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속 과학읽기

송이영의 혼천시계

만원권에 그려진 혼천시계

국보 제230호 혼천의 및 혼천시계(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색상이 초록색이라 흔히 배춧잎(?)이라고도 불리는 우리나라 만원권 지폐 앞면은 세종대왕이, 뒷면에는 혼천의와 천상열차분야지도 그리고 보현산천문대 망원경이 그려져 있다. 한국 과학문화, 그 가운데서도 천문학의 전통과 발전을 보여주는 콘셉트다. 그런데 만원권 지폐에 그려진 혼천의는 정확히 혼천시계에 부착되어 있는 혼천의만을 확대한 것이다. 정확히는 혼천시계 전체를 보여주어야 하지만, 도안상의 이유로 혼천의만 부분 확대하여 그려 넣은 것으로 국민들에게 약간의 혼란을 주기도 한다.
혼천의는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던 전통시대 천문관측기로 중국이 원조이기는 하나, 한·중·일 모두 사용했다.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의 혼천의는 시계와 결합하여 혼천시계로 발전한 특징이 있다. 혼천시계는 혼천의의 회전을 통해 천체의 움직을 보고, 그 천체의 회전과 함께 시계를 연동시켜 시간을 알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1669년 조선 현종 때 천문학자 송이영이 만든 혼천시계이다.
송이영이 혼천시계를 만들 때, 가장 고민이 된 것이 혼천의를 어떻게 그리고 무슨 힘으로 회전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송이영이 자명종의 시계추를 동력으로 삼아 혼천시계를 만들기 전까지 거의는 수력을 동력으로 사용했다. 대표적인 것이 물시계이다. 그러나 수력의 힘을 빌기 위해서는 가동해야 하는 장치가 거대해서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했고, 이를 성공시킨 사람이 송이영이다. 송이영은 관원으로서 천문을 관측하고 천문기기를 제작하고, 뛰어난 역산가로서 모든 역할을 수행한 당시 천문학 분야에서 촉망받았던 학자였다.
송이영은 조선 세종 대 혼천의와 혼상, 옥루의 천체 운행 원리와 특징을 참조하여 혼천시계를 제작했다. 혼천시계가 제작되기 이전에 최유지에 의해서 수력으로 운행하는 혼천의가 제작되었는데 최유지는 자신이 만든 혼천의를 본 떠 1657년에 새로운 수격식 혼천시계를 만들었다. 시간이 흘러 이 혼천시계를 수리할 필요성이 있었고 그 수리를 담당한 사람이 송이영이었다.

자명종의 원리를 이용하다

송이영은 이민철과 최유지의 혼천시계를 바탕으로 더욱 더 정교해진 혼천시계 구조를 완성할 수 있었다. 혼천시계의 구조는 『조선왕조실록』과 『증보문헌비고』, 『서운관지』 등에 잘 기록되어 있다.
최유지와 이민철이 만든 혼천시계는 수격식이라는 전통적인 제작 방식대로 만들었다. 그러나 송이영이 만든 혼천시계는 서양식 자명종 원리를 이용한 추동식 혼천시계였다. 이전시대의 수격식 혼천시계를 개량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증보문헌비고』, 『상위고』에 따르면, 송이영이 만든 혼천의도 최유지 등이 만든 혼천시계와 모양이 같으나 물항아리를 쓰지 않고 서양의 자명종 톱니바퀴가 서로 물고 돌아가는 제도를 가지고 그 격식대로 확대한 것으로써 해와 달의 운행과 시간이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전한다.
송이영이 만든 혼천시계는 일본에서 건너온 자명종을 응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이민철이 만든 수격식 혼천시계보다 규모가 작다. 당시 일본의 자명종 제작은 일찍이 서양의 제작 기술을 일찍 받아들여 조선보다 한단계 앞선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송이영이 추동식 혼천시계를 만들었다고 해서 수격식 혼천시계가 사라진 것은 아니고 조선후기까지 꾸준히 사용되어 왔다.
자명종 원리를 이용한 추동식 혼천시계는 19세기 초반에도 하나 더 제작되었다. 19세기 초반에 강이중과 강이오가 제작한 혼천시계도 송이영의 영향을 받았다. 자동 시보장치를 가졌던 자격루의 구슬시스템은 매일 구슬을 장착해 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12시용 큰 구슬이 낙하하면서 종을 울리고 시패를 회전하는 일괄적 시스템은 혼천시계에서 효과적으로 개량되었다.

시계장치 시스템의 원리

1669년에 제작한 송이영의 혼천시계는 조선을 비롯한 동아시아와 이슬람, 서양의 기계시계 시스템의 기술 발전의 흐름이 잘 구현되도록 시계장치의 기능과 성능을 개량하여 제작한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시계였다. 이는 동양의 혼천의의 기술전통과 서양에서 발전한 시계추를 이용한 자명종의 동력을 사용하여 세계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혼천시계라 할 수 있다.
혼천시계의 시계장치는 두 개의 추의 운동에 의하여 움직인다. 하나는 시각을 위한 바퀴와 톱니바퀴들을 회전시킨다. 시각은 원반형 톱니바퀴에 붙은 수직축의 바퀴를 통해 알 수 있다. 바퀴가 회전하는 것은 사각형으로 뚫어진 창문을 통해 볼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 그 바퀴에는 12시패가 붙어있는데 이 시패가 시각마다 창문에 나타나게 되어 있다. 다른 하나의 추는 시간을 알리는 타종 장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타종장치는 또 여러 개의 쇠공으로 조절된다.
1669년은 수격식 혼천시계가 자명종의 원리를 이용한 추동식 혼천시계 시스템으로 발전한 기술변화를 이룬 시점이면서, 새로운 기술 진화의 모멘텀이 형성된 시기이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 왕실이나 홍문관, 관상감 등에서 서양과학의 우수성을 지지했던 상황을 말해준다. 또한 지구자전설을 주장한 홍대용이나 박지원의 사상적 영향까지 연결되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인식하기에 충분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송이영의 혼천시계의 출현은 혼천시계사에서 혁명적 전환점이라 평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송이영의 혼천시계는 홍문관에 설치되어 학자들이 정확한 시간을 측정하고 천체의 운행을 알아보는 데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학자들은 천문학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천문시계는 선비들의 천문학 교육용으로도 활용되었다.
송이영이 1669년에 제작한 혼천시계는 동양의 혼천의 기술전통과 서양에서 발전한 추를 이용한 자명종의 원리를 결합시킨 독창적인 것으로 현재까지도 세계시계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혼천시계가 국보 제230호로 지정되어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은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의 과학기술사에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시계는 조선시대 여러 혼천시계 중에서 유일하게 거의 완형으로 남아 있다. 이 외에 170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혼천시계의 해와 달의 운행을 나타내는 혼천의의 여러 환()만이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