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과학읽기

소리 없이 찾아오는 비극…
ESG 반면교사 ‘3대 영화’

피해는 있어도 가해는 없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다크 워터스 등 환경재난 이야기 주목
ESG(환경·사회·지배구조, 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경영이 세간의 화두다. 어느 조직이든 지속 가능한 발전을 담보하려면 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등의 가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단순 개별 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는 ESG의 최우선 가치는 무엇보다 ‘친환경’으로 꼽힌다.
ESG 친환경 가치의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대표적 영화들이 있다. 환경 파괴를 폭로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에린 브로코비치’, ‘다크 워터스’는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과 ‘에린 브로코비치’ 사례는 명확한 환경 피해를 입증해 사건이 종결됐지만, ‘다크 워터스’의 듀폰 피해 사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산업 활동으로 인한 환경오염은 과거에 있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미래에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환경오염 피해는 인류의 생존이 계속되는 한 중대하게 마주할 수밖에 없다.
환경재난 영화들을 들여다보면, 우리들의 일상에 소리 없이 찾아오는 환경 비극에 대한 경각심과 ESG 경영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시민과 기업, 사회의 역할을 되돌아보게 된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잊혀진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포스터(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 2020년 개봉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한 기업의 영어공부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회사의 비밀스러운 폐수 유출 사태를 말단 여직원들이 밝혀낸 영화다. 공장 폐수가 짧은 기간 동안 비교적 많은 양이 노출됐고, 특별한 지역 사람들의 오염물질 노출로 문제가 된 사례다. 삼진그룹 사건의 주역은 입사 8년 차 동기 3명의 삼진그룹 말단 여직원들이다. 커피 타기 달인 ‘이자영’(고아성), 마케팅부 돌직구 ‘정유나’(이솜), 가짜 영수증 메꾸기 달인 ‘심보람’(박혜수)이 그 주인공. 잔심부름을 하러 간 공장에서 우연히 폐수를 하천으로 내보내는 장면을 목격한 자영은 유나, 보람과 함께 회사의 감춰진 진실을 밝혀내고, 폐수 유출의 결정적 증거를 찾으려 고군분투한다.
삼진그룹 여직원들이 잘릴 각오를 하면서 회사의 실체를 파헤치는 이야기의 모티브는 30년 전 일어난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이다. 1991년 3월 14일과 4월 22일 2회에 걸쳐 발생한 이 사건은 구미공단 ‘두산전자’의 이야기다. 실제 이 사건은 지역 방송기자의 특종 보도로 세상에 알려진다. 당시 두산전자는 가전제품용 회로 기판을 만드는 페놀 원액 30t과 1.3t을 낙동강으로 흘려보냈다. 독성 물질 페놀은 부식성이 강해 피부 염증과 화상을 일으킬 수 있고, 체내 신경 순환계가 손상될 정도로 위험하다. 시민들의 악취 신고로 원인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염소 소독제를 투입했는데 설상가상으로 페놀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임산부의 유산 소식이 이어지고 1천만 영남지역 주민들이 수질 오염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두산그룹 회장이 물러나고, 전국적인 불매 운동이 벌어졌다.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으로 환경 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처음으로 제정됐고, 공장 설립 환경 기준이 대폭 강화되는 계기가 됐다.

‘다크워터스’ 인류의 99%가
이미 PFOA 중독됐다?

영화 다크워터스 포스터(CJ엔터테인먼트 제공)

다크워터스는 1998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지역을 무대로 한다. 190마리의 소가 갑작스러운 떼죽음을 당한다. 농장주 월터 테넌트가 변호사 롭 빌럿(마크 러팔로)에게 소송을 의뢰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롭 빌럿은 중증 질병과 검게 변한 치아, 기형아 출산, 메스꺼움에 고통 받는 주민들을 목격하면서 사건 조사 과정에서 모든 원인이 독성 폐기물질 ‘PFOA(과불화옥탄산)’를 무단 유출시킨 듀폰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유해성 논란이 있는 PFOA는 몸에서 잘 배출되지 않고 축적되는 잔류성 환경호르몬이다. 축적되면 암이나 기형 등 치명적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롭 빌럿은 세계 최대 화학기업의 PFOA 유출 사실을 폭로하지만, 듀폰은 환경오염 가능성을 전면 부인한다. 롭 빌럿은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PFOA가 프라이팬부터 콘택트렌즈, 아기 매트까지 우리 일상 곳곳에 침투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모든 것을 걸고 듀폰의 막강한 자본력과 싸운다. 자본에 의해 덮어지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20년 넘게 인생을 투자해 결국 2017년, 주민 3,535건의 대규모 집단 소송에서 듀폰이 총 8,000억 원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자막에 ‘이 세상에 아직 PFOA가 존재하고, 인류의 99%가 이미 중독됐다’라는 메시지가 인상적이다.

‘에린 브로코비치’ 중금속 오염
냉각수 방류 사건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 포스터(IMDb 제공)

에린 브로코비치는 2000년 개봉된 영화다. 199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힝클리(Hinkely) 지역의 이야기다. 언제부터인가 지역 주민들은 암을 비롯해 다양한 질병을 앓게 된다. 원인은 전력회사 대기업 PG&E 공장에서 유출되고 있는 중금속 크롬. PG&E는 중금속에 오염된 냉각수를 정화처리 없이 그대로 방류해 마을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하지만 주민들 누구 하나 질병의 원인을 PG&E에 돌리지 않는다. PG&E는 힝클리 마을 사람들의 인근 부지를 모두 매입해 거주민들에 대한 의료비를 지원해 주면서 특별히 회사가 정한 병원으로부터 치료를 받게 한다. 병원에서는 진료 데이터를 다른 원인으로 넘겨버린다. PG&E 회사 사람들은 주민 집까지 찾아가 공장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지속해서 밝히며 주민들을 세뇌한다.
1992년 어느 날, 에린 브로코비치(줄리아 로버츠)라는 한 평범한 여성이 서류 더미 속에서 의료기록을 발견해 PG&E의 환경파괴 실상을 알게 된다. 에린은 이 사건을 물고 늘어진다. 공장에서 유출되는 성분이 크롬이 맞는지, 기업이 어떤 식으로 사실을 은폐했는지 정보를 캐낸다. 공장 잠입까지 해가며 폐수 샘플링 검사와 근거 데이터를 확보하면서 마을주민 수백 명의 고소인 서명을 받아낸 후, PG&E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다. 독성연구자, 감시자, 변호 역할까지 1인 3역을 다한 에린 브로코비치 덕분에 결국 4년 후 PG&E는 미국 법정 사상 최고액인 3억 3,300만 달러를 지불하라는 판결을 받아낸다. 소송 결과 PG&E는 모든 공장에 크롬을 사용하지 않으며, 모든 물탱크에 오염물질 방출 방지 예방 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식 발표하게 된다.

ESG 경영?
‘과학기술’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

‘에린 브로코비치’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같은 영화의 경우 모두 폐수에 대한 독성이 확실해 비교적 쉽게 피해 보상이나 법적 대응을 할 수 있었던 사례다. 하지만 듀폰의 사례는 다르다. 듀폰의 PFOA 피해 영향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독성실험 등에 대한 과학적 방법론이 명확히 적용되지 못했고, 연구 결과가 추가로 나오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모른다.
과학기술자들은 독성이 입증됐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환경 피해자들이 법률적 구제를 받지 못하는 환경과 제도에 대해 더 우려한다.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영역이 아닌 환경재난에 대한 사회 시스템이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느냐에 따라 환경 문제가 다르게 취급될 수 있는 점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ESG 경영 가치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과학기술계는 앞으로 환경재난 피해자의 마지막 보루가 ‘독성연구’와 같은 과학 기술적 근거가 될 것이고, 명확한 근거에 따른 환경평가 시스템이 정비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환경에 대한 상처와 아픔을 넘을 수 있는 길은 보다 합리적인 근거에 따른 판단이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듀폰 PFOA 사례의 경우 불소 화합물이 오랜 기간 축적돼 암이나 신경계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우려한다. PFOA에 대한 연구가 발전할수록 그에 대한 환경 역학관계를 제대로 입증할 수 있다.
과거 환경피해 역학 연구 활동이 피해자 추적 조사에 국한된 역할이었다면, 앞으로는 근본적으로 해당 오염 물질이 어떤 작용을 통해 피해자에게 질환을 유도했는지 규명할 수 있도록 연구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법적인 판단이 가능하고, 제대로 된 피해자 판단 규정도 만들 수 있다. 친환경 ESG 경영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과학기술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