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눔

내가 사랑한 작품들

“이소영 선생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미술작품은 무엇인가요?”
살면서 내가 받은 질문 중 가장 많이 들은 문장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이 질문에 확실하게 대답한 적이 없다. 좋아하는 화가가 시대별로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꾸준히 좋아하는 화가가 있다.
오딜롱 르동 <자화상> 1880 캔버스에 유화

나는 대부분 모호성을 가진 화가들의 그림을 좋아한다. ‘모호성’을 가진 작품이라는 말은 단어 그대로 여러 뜻이 뒤섞여 있어서 정확하게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기 어려운 작품이다. 우리가 흔히 인지하고 있는 미술 작품의 미()는 비단 예쁜 것이나 아름다운 이미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하나의 미술 작품 안에는 시대성의 미학, 당혹스러움의 미학, 고독의 미학, 허무함의 미학이 다양하게 들어있다. 그래서 나는 첫눈에 보자마자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보다 왠지 모를 알쏭달쏭함이 있는 작품에 유독 끌려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프랑스의 화가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1840~1916)의 작품이다.
르동은 태어난 지 이틀 만에 부모님을 떠나 삼촌에게 입양을 갔고, 그 기억을 간직한 채 성장했다. 다행히 다시 가족에게 돌아왔지만, 이런 어린 시절의 기억은 르동이 남은 인생을 고독과 어둠 속에서 지내게 만들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고 내성적인 아이로 성장했다. 그에게 유일한 친구는 그림이었다.
여기 르동이 그린 작품이 한 점 있다. 제목은 <키클롭스>다. 나는 이 작품을 여전히 컴퓨터 배경화면으로 해놓는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거인이자 외눈박이 괴물이다. 우라노스는 자신의 자식들의 생김새가 너무 역겨워 지하세계에 오랜 시간 가둬버린다.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지낸 키클롭스의 삶은 어떻게 보면 르동과 평행선처럼 느껴진다. 그림 속의 외눈박이 거인괴물은 키클롭스들 중에서도 ‘폴리페모스’라는 아이다. 이들은 훗날 제우스가 자신들을 지하세계에서 풀어줄 때까지 갇혀 있어야했고 제우스로 인해 지하세계에서 풀려나 그에게 위대한 번개를 선물한다. 괴물이라는 단어를 쓰기 미안할 만큼 순수한 표정의 키클롭스는 산 너머에서 누군가를 훔쳐보고 있는데 바로 사랑스런 요정 님프 ‘갈라테이아’다.
자신과는 다르게 작고 어여쁘고 하얀 피부를 가진 요정을 바라보는 키클롭스. 누가 저 그림 속 괴물을 무시무시하게 볼까? 그는 영락없이 순수하고 사랑에 빠진 눈빛이다. 곤히 잠든 아름다운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해 망설이는 키클롭스의 표정이 나는 좋다. 모든 일에 자신감이 많은 사람보다 소심한 사람의 편에 서고 싶은 마음이 내게는 늘 있었다.
과연 그녀가 그를 사랑하는 날이 올까? 안타깝게도 그녀에겐 이미 사랑하는 인간 아키스가 있었다. 그 사실을 안 키클롭스는 몹시 슬펐다. 어느 날 갈라테이아와 아키스가 해변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모습을 본 키클롭스는 화가 난다. 하지만 괴물에겐 이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덩치 큰 돌을 들어 그들에게 던진다. 가엽은 인간 아키스는 죽고 만다. 갈라테이아 역시 세상을 잃은 듯 슬퍼했다. 르동은 산 뒤에서 몰래 님프를 바라보는 키클롭스의 모습을 그림에 잘 담아냈다.
오딜롱 르동 <키클롭스> 1914 캔버스에 유채

오딜롱 르동 <노란 숄을 걸치고 있는 르동부인> 1902 패스트보드에 파스텔

다음 작품은 르동이 부인 카미유 팔트(Camille Falte)를 그린 그림이다. 그는 조용했던 성격 탓에 여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몇 번의 어설픈 연애 후 마흔 살이 다 된 1880년 드디어 진정한 동반자를 만난다.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에 그를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입장시킨 사람은 스물일곱의 총명한 여인 카미유 팔트였다. 다른 여인들에게는 소극적이었던 르동이 신기하게도 카미유에게는 적극적이었다. 그는 카미유에게 자주 편지를 썼으며 편지를 쓰는 동안에도 내내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카미유와 결혼하기 전 르동의 그림들은 눈이 큰 거인의 머리가 등장하거나, 음산한 거미가 주인공이거나 하는 등 어두운 분위기인 것에 비해 결혼 후에는 꽃 그림도 상당히 많고 다채로운 색의 파스텔화의 양이 훨씬 많아졌다. 카미유는 독서를 좋아하고 내조를 잘하는 여성이었다. 카미유는 꽃을 그리기를 좋아하는 르동을 위해 늘 야생화를 직접 꺾어 집에 가져다 놓았고 꽃이 없을 때는 집에 있는 물건들을 조금씩 팔아 꽃을 사놓았다. 둘은 검소하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하지만 결혼 6년 후 태어난 첫째 아들 잔은 6개월 밖에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아들을 잃은 아픔은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한 마음이 더욱 연민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을 것이다. 르동에게 카미유는 아내이자 엄마였고 둘도 없는 친구였다.
르동의 그림들을 바라보면 삭막한 순간에도 순수해지고 싶어진다. 르동은 어릴 적부터 친구가 많이 없었고 외골수였다. 늘 고독하고, 자신감이 없던 그가 그린 그림들이 유독 내 마음에 다가온 것은 나 역시도 소심한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일 거다.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보다 부족한 사람이 더 많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기의 예술가들을 사랑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