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과학읽기

완전 범죄는 없다! 과학수사의 힘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 본
과학수사 A부터 Z까지

마녀사냥이라는 말이 있다. 본래 마녀는 출산이나 질병치료를 돕는 의료나 점을 치는 주술사를 일컬었다. 악마와 놀아난다는 종교적 낙인이 찍히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14세기부터 18세기 중반까지 ‘마녀의 피가 흐른다’는 의심을 받으면 증명할 방도도 없이 처형당했다. 중세 말기 백년전쟁의 영웅 ‘잔 다르크(Jeanne d'Arc)’도 마녀재판으로 죽었다. 아무런 이유나 근거 없이 마녀사냥식 죽임을 당한 사람은 약 50만 명이나 된다.
마녀사냥 시대를 지나 억울한 죽음으로부터 그나마 해소될 수 있었던 한 축에는 과학수사 기술이 발전한 데 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과학수사의 대표적 영화다. 동명의 추리소설(아가사 크리스티 )을 원작으로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Hercule Poirot)’가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다. 모든 탑승객의 알리바이가 완벽하다는 점에서 포와로의 심리수사가 돋보인다.
증거소멸이나 증거불충분으로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미궁으로 빠져든 장기 미제 살인 사건들이 적지 않다. 장기 미제 살인사건이었던 대구 노래방 여주인 살인사건의 범인이 2018년 13년 만에 잡혔다. 강도현장에서 발견된 담배꽁초에서 나온 DNA가 결정적 단서였다. 2002년 서울 구로 호프집 여주인 살인사건, 2005년 강릉 70대 노파 살인사건을 푼 단서는 맥주병 조각과 포장용 테이프에 남아있던 1cm 남짓의 쪽지문뿐이었다. 2015년 8월 태완이법(살인 공소시효 폐지)이 시행된 이후 해결된 장기 미제 살인사건은 11건 정도다. 아직 260여 건이 넘는 미제 사건이 남아 있다.
범죄가 진화하고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담고 있는 것은 0.1초 찰나의 영상과 1cm도 안 되는 지문, 육안으로는 잘 분간할 수 없는 1mg의 혈액이나 1mm의 머리카락 등 아주 미세한 요소들이 사건의 결정적 정보를 담고 있다. 갈수록 복잡해지고 고도화되는 범죄에 첨단과학수사의 중요성도 날로 부각되고 있다.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보면 과학수사의 다양한 특징을 어느 정도 파악해 볼 수 있다.

영화 속 시대배경인 1930~1940년대엔
과학수사 존재했을까?

오리엔트 특급 살인. 13명의 완벽한 알리바이 속 진실을 파헤친다.(출처: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결론부터 말하면 과학수사가 존재했다. 1932년 미국 연방수사국 FBI에 실험실이 설립되는 등 과학수사 체계가 본격 태동했다. 1830년대 혈액이나 위 장기에 잔존한 독극 물질을 추적하는 행위가 오늘날 독성학으로 발전했다. 1892년 영국 유전통계학자 프랜시스 골턴이 ‘핑거프린트’라는 책을 펴내면서 지문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골턴은 사람마다 지문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입증했으며, 1892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지문을 이용해 아르헨티나에서 살인사건을 해결하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 지문을 전자 기록할 수 있는 라이브 스캔 시스템이 개발돼 현재까지도 다양한 지문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건조된 혈흔에서 ABO형 혈액형 검출 방법이 확립된 시기가 1915년이고, 거짓말탐지 기술은 1930년대부터 경찰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법의학의 시초는 12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 최초의 법의학 교과서로 불리는 중국 송나라의 ‘세원록’은 이때 나왔으며 ‘원한을 씻어준다’는 의미가 담겼다. 말 그대로 ‘억울함이 없도록 하라’는 뜻을 담은 법의학서 ‘무원록’이 중국 원나라 1341년 편찬됐고, 이 무원록을 바탕으로 조선에서도 신주무원록(세종)과 증수무원록(영조)이 각각 편찬됐다. 신주무원록은 세종대왕이 한글 주석까지 달아놓음으로써 조선 최초의 법의학 매뉴얼이 된 책이다.
죽은 자는 침묵하지만 시신에 마지막 유언의 단서를 남긴다. 법의학은 진실을 찾아 죽은 자의 원한을 씻어주는 학문으로 발전해 왔다. ‘과학적 증거’를 통해 죽은 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진실을 규명해 왔다. 16세기 해부학이 시작되고, 18세기 후반 법의학이 시작됐다.

과학수사 측면에서 포와로가
잘한 점과 잘 못한 점은?

명탐정 포와로. 사소한 진술도 놓치지 않는 기억력과 모순을 찾아내는 분석력이 돋보인다.(출처: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명탐정 포와로는 사건과 관련된 증거물품들을 다룰 때 손수건을 활용한다. 손수건으로 증거물을 만진 행위는 매우 잘한 행동이다. 본인의 지문이 찍히게 되면 수사에 혼란이 생기고, 또 원래 범인의 지문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잘못된 부분도 있다. 당시 과학수사 체계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단독으로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간 행동은 오늘날 과학수사에서는 절대 일어나선 안 된다. 현장 훼손이나 수사 혼동을 막기 위한 ‘Four Eyes’라는 원칙이 있다. 사건 현장에는 무조건 두 사람 이상이 가야한다는 뜻이다.
영화 속 주인공 에르큘 포와로와 우리가 잘 아는 가상의 탐정 셜록 홈즈의 수사방식 특징이 다르다. 포와로는 심리수사와 프로파일링 기법이 강점이다. 사소한 진술도 놓치지 않는 기억력과 모순을 찾아내는 분석력이 돋보이는 탐정이다. 셜록 홈즈는 발로 뛰는 증거 추적형이다. 행색으로 직업과 성격을 추정하는 관찰력과 추리력을 갖춘 인물로 그 수사 특징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과학수사, 어떤 기법들이 사용되나?

과학수사에서 가장 강력하게 사용되는 기법은 DNA 지문 감식이다. 이 수사기법은 1984년 영국 알렉 제프리스가 DNA PCR 증폭기술을 개발한 이후 활성화됐다. 1987년 DNA 감식기술로 처음 사건이 해결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 7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유전자분석법을 도입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희생자들의 신원을 확인했다.
범죄 수사에 가장 활발히 사용되는 기술 중 하나가 CCTV 영상분석이다. 현재 대부분 CCTV는 가시광선 카메라로 영상에 찍힌 범인의 얼굴이나 자동차 번호판 등을 확인해 중요한 수사정보로 쓰인다. 2010년 2월 성폭력 전과자 김길태가 여중생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살해·유기한 사건을 비롯해 2015년 부산 실내사격장 총기 실탄 탈취범 검거, 다양한 사기도박 사건 등 CCTV가 사건해결에 결정적 기여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열화상 감지를 비롯해 음향인식, 휴먼인식 등 다중센싱이 적용된 CCTV 카메라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혈흔 형태분석도 중요한 과학수사 기법이다. 혈흔 형태분석으로 사건현장의 재구성이 가능하다. 적혈구의 색소인 헴(heme) 반응을 이용해 혈액을 검출하는 루미놀 검사가 대표적이다. 민감도 1만 배로 희석물 검출이 가능하다.
스마트폰 기술이 접목된 수사기술도 개발 중이다. 과학수사를 하려면 전문 장비나 시약 등이 필요하고, 전문요원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 증거가 훼손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를 방지하고자 스마트폰에 관련 기술들이 접목된 ‘포렌식 스마트폰(Forensic Smartphone)’이 개발단계에 있다. 실용화 될 경우 누구든 간편하게 스마트폰으로 혈액이나 지문 등을 감식할 수 있을 전망이다.

과학수사 관련 기관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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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사와 관련된 대표적인 기관을 꼽으라면 원주에 위치해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있다. 법의학, 법심리학, 유전자 분석, 문서감정, 마약분석, 독성분석, 화학분석, 화재분석, 교통사고 원인조사, 안전사고조사, 총기사고, 음성분석, 영상분석 등 다양한 과학수사 연구를 총망라하고 있다.
대검찰청에도 과학수사 기능이 있다. 디지털 포렌식을 비롯해 유전자 분석, 법심리학, 문서 감정, 마약분석, 독성분석, 화재분석 등 다양한 과학수사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국방부 조사본부에서도 법의학과 유전자 분석, 법심리학, 약독물, 문서감정이 이뤄진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도 있다. 검시조사와 프로파일링, 지문 감정, 범죄 현장 출동, 증거물 채취, 범죄 현장 조사 등의 역할을 맡고 있다. 이외에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을 포함한 다수의 과학 연구기관들이 과학수사에 관한 연구 업무를 추진 중이다.
그런 가운데 국내에서 형사사건의 경우 국가기관인 국과수·검찰청·경찰청 과학수사 등에서 감정을 실시하고 있으나, 민사사건과 관련된 사립 탐정수사는 아직 허용하고 있지 않은 상태다. 현재 ‘사설탐정제’ 입법이 추진 중이며, 사립탐정 허용 시 약 1만 5,000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 및 약 1.3조 원 규모 매출이 발생하는 등 경제적 효과가 기대된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속편 ‘나일 강의 죽음’도 볼만하다. 이 영화는 주인공 에르큘 포와로에 대한 상세한 서사를 보여준다. 포와로가 어떻게 세계적인 명탐정이 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추리소설 전문 독립서점 ‘미스터리 유니온’이라는 책방에도 들려보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