는 기술을 고민하였고, 수백 번의 실험 끝에 분리 장비와 프로그램 독자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안정적으로 방사성의약품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대량공급이 꼭 필요한데요. 2021년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Zr-89(지르코늄-89)를 두 가지 제형으로 동시에 대량 생산하는 자동화 장치가 탄생했습니다. 장치에 필요한 제어시스템과 GUI를 자체 개발해 버튼 조작 한 번으로 99.9% 고순도의 Zr-89와 옥살레이트, 클로라이드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생산시스템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현재 아르헨티나, 태국, 마케도니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생산시스템 자체 도입을 요청하고 있다고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선, 때로는 두렵고 낯선 존재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방사선으로 암과 희귀질환에 맞서는 방사성의약품은 환자들에게 소중한 빛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