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과학읽기

로봇의 진화,
인류에 좋기만 할까?

기술 발전으로 멀어진
인간관계 다룬 <고장난 론>

로봇(Robot)은 체코어로 고된 일을 하는 노동자(Robota)를 의미한다. 이 단어가 처음 기록된 것은 약 100년 전. 체코슬로바키아 극작가 카렐 차페크(Carel Čapek)가 1920년 발표한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을 통해 로봇이란 개념을 최초로 등장시켰다. 강한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과 인간의 대결이라는 소재를 처음으로 탄생시킨 셈이다. 인간의 편리한 삶을 위해 대량생산된 로봇에 의해 결국 인류가 지배당한다는 메시지는 궁극적으로 노동의 가치와 인간성의 본질을 고찰하게 만든다.
차페크의 로봇 개념이 출현한 지 100년이 훌쩍 지났다. 21세기는 로봇 천지다. 산업용 로봇부터 청소로봇, 수술로봇, 배달로봇, 전쟁로봇. 최근 음식까지 만들어주는 로봇도 대중화되고 있다. 갈수록 세분화되고 인류의 삶 속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2021년 10월 개봉한 애니메이션 ‘고장난 론’은 하얀 눈사람처럼 생긴 소셜로봇 ‘론’과 소년 ‘바니’와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다. 영화 속 ‘비봇’이라는 소셜로봇은 아이들 특성에 맞춰 친구를 추천하는가 하면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고, 이동 수단까지 되는 만능 보조 로봇이다. 현대인들이 핸드폰 1시간만 없어도 불안해하는 것처럼 비봇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들을 마주한다.
최첨단 비봇을 갖는 것이 소원인 주인공 바니가 고장난 비봇 ‘론’을 선물 받게 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아간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상에서 쉽게 관계를 맺는 시대에 친구라는 개념과 사회적 연결망이 주는 가치가 얼마나 피상적일 수 있는지 일깨운다. 애니메이션이라서 아이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서로에 대해 진실하게 사귀며 친구가 되는 것보다 편리하고 빠른 삶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어른을 위한 영화다. 100년 전 차페크의 희곡처럼 애니메이션 ‘고장난 론’도 결국 인간의 삶의 본질에 대해 질문한다. 로봇과 인간의 궁극적 관계 설정에 대해 자연스럽게 사고하게 된다.

로봇 개발 어디까지 왔나?

하이파이브! 로봇과 인간이 다양한 교감을 하며 새로운 관계를 쌓는다.(월트디즈니컴퍼니 제공)

많은 종류의 로봇이 개발되고 있다. 현재까지 개발된 대부분의 로봇은 물건을 만드는 제조로봇, 즉 산업용 로봇이다.
다방면에서 인간을 도와주는 개인형 서비스 로봇을 지원로봇(Assistive Robot)이라 한다. 지원로봇도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는 가운데 산업계 적용이 한창이다. 식당 음식을 나르는 로봇은 이미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영화 속 비봇과 같은 소셜로봇도 새로운 가전제품 형태로 대중에게 선택받고 있다.
비봇의 핵심 기능인 친구 찾아주는 서비스도 미래의 일이 아니고 이미 실현되고 있다. 고령자 지원로봇으로 SNS와 연계해 가족·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게 돕는 로봇이 있다.
지원로봇은 크게 2가지 종류다. 사회적 지원로봇과 물리적 지원로봇이다. 사회적 지원로봇은 사람과 대화를 하고, 정보서비스를 제공하며 정서적인 안정감을 준다. 동물처럼 생긴 애완로봇이 대표적이다. 물리적 지원로봇은 신체적 도움을 주는 지원로봇이다. 걷기 힘든 사람에게 물건을 가져다주거나, 음식을 먹여준다거나 하는 로봇들이다.
매년 국제적으로 개인용 서비스 지원로봇의 지능 수준이나 능력을 평가하는 경진대회가 열린다. 대회는 가령 가정에서 파티를 열었을 때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로봇으로 설정하고 미션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람이 문을 열어주면 대기 중인 로봇이 복도를 따라 거실로 이동해 음료를 요구하면 가져다주는 로봇 경진대회도 열린 바 있다. 실제 수준을 보면 지원로봇은 문이 열려도 문이 열렸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복도를 따라가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10번의 시도 중 8~9번은 임무 수행에 실패하는 꼴로 여전히 개선될 여지가 많은 수준이다.
‘고장난 론’의 비봇과 같은 환상적 기능들은 사실 현재로서는 꿈과 같은 이야기다. 다만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이 빨리 발전하고 있는 덕분에 비봇의 실현 가능 시점은 앞당겨질 수 있다.

감정 이해하고 표현하는 로봇의 원리는?

‘고장난 론’ 영화 포스터(월트디즈니컴퍼니 제공)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로봇이 존재할 수 있을까? 로봇 개발의 초기 단계 연구개발 목표는 주어진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높은 지능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실제 사람과 같은 로봇을 만들려는 노력이 계속되면서 1990년대 말 이후 본격적인 감성로봇들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현재로서는 로봇이 감정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다. 패턴을 인식할 뿐이다. 겉으로 드러난 사람의 얼굴 표정이나 행동, 몸짓 또는 음성 등 다양한 단서를 기반으로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 사람이 정해준 대로 지도학습 방법을 이용해 패턴을 인식하게 되는 원리다. 사람이 웃고 있다고 패턴을 인식하면 로봇도 웃으라는 코딩작업으로 감정을 재생해주는 것뿐이다.
로봇의 감정 표현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LED 화면에 하트모양이나 이모티콘을 렌더링해 표현할 수 있다. 실제 사람의 얼굴 근육처럼 움직임이 있는 로봇도 등장하고 있다. 수많은 모터들이 적용된 인공 피부를 개발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실제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로봇이 감정을 소유하려면 인간의 생리 대사작용부터 이해해야 한다. 사람이 어떻게 감정을 읽는지를 알고, 이를 로봇에게 심으면 된다. 사람은 대사조절, 반사작용, 면역반응 등 생리현상으로부터 감정을 느낀다. 인간의 감정 느낌이 분출되는 가장 근본적인 대사작용과 생리적 현상으로부터의 고통과 쾌락, 행복의 계층적 시스템을 인공적으로 구현해줘야 한다. 로봇이 인간의 특성 자체를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로봇이 감정을 비로소 갖출 수 있다. 해당 로봇 연구는 초입 단계다. 아직까지 로봇의 감정 연구는 갈 길이 멀다.

로봇이 사람을 때린다…?
로봇 행동 3대 원칙 위반

론은 고장났지만, 바니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월트디즈니컴퍼니 제공)

영화에서 론은 사람을 공격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특성상 비봇이 부드럽고 귀엽게 등장해 사람을 공격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로봇이 사람을 공격한다면? 상상만 해도 심상치 않은 일이다.
로봇은 기본적으로 로봇 3대 원칙에 의해 사람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1950년 발간한 소설인 ‘I-Robot’에서 로봇 행동에 관한 3가지 원칙이 제시된 바 있다. 3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제1법칙,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되며, 위험에 처해 있는 인간을 방관해서도 안 된다. 제2법칙, 로봇은 인간이 내리는 명령들에 복종해야만 하며, 단 이러한 명령들이 첫 번째 법칙에 위배될 때에는 예외로 한다. 제3법칙,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아시모프의 3대 로봇 행동 원칙처럼 로봇은 인류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존재한다. 현대 로봇은 대체로 사람을 돕기 위해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로봇이 사람에 해를 끼치는 용도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각종 무기·특수장비가 탑재된 전쟁로봇이나 사람의 얼굴을 그대로 재현하는 딥페이크 기술이 그 예다. 드론에 총을 장착해 사람을 쏘아 죽이는 사례들도 영화나 현실에서 종종 접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기술 사회적으로 연구윤리가 점차 이슈화되고 있다. 로봇의 행동 원칙에 위배되는 일을 항상 경계하면서 로봇이 인류를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연구개발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문화 질서를 바로 세워나가야 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과학시민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