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과학읽기

운하 위 공존하는
예술과 과학

이탈리아 베니스

이탈리아 베니스는 떡갈나무 화석 위,
수백 개의 다리와 운하로 연결된 ‘물의 도시’다.
찬란한 문화 예술을 간직한 도시는
바닷물 범람에 시달리고 있으며, 과학기술에 의지해 공존을 모색 중이다.

조수의 범람을 막는 방벽 ‘모세’

이탈리아 베니스
베니스는 400여 개의 다리, 118개의 섬과 177개의 미로 같은 운하로 이뤄져 있다. 이민족에 쫓긴 이탈리아 본토 피난민들은 생존을 위해 아드리아 해 연안 석호 위에 베니스를 세웠다. 이들은 크로아티아 등지에서 벌목한 떡갈나무를 석호 위에 올렸고, 그 나무들이 화석처럼 단단하게 굳어져 도시의 길이 되고 단초가 됐다.
석호 위의 베니스는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 운하가 범람해 산마르코 광장과 골목이 바닷물에 잠기는 모습은 오랜 기간 뉴스에 보도되었다. 베니스에서는 조수의 범람을 막기 위해 바다에 거대한 장벽을 세우는 ‘모세(MOSE)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모세’에 대한 연구는 1980년대 초반 시작됐으며 2020년 첫 가동됐다. ‘모세’는 해수면이 일정 수위를 넘어서면 자동 감지해 바다 위로 방벽이 올라오는 시스템이다. 78개의 차단벽은 밀물이 위험 수위일 경우 압축공기가 주입돼 부력으로 벽이 세워지는 원리로 작동한다.
도시자체가 예술작품인 베니스는 매년 가을에서 이듬해 봄 사이 조수가 범람하는 ‘아쿠아 알타(Acqua Alta:이탈리아어로 만조를 뜻하는 말)’로 상습적인 문화재 피해를 겪어왔다. 기후온난화 등으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석호의 지속적인 침하는 재난의 주요 원인이었다. 가라앉는 석호를 정밀분석하기 위해 최근에는 GPS와 우주레이더가 동원되기도 한다. 과학을 통해 증명된 수치는 베니스의 석호가 매년 1~4mm씩 기울어져 가라앉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예술가의 안식처였던 운하와 골목

예술가들이 드나들었던 베니스의 골목

베니스의 운하와 골목은 오랜 세월 예술가들의 안식처였다. 티치아노, 비발디, 괴테 등은 베니스를 사랑하고 도시에 기대어 작품 활동을 펼친 아티스트였다. 피렌체에서 건너온 르네상스가 마지막 꽃을 피운 곳도 이곳 베니스였다. 지중해의 상권을 장악하며 부를 쌓았던 베니스는 예술과 문화에 대한 관대함을 아끼지 않았다. 비잔틴, 고딕에서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까지 다채롭게 도시를 치장했다.
본토와 베니스섬을 연결하는 제방길은 19세기에 건설됐다. 다리가 놓이기 전, 베니스를 찾던 여행자들은 물길 건너편에서 배를 타고 섬을 오갔다. 잠들지 않는 은밀한 축제로 베니스는 연일 들썩거렸다. 부와 사치로 베니스가 타락해가던 18세기는 이곳 출신 카사노바가 날개를 펼치던 시기다. 매년 봄이면 베니스에서는 ‘카르네발레(Carnevale)’라는 가면축제가 열리는데 축제가 6개월간 흥청거리던 때도 있었다.
중앙 운하인 캐널 그란데는 베니스를 ‘S자’로 가로지른다. 베니스 최초의 석조교각인 리알토 다리는 셰익스피어의 소설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한다, 리알토 다리 주변은 곤돌라 탑승장과 어시장이 들어선 제법 북적이는 풍경이다.
‌베니스의 운하

산마르코 광장과 두깔레 궁전

대부분 여행자들은 예외 없이 산마르코 광장에 집결한다. 유럽에서 가장 넓은 광장이자, 베니스를 정복한 나폴레옹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로 격찬했던 광장이다. 16세기 아랍인, 아프리카인이 혼재하고 중국 비단이 거래되던 공간은 건축가 티랄리의 손길이 닿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변신했다. 광장 한편에는 바이런, 카사노바 등 명사들이 단골로 방문했던 카페가 여전히 성업 중이다. 베니스 출신의 오페라 작곡가인 비발디에게 산마르코 광장은 추억의 장소다. 비발디는 산마르코 대성당에서 이발사 출신인 아버지와 함께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유년의 시절을 보냈다.
베니스 공화국의 위세를 보여주는 두깔레 궁전이나 날개달린 사자상 등을 알현하려는 외지인들로 광장 인근은 늘 구름인파다. 두깔레 궁전의 입구인 거인의 계단에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무역의 신 헤르메스가 지키고 서 있다. 바다와 무역은 공화국 베니스의 두 버팀목이었다.
두깔레 궁전

산마르코 광장

베니스를 수놓은 건축물과 미술관

일몰 즈음에는 두깔레 궁전 건너편의 산조르조 마조레 성당의 풍광이 아름답다.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후원했던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데 메디치는 베니스로 망명해 이곳에 은신했다. 성당에는 피렌체와 베니스의 르네상스가 함께 투영됐다.
샤갈, 달리. 칸딘스키 등 쟁쟁한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 중인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은 익숙한 작품들로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투박한 목조다리 건너 「아카데미아 미술관」에는 조르조네, 티치아노, 틴토렌토 등 화려한 빛과 색채를 구현한 베니스 르네상스시대의 화가들 그림이 전시돼 있다. 세계 3대 비엔날레인 베니스 비엔날레의 명성에는 예술적 자산들이 깊은 자양분이 됐다.
베니스는 예로부터 ‘세상의 다른 곳’이라는 의미인 ‘알테르 문디(Alter mundi)’라 불렸다. 운하의 도시를 동경했던 괴테는 “베니스에 머물렀던 시간은 짧아도, 명료한 인상을 간직한 채 이곳을 떠난다”고 그의 기행문에 적어두었다.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