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눔

인생에서 한 번쯤 만나봐야 할 그것,

오로라

저는 천체사진가입니다. 밤하늘의 별을 찍는 일이 직업이죠. 신기한 것들을 보러 많은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인간이 자연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경이로움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오로라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가 본 것들 중에서는 말이죠. 짧은 인생, 죽기 전에 한 번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오로라는 밤하늘의 네온사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기본 원리가 같다고 합니다. 네온사인의 에너지원은 전기인데 오로라에서는 태양이죠. 태양은 빛과 열뿐만 아니라 입자들도 뿜어냅니다. 이 입자들이 지구 자기장에 끌려 남극과 북극 근처의 하늘에서 공기 입자들과 부딪치면 공기 입자들은 그 운동에너지를 흡수했다가 빛의 형태로 발산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극지방의 차가운 밤하늘을 물들이는 오로라 빛의 정체입니다.
실제로 보면 거대한 형광 빛의 커튼이 밤하늘에 걸려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여신의 춤추는 치맛자락 같기도 합니다. ‘오로라(Aurora)’라는 이름은 갈릴레이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새벽의 여신 ‘아우로라(Aurora)’를 따서 지은 것입니다. 그 거대한 빛의 너울거림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예로부터 북극권에 사는 사람들의 신화와 전설의 원천이 되어 왔죠.
직접 보는 것은 너무 어렵지 않을까? 사실 오로라는 1년 365일 24시간 항상 지구 상공에 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아래에 가기만 하면, 어두운 밤이 되고 구름이 가리지 않는다면 볼 수 있습니다. 운이 좋으면 가는 길에 비행기에서 보기도 합니다. 문제는 날씨죠. 북극권의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지역들 대부분이 날씨가 좋은 편이 아닙니다. 아이슬란드만 해도 겨울철 날씨 통계를 보면 한 달 30일 중에 20일이 비가 옵니다. 나머지 열흘도 흐린 날이 대부분이죠. 적도의 따뜻한 바닷물이 순환하면서 유럽 쪽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북극의 차가운 공기와 만나서 구름을 만들고 비를 뿌립니다. 저도 아이슬란드에 오로라를 보러 갔었는데 여드레 만에 간신히 한 번 볼 수 있었습니다. 노르웨이에서도 비슷했죠. 시베리아나 알래스카도 상황이 별 다르지 않습니다. 바다와 가장 멀리 떨어진 북미 대륙의 북쪽 가운데가 그나마 날씨 조건이 나은 편입니다. 캐나다의 옐로나이프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로라의 수도라고 불리는 동네죠. 사흘 이상 머물면 95% 이상의 확률로 오로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나흘 이상이면 무려 98%입니다.
에노다 로지

오로라 빌리지

오로라를 보기 위해 이 외진 마을에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듭니다. 영하 30~40도에 이르는 추위 때문에 방한복과 방한화를 빌려야 합니다. 여행사들이 빌려주는 ‘캐나다 구스’ 방한복은 관광객들의 유니폼입니다. 따뜻하게 챙겨 입고 호텔 앞에서 셔틀버스를 타면 중심가에서 좀 떨어져서 불빛이 적은 곳으로 데려다 줍니다. 이제 오로라를 영접할 시간입니다.
그런데 오로라라고 다 같은 오로라가 아닙니다. 희미한 오로라를 보면 사진에서 보이는 화려한 느낌은 온데간데없고 뿌연 구름 같습니다. 빛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움직임도 거의 없습니다. 사진에서 본 초록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그저 희뿌옇습니다. 사람의 눈은 카메라와 달리 어두운 빛에 대해서는 색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죠. ‘이런 걸 보러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하고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본전을 뽑으려면 더 강렬한 오로라를 만나야 합니다. 오로라는 밝을수록 그 움직임도 빨라지는데 밝은 오로라가 나타나면 오로라의 결이 꼭 하늘에 피아노 건반들이 걸려 있는 것 같습니다. 월광 소나타의 3악장을 연주하는 듯 격렬하게 움직입니다. 눈으로도 희미한 초록색이 느껴지고 군데군데 붉은 기운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걸 오로라 댄싱이라고 부르는데 이 정도는 봐야 오로라를 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쪽으로 가는 길 옆 호숫가에서 촬영

하지만 진짜는 따로 있습니다. 춤을 추던 오로라가 갑자기 폭발하듯 밝아질 때가 있습니다. 오로라 폭풍입니다. 영어로는 브레이크 업(Break-up)이라고도 합니다. 이때가 되면 갑자기 주변이 밝아지면서 바닥에 쌓인 눈 알갱이들까지 형광 빛으로 같이 빛납니다. 온 하늘에 오로라의 빛이 가득 차 소용돌이치며 특징적인 핑크색도 볼 수 있습니다. 오로라를 만드는 태양에서 온 입자들이 대기를 깊숙이 뚫고 들어와 질소 분자들과 충돌하여 만들어내는 색입니다. 내가 본 것이 오로라 폭풍일까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가슴이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죠.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거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인간이 자연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경이로움의 최대치를 본 것입니다. 이 느낌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면 사진가가 아니라 시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순간은 사진으로도 제대로 표현하기 쉽지 않죠. 그러니 꼭 직접 봐야 합니다.
하지만 요새는 코로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조금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오로라는 태양의 활동에 맞춰 11년 주기로 극대기와 극소기가 반복됩니다. 2019년 전후로는 극소기라서 이때에는 오로라 폭풍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앞으로 점점 활발해질 것으로 보이는데 2024~2025년으로 예상되는 극대기가 되면 일주일에 오로라 폭풍을 여러 번 볼 수 있습니다. 태양 표면에서 흑점폭발이라도 있으면 그 뒤로는 일주일 이상 화려한 오로라가 매일 펼쳐지기도 합니다.
오로라의 수도 옐로나이프에서 나흘 이상 있으면 98%의 확률로 오로라를 보지만, 이 오로라 폭풍을 만날 확률은 그중에서도 20% 정도 밖에 안 됩니다. 하지만 떠나지 않으면 확실하게 0%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한 그대, 떠나라!”고 ‘뽐뿌’를 한가득 넣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