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ERI 이슈

원자력으로 ‘차세대 반도체’ 양산 길 열다

세계 최초 ‘SiC 반도체 웨이퍼의 대량 도핑 기술’ 개발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 이용,
초고품질 전력 반도체 도핑 시장 선점 기대

탄화규소 잉곳을 담은 도핑 장치(우측 아래 원통형)가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에 들어가고 있다.

전력반도체는 전력을 제어하는 반도체로 전기차 및 신재생에너지 설비의 핵심 부품이다. 주로 실리콘(Si) 소재를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전력 효율과 내구성을 극대화한 ‘차세대 전력반도체’1) 시장이 부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가 차세대 반도체 대량생산에 필요한 원천기술을 확보해 화제다.
연구원은 세계 최초로 ‘탄화규소(SiC) 반도체 웨이퍼의 대량 도핑 기술’을 개발했다.
탄화규소는 단단하고 고온에 강하며, 전력변환 시 손실이 적다. 또한 높은 전력에 대한 제어능력이 실리콘 대비 600배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로에서 생산한 탄화규소 반도체 웨이퍼 중성자 도핑 전(위) 중성자 도핑 후(아래)

지금까지 해외 연구는 탄화규소 소재의 웨이퍼를 작게 자른 ‘소형 반도체 칩’ 단위에서 실험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원자력연구원은 상용되고 있는 탄화규소 웨이퍼 그대로 여러 장을 한꺼번에 도핑하는 데 성공했다.
하나로이용부 박병건 박사팀은 2018년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사선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본 성과를 이뤄냈다.
이번 원천기술에는 국내 유일의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를 이용한 ‘중성자 핵변환 도핑(NTD, Neutron Transmutation Doping)’ 기술이 주요 토대가 됐다.
부도체인 탄화규소 단결정(잉곳, ingot)에 중성자를 조사해 원자핵 중 극미량을 인(P)으로 변환시켜 반도체로 만드는 원리다. 인을 직접 투입하는 일반적인 화학 공정보다 인이 균일하게 분포된다. 이런 장점으로 NTD는 고전압, 고전류를 제어하는 초고품질 전력반도체 소자 생산에 주로 사용된다.
‘하나로’는 2002년 연구원이 ‘실리콘 잉곳 도핑 기술’을 확보했던 당시에도 NTD로 기여한 바 있다. 지난해 6월 재가동 기간에 이번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이번에 중성자 도핑 균일도(RRG)2)를 1% 이내로 유지하는 기술과 탄화규소 웨이퍼 1,000장을 동시에 도핑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했다.
탄화규소(SiC) 소재에 대한 중성자 핵변환 도핑 원리 이미지

기존 탄화규소 웨이퍼의 상용도핑 균일도가 6% 수준이었던 반면, 원자력연구원은 0.35% 수준으로 그 정확도를 높였다.
또한 탄화규소 잉곳을 담는 도핑 장치를 이용해 하나로 수직 조사공에 직경 4인치 웨이퍼 1,000장을 넣는 방식으로 대량 공정이 가능하다.
하나로이용부 선광민 부장은 “이번 원천기술 확보를 발판 삼아 2023년까지 탄화규소 전력반도체 도핑을 본격적으로 상업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연구원 박원석 원장은 “중성자 핵변환 도핑은 연구로를 이용해 원소를 바꾸는 21세기 연금술”이라며, “세계 최초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가오는 차세대 전력 반도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1) 차세대 전력반도체

실리콘카바이드(SiC, 이하 탄화규소), 질화갈륨(GaN), 산화갈륨(Ga2O3)이 3대 핵심소재

2) RRG(Radial Resistivity Gradient)

웨이퍼 도핑 농도를 판별하는 지표로, 0에 수렴할수록 균일

양성자가속기,
방사성의약품 공급에 첫발

국내 최초 ‘Sr-82’ 생산 및 ‘Rb-82 발생기용 흡착컬럼’ 개발
안정적인 심장질환 진단 기대,
발생기 국산화 목표

연구원이 양성자가속기를 이용해 스트론튬-82 생산에 성공했다.

세계에서 3번째로 개발된 우리나라 대용량 양성자가속기가 방사성의약품 공급에 첫발을 내디뎠다. 아울러 병원에서 해당 약품을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했다.
연구원은 국내 최초로 ‘스트론튬-82(Sr-82)’ 생산과 ‘루비듐-82(Rb-82) 발생기용 흡착컬럼(column)’ 개발에 성공했다.
루비듐-82는 심근경색 등 심장질환 진단에 유용한 방사성동위원소다. 그러나 반감기가 75초로 매우 짧아 연구원은 그의 모핵종1)이자 반감기가 25.5일인 스트론튬-82를 생산했다.
의료 현장에서 루비듐-82를 직접 추출해 사용하려면 ‘방사성동위원소 발생기(RI generator, 이하 ‘발생기’)’가 필요하다. 생리식염수를 주입하면 스트론튬-82가 붕괴하면서 루비듐-82가 생성되는 장치다. 연구원이 개발한 흡착컬럼은 발생기의 핵심부품으로 스트론튬-82를 흡착해 루비듐-82만 외부로 용출시킨다.
연구원 양성자과학연구단 김계령 박사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사선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본 성과를 이뤄냈으며, 해당 내용은 방사성의약품학회지(7권 2호, 2021.12)에 게재됐다.
이번 연구성과는 원자력연구원이 보유한 고에너지 선형 양성자가속기를 활용했다.
발생기용 흡착컬럼으로 용출한 루비듐-82 PET 영상(왼쪽부터) 상단, 좌우 측면 노란색은 방사성동위원소 루비듐-82로 용액 내 고루 생성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원은 지난 2012년 100MeV(메가전자볼트)급 선형 양성자가속기를 구축했다. 이후 2014년 표적조사용 빔라인시설, 2021년 분리정제용 핫셀을 추가 설치함으로써 방사성동위원소 생산에 필요한 모든 기반을 갖췄다.
스트론튬-82는 국내 양성자가속기로 생산한 첫 방사성동위원소다. 연구진은 먼저 염화루비듐(RbCl) 표적2)에 100MeV 양성자빔을 조사했다. 표적 내 루비듐 중 일부는 양성자와 핵반응을 일으키며 스트론튬-82로 바뀐다. 이후 분리정제 공정을 거쳐 고순도의 스트론튬-82 용액을 얻었다.
연구원이 개발한 루비듐-82 발생기용 흡착컬럼

나아가, 연구진은 스트론튬-82 용액과 흡착제가 들어갈 컬럼을 제조했다. 컬럼 내에 강하게 흡착된 스트론튬-82 중 일부가 방사성붕괴해 루비듐-82로 변하면 흡착력이 떨어져 식염수만으로도 쉽게 용출할 수 있다. 한국원자력의학원(원장 박종훈) 김진수 박사팀과 함께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 영상을 획득함으로써 발생기 컬럼의 성능을 확인했다.
연구원은 이번에 생산한 스트론튬-82를 한국원자력의학원에 연구용으로 우선 공급해, 해당 방사성동위원소의 전임상 성능을 동물실험으로 입증할 예정이다. 또한 루비듐-82 발생기의 국산화를 장기적인 목표로 두고 있다.
연구원 박원석 원장은 “국내 유일 선형 양성자가속기를 이용한 첫 방사성동위원소 개발이어서 더욱 뜻깊다”며 “앞으로 한국원자력의학원과의 협력을 강화해 의료계에서 안정적인 심장질환 진단이 가능하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연구원 양성자과학연구단에 설치된 표적조사시설

1) 모()핵종

‌방사성동위원소가 붕괴돼 다른 성질의 방사성동위원소로 바뀔 때 본래의 것을 지칭

2) 염화루비듐 표적

‌천연염화루비듐 분말을 압축한 펠렛 형태, 루비듐-85와 루비듐-87로 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