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견

포근해지는 날씨, 나른해지는 몸

잠의 과학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이장희 ‘봄은 고양이로다’ 중에서)

사람은 일생의 3분의 1 정도의 시간을 잠으로 보낸다. 잠은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생체반응이다.(픽사베이 제공

아직 몇 차례의 꽃샘추위가 있겠지만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다.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3~4월 환절기에는 신체가 적응하지 못해 유독 점심식사 이후 졸음이 쏟아지는 춘곤증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많다.
현대인들은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탓에 항상 스트레스와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더군다나 코로나19라는 독특한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는 극에 달하고 있다. 여기에 밤을 대낮같이 밝게 만드는 빛공해까지 더해져 불면의 밤에 뒤척이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실제로 한 통계에 따르면 국내 불면증 환자는 약 400만 명이며 이 중 80% 이상은 불면증이 1년 이상 지속돼 치료가 시급한 상태라고 한다.
사람은 일생의 3분의 1 정도의 시간을 잠으로 보낸다. 간혹 ‘죽어서도 잘 수 있는 잠을 왜 그렇게 많이 자는가’라며 ‘노오력’을 외치는 이들도 있지만 잠은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며 삶의 활력소를 제공해 준다. 고갈된 신경전달물질을 다시 보충해 활발한 뇌 활동을 대비해줄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편안하고 깊은 숙면을 취한 다음 날은 상쾌하고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경우는 신경이 곤두서고 매사에 의욕을 느끼지 못하는데 이러한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또 잠을 아껴가며 열심히 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중에 성격이 좋은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에디슨은 하루 3~4시간의 밤잠만 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지만 그의 창의력 비결은 수시로 토막잠이나 낮잠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사이언스 제공)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잠을 자다가 여러 번 깨는 경우, 아침에 원하는 시간보다 일찍 눈을 뜨는 경우, 일상생활에서 원하지 않을 때 잠에 빠져드는 경우를 ‘불면증’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성인 기준으로 7~9시간이라는 권장 수면시간보다 실제 수면시간이 부족할 경우 수면장애 상태로 본다.
최근 뇌과학의 발달로 잠이 우리 몸과 뇌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비밀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2017년 4월 미국 워싱턴주립대 의대, 펜실베니아대 의대, 일본 이화학연구소(리켄) 뇌과학연구소, 시가대 의대, 도호쿠대 의대 공동연구진이 포유류 뇌에 있는 ‘제7형 지방산 결합 단백질(FABP7)’이 수면의 질을 결정한다는 연구 결과를 기초과학 및 공학분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즈’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FABP7 유전자를 제거한 생쥐와 일반 생쥐의 수면 패턴을 비교해 본 결과 FABP7 유전자가 없는 생쥐들이 훨씬 숙면을 잘 취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같은 현상은 초파리 실험에서도 확인됐다.
같은 달 미국 록펠러대, 코넬대 의대, 터키 빌켄트대 공동연구진은 생체시계 유전자인 ‘CRY1’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수면장애가 발생하거나 수면 패턴이 바뀐다는 연구 결과를 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셀’에 발표했다.
지난해 6월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 의생명공학과, 인구학연구소, 계산·데이터과학연구소 공동연구팀은 충분한 잠이 뇌 속 독성단백질을 없애고 알츠하이머 치매도 막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플로스 생물학’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2004년 시작된 ‘알츠하이머 뇌영상 선도연구(ADNI)’ 참가자 중 118명을 골라 수면 관련 설문조사, 뇌 척수액 분석,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촬영을 했다. 분석 결과 잠잘 때 나오는 저주파의 뇌파가 뇌척수액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고 독성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 타우단백질 등을 제거해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권장 수면시간을 지키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뇌 기능이 뛰어나고 알츠하이머 발병률도 낮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호주 과학자들은 충분한 수면은 칼로리 섭취를 줄여 체중 조절에도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픽사베이 제공)

발명왕으로 알려진 미국 사업가 토머스 에디슨은 하루에 3~4시간만 잠을 잔 것으로 유명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밤잠시간만 적었을 뿐 수시로 낮잠이나 토막잠을 자 이를 모두 더하면 하루 8시간 정도인 권장 수면시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소르본대 창의연구소, 국립기면증연구센터, 피티에 살페트리에르 대학병원, 호주 모나쉬대 의식·사색연구센터 공동연구팀은 잠깐의 낮잠이나 업무와 공부 중에 잠깐씩 토막잠을 자거나 조는 것이 창의적 생각을 떠올리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어려운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을 3배 이상 높여준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해 12월 기초과학 및 공학분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즈’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성인남녀 103명을 대상으로 토막잠 실험을 한 결과, 에디슨처럼 잠에서 깨자마자 창의적 아이디어가 번뜩이지는 수준은 아니지만 창의성, 이해력 같은 인지기능이 잠들기 전보다 훨씬 나았다는 것이 관찰됐다.
충분한 숙면은 현대인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인 다이어트에도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 2월 8일 미국 시카고대 의대, 공중보건대, 위스콘신 매디슨대 영양과학과, 생체기술연구소 공동연구팀은 충분한 수면을 취하면 칼로리 섭취가 줄면서 체중 조절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 의학회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JAMA 내과학’에 내놨다.
춘곤증은 환경변화로 인해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인체의 적응과정이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한 달 이상 지속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1~2주 정도만 지나면 사라진다고 한다. 코로나19가 여전하지만 따뜻해진 날씨에 가끔 산책을 하고 쌉싸름한 제철 채소와 과일로 비타민 보충을 한다면 올봄도 슬기롭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와 호주 과학자들은 잠깐의 낮잠이나 토막잠, 또는 꾸벅꾸벅 조는 것만으로도 창의적인 생각을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픽사베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