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견

꿀벌 대량실종

미스터리를 풀어라

“벌이 다른 동물보다도 한층 더 존경받아야 하는 것은,
벌이 단순히 일을 한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벌들은 다른 벌들을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크리소스토무스, 347?~497)


“당신이 벌 여러 마리를 잡아둘 수는 있겠지만 벌 한 마리만 잡아둘 수는 없다.”

(영국 속담)

노르웨이 오슬로 시내 중심가의 한 고급 푸드마켓 옥상에는 16만 마리의 꿀벌이 살 수 있는 인공 벌집이 설치돼 있다. 수분을 담당하는 벌의 개체 수 감소에 대응하고 녹색 도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불칸 비하이브 제공)

‘부지런함’과 ‘협력’의 대명사인 ‘벌’은 개미와 함께 대표적인 사회적 동물로 취급받고 있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 봄꽃들이 피면 꿀을 모으기 위해 부지런히 날아다니는 꿀벌이 눈에 많이 띈다. 그런데 봄철 꿀 수확기를 앞두고 충북과 제주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해 양봉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 같은 꿀벌 실종 사건은 비단 한국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2006년을 전후해 꿀벌의 대량 폐사, 집단 실종 현상이 나타났다. 농업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온 현상, 면역력 저하, 살충제의 과다 사용 등을 원인으로 추정할 뿐 정확한 이유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 때 상대성 이론으로 현대물리학의 한 축을 만들어 낸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 떠오른다. 실제 발언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꿀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도 4년 내에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말은 어쨌든 생태계에서 꿀벌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말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조사에 따르면 꿀벌은 세계 주요 100대 농작물 중 71개 작물의 가루받이(수분)를 돕는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수분 매개 곤충인 나비와 꿀벌에 의해 재배되는 작물의 생산량은 전체 30%에 이른다. 돈으로 환산하면 최소 2,350억 달러(약 290조 원)에서 최대 5,770억 달러(약 711조 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 꿀벌은 소, 돼지에 이어 세 번째로 중요한 가축으로 대접받고 있다.
부지런함과 협력의 대명사인 ‘꿀벌’은 식물의 꽃가루를 옮겨 다양한 작물 재배가 가능하도록 돕는 유용한 곤충이다.(픽사베이 제공)

전문가들은 농약 사용과 기후변화로 인한 벌의 면역력 약화 등을 꿀벌 대량실종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픽사베이 제공)

가루받이 곤충 감소는 작물 생산뿐만 아니라 실제로 인간의 생존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이 2015년 8월, 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랜싯’에 수분 매개 곤충이 사라지면 매년 142만 명 이상이 추가로 사망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과일 생산량 22.9%, 채소 16.3%, 견과류 22.3%가 줄면서 임산부와 어린이에게 필수적인 비타민A, 비타민B, 엽산 등의 필수 영양소 공급이 감소하여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사망자가 급속하게 늘 것이라는 말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처럼 생물다양성 분야 과학적 자문을 하는 ‘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가 발표한 ‘수분 및 수분 매개체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전 지구적으로 벌, 나비와 같은 수분 매개체 곤충의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나비는 4%가 멸종위기, 5%가 멸종위협 상황에 놓여있으며 야생벌은 2.8%가 멸종위기, 1.2%가 멸종위협에 처해 있다. 벌은 종()의 56% 이상에 대해 명확한 통계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평가된 것이기 때문에 실제 벌의 멸종위협은 추정치의 2~3배는 훌쩍 넘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실제 유럽의 경우 50년 전과 비교했을 때 벌의 개체 수는 37%, 나비는 31%나 줄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40~50% 이상의 벌이 멸종위기에 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벌의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이유는 뭘까. 과학자들이 파악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서식지 감소 ▲병해충 ▲기후변화 ▲농약 사용 ▲외래종 유입 ▲환경오염 6가지이다.
문제의 핵심은 도심 개발이 확대되면서 곤충들의 서식 장소는 물론 농지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농지 축소에 따라 집약적이고 수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농약을 쓰게 되는데 해충뿐만 아니라 일반 곤충에게까지 치명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벌의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사라지는 벌을 지키기 위해 도시에서 벌을 키우는 ‘도시 양봉’이 주목받고 있다.(서울신문 DB 제공)

환경단체들은 네오니코티노이드라는 살충제가 꿀벌 개체 수 감소의 핵심 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담배 속 니코틴과 화학적으로 비슷한 네오니코티노이드는 기존 살충제보다 독성이 덜하다는 이유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현재 이를 금지하는 곳은 유럽연합(EU) 뿐이다. 실제로 독일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대 의대 연구진이 미국 공공과학도서관에서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네오니코티노이드가 미량으로 존재하더라도 꿀벌에게는 치명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네오니코티노이드는 미량만으로 꿀벌의 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들어 벌집을 못 찾게 만들고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꿀벌이 생산하는 꿀의 품질까지 떨어뜨린다고 한다.
농촌지역 꿀벌 폐사와 실종 주요 원인이 살충제 사용 때문이라면 도시와 도심 근교의 꿀벌이 사라지는 이유는 뭘까.
미국 플로리다대, 미시건주립대, 텍사스 A&M대, 중국 난창대 공동연구팀은 도시와 교외 지역에서의 꿀벌 실종 원인을 찾아 나섰지만 살충제가 원인은 아니라는 점만 밝혀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환경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환경 독성학 및 화학’ 3월 10일 자에 실렸다.
연구팀은 미국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미시건, 텍사스 4개 주 8개 중·대도시에 있는 꿀벌 집단에서 2년 동안 매달 채집한 768개의 꿀과 꽃가루에서 살충제 수치를 측정했다. 그 결과, 샘플의 약 73%에서 사람은 물론 벌에게도 위해를 가할 정도의 살충제는 검출되지 않았다.
연구를 이끈 제임스 엘리스 플로리다대 곤충학과 교수는 “이번 연구는 농촌 지역과 도시 지역 꿀벌의 집단 폐사 원인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도심지역에서는 열섬현상 같은 온난화에 따른 영향이 꿀벌 폐사 및 실종사건의 핵심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일부 사람들은 곤충이나 동식물 일부가 사라지는 것이 무슨 대수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묻고 싶다. 곤충이나 동식물이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겠냐고.
최근 충북과 제주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해 양봉 농가의 한숨을 부르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2006년부터 꿀벌이 대량 폐사 하는 현상이 계속 나타나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픽사베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