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눔

그 고등어조림

다시 한번 먹어봤으면

요즘은 뉴스 보기가 겁난다. 노인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퍼뜩 엄마가 계신 요양원이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엄마를 요양원에 모시기까지 암담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하루는 뭔가 찜찜한 생각이 들었던 둘째가 새벽같이 달려가 보니 엄마가 화장실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이마에는 피가 낭자했다. 엄마는 떨어져 있는 전화기를 잡으려고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닿지 않아 자식들에게 연락을 못 했단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언제부턴가 엄마의 종종걸음이 마음에 걸려 병원에 모시고 갔다. 아니나 다를까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활기차게 꾸려가던 엄마의 일상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나날이 눈에 띄게 쇠약해지더니 아예 자리에 눕고 마셨다. 여동생들과 나는 순번을 정해 수발을 들기 시작했다. 아침과 저녁은 딸들이, 점심에는 요양사가 왔다. 엄마는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달고 사셨다.
음식솜씨가 유별하신 엄마는 근처에 사는 자손들을 불러 무얼 해 먹이는 걸 낙으로 사셨다. 멀리 이국땅에 사는 하나뿐인 아들을 오매불망 그리워하며. 어느 해이던가 어버이날 우리 자매들은 어김없이 친정집에 모였다. 집안에 들어서자 고등어조림 냄새가 먼저 우리를 반겼다. 묵은 시래기를 깔고 조린 고등어조림은 엄마 요리 중 특별 메뉴다. 콧잔등 땀을 훔치며 우리는 맛있게 먹고 있는데 엄마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게 아닌가. 그것도 심각한 표정으로. 다름 아닌 요양원 풍경이었다. “얘들아, 미리 일러두는데 다음에 나를 저런 곳에 보낼 생각일랑 꿈에도 하지 마라. 기어 다녀도 내 집, 이 집에서 내 손으로 해 먹고 임종 맞는 게 평생소원이란다. 절대로 너희들 신세 안 질 터이니 그리들 알거라.” “에이 엄마도 참! 언제까지나 우리에게 이렇게 맛난 반찬 해줘야지 가긴 어딜 가셔!” 막내의 어리광에 엄마도 딸들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식사를 마치었다.
어느 날 위급한 상황이라며 요양사가 전화를 했다. 곁에 계신 엄마의 가뿐 숨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급히 응급실에 모시고 갔지만 열이 높아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여러 병원을 거친 끝에 코로나 검사를 받은 후 가까스로 입원할 수 있었다. 연하곤란으로 음식과 물이 기도로 넘어갈 위험이 있어 콧줄 식사를 하게 되었다. 요로와 심장에는 스탠스를 삽입했다. 거동이 힘들어 욕창이 염려되었다. 병세가 깊어진 엄마를 다시 집으로 모시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퇴원을 앞두고 요양원에 대해 자주 말씀드렸다. 처음 한두 번은 건성으로 “그러마”하시더니 설마 딸들이 당신을 그렇게까지 할까 싶었던 모양이다. 드디어 차가 멈추자 지그시 눈을 감고 계시던 엄마는 “집에 다 왔니?”하시며 차창을 내다보더니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니야…”라고 수없이 뇌이며 통곡하셨다. 바로 요양원 앞이었다. 나도 설움이 복받쳐 엄마를 끌어 앉고 울었다. 한동안 울던 엄마는 가까스로 진정하고 살며시 내 손을 잡으며 “알았다. 가끔 들여다보기나 하렴”하고는 체념한 듯 고개를 돌리셨다.
면회 시간에 만나면 엄마는 “내 집 아무 일 없지야? 그 현관문이 잘 안 닫히는데 문은 잘 잠그고 다니니?” 집 걱정부터 하신다. 태연한 척 말씀하시는 엄마 얼굴을 차마 바로 뵐 수가 없었다. 문득 연전에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요양원 연락을 받고 집으로 모셨던 시어머님 생각이 났다. 내 방, 내 침대에 모시고 식구들이 불침번을 서며 지켜드렸는데 치매 환자 같지 않게 맑은 정신으로 두어 달 사시다 편안히 가셨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 지금 엄마 건강 상태는 집에서 케어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자매들은 일주일에 한 번 요양원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엄마를 만난다. 우리 얼굴과 엄마의 얼굴이 유리에 겹쳐진다. 우리 모습을 오래 간직하려는 듯 눈을 크게 뜨신다. “힘든데 뭐 하러 이렇게 자주 오누. 나는 잘 있어,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아.” 창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엄마의 표정, 비위관(鼻胃管)의 상태, 목소리, 입성까지 매의 눈으로 살핀다. 한 말씀이라도 더 들으려고 귀도 쫑긋 세운다. 시간이 갈수록 엄마의 정신은 더 맑아지는 것 같다. 딸들이 가슴 아플까 봐 표정 관리까지 하는 엄마! 안타까운 마음에 차라리 엄마의 정신이 흐려졌으면 하는 불경스런 생각까지 들 때도 있었다.
“엄마 또 올게”하니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신다. 휠체어에 실려 가던 엄마가 문득 우리를 돌아본다. 그렁그렁 맺힌 눈물, 얼른 손등으로 훔치신다.
고등어조림 먹던 날 신신당부했던 그 말씀이 내 등짝을 후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