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속 과학읽기

산신이 날아다니는
유토피아의 세계

고구려의 천문벽화

강서대묘 벽화에 그려진 선인의 모습

고구려 사람들은 하늘에 관심이 많았다. 고구려 사람들은 왜 하늘에 관심이 많았을까? 아무래도 도교의 영향인듯싶은데, 종교만으로 해석하기에는 천문학이 매우 발전한 나라였다.
고구려 사람들의 하늘에 대한 이해는 상당히 유토피아적이다. 현실적이지는 않다는 말이다. 고구려인들은 고분 벽화에 해와 달, 별을 그렸고 신선의 세계도 그려 놓았다. 신화의 세계가 녹아 있고 종교와 과학의 세계도 벽화 속에 녹아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구려 문화나 세계관은 참 멋스럽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진 수많은 별자리 그림은 그 어떤 자료보다도 고대 한국인의 천문학 연구를 위해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4세기에서 7세기 사이에 집중적으로 축조된 103기의 고구려 벽화 고분 중 별자리가 그려진 벽화는 모두 24기에 이르며 총 800개에 육박하는 별이 그려져 있다.
같은 시기인 중국의 수·당 시기 벽화 고분 중 별 그림이 그려진 것이 고작 7기 가량인데, 대부분 장식적인 별을 천정에 가득 그려놓아 천공의 세계를 수식하는 정도이다. 반면에 고구려 벽화 속 별자리는 연결선이 뚜렷하게 그려져 있다. 별은 모두 둥근 원형으로 그렸는데 현대천문학에서 천체를 모두 구형이라 보는 관점에 비추어 볼 때 매우 흥미롭다.
물론 고분 벽화는 기본적으로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데 사용했던 미술 양식이다. 고분에는 사후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자료가 많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해와 달, 별이 그려졌다고 해서 이를 천문학적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벽화에 그려진 별자리는 과학적이라기보다는 관념적이고 상징적이다. 고구려인들은 별자리 그림을 통해 그들의 관념적이고도 상징적인 세계관을 표현했다.
덕화리 고분 벽화 속 북두칠성의 모습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진 천문별자리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고구려의 별자리 그림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으나, 고구려만의 특색을 살린 측면이 강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덕화리 2호분 천정벽화에서 보이듯이 중국과 달리 고구려 천문은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이 매우 강조되어 있다. 별자리가 그려져 있는 24기의 고분 가운데 80% 이상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다. 그 외에도 중국 별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별자리도 여러 가지 보인다.
북두칠성은 한국인들이 좋아하던 별자리였다. 벽화 외에도 고인돌 윗부분에도 북두칠성이 다수 새겨져 있다. 불교 사찰에 자리 잡은 칠성각이나 무속의 칠성신앙도 한국인들이 북두칠성을 중시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덕흥리 고분에는 흥미로운 별자리가 많은데,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로 여겨지는 W자 모양의 5성 별자리가 있으며, 케페우스 별자리 모양을 띤 ∧자 모양의 5성 별자리가 있다. 특이한 점은 이들 별자리가 동시기 중국의 천문도에는 없는 별자리 형태라는 점이다. 고구려만의 별자리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사신도(四神圖)가 표현되어 있다. 사신도는 동서남북 4개의 방위에 우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상상의 동물을 배치해 놓은 것이다. 동쪽에는 청룡, 서쪽에는 백호,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가 배치되어 있다. 고분에 사신도가 그려진 직접적인 배경은 중국의 영향이다. 중국에서 사신 관념은 춘추전국시대에 체계화되었다. 네 종류의 신이라 할 수 있는 사신은 묘 주인의 사후를 보호하는 신이다. 사신도는 중국에서는 한나라, 한국에서는 고구려의 무덤에 많이 그려졌다.
사신도가 그려진 고구려 벽화 중 대표적인 것은 평양에 있는 호남리 사신총이다. 이 무덤은 1916년에 발견되었고 누구의 무덤인지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벽면에 사신도가 그려져 있어 사신총이라 불리고 있다. 정면이 아닌 옆면을 그린 청룡의 모습은 인상이 상당히 날카롭다. 무덤에 나쁜 기운이라도 들어오면 불을 뿜어 당장이라도 쫓아낼 기세이다. 서쪽 벽에 그려져 있는 백호는 오늘날의 호랑이와는 사뭇 모습이 다르다.
사신도 외에도 고구려 전성시기 고분 벽화에는 흔히 해와 달이 함께 그려져 있다. 동양의 신화나 천문에서는 해, 즉 태양만 위대할 수는 없었다. 언제나 달이 짝이 되었다. 한국의 경우 중국과 달리 초기 건국신화에서 광명 신화구조가 매우 발달되어 있다. 고구려 시조를 일월의 아들이라 하였고, 신라의 동해 바닷가에 전승된 연오랑 세오녀의 이야기도 일월 병행 신화의 모습이다.
해 안에는 고구려의 상징이자 태양의 정령인 세발달린 까마귀, 즉 삼족오가 날개를 활짝 벌리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달에는 두꺼비 혹은 옥토끼와 계수나무가 그려져 있다. 두꺼비는 3천 년을 산다는 불사의 영물이다. 옥토끼는 곤륜산의 서왕모에게 불사의 약을 가지고 달나라로 도망쳤다는 항아분월 신화에 등장하는 영물로 영원한 삶을 상징한다. 다만 옥토끼는 네발 달린 토끼가 아니라 두발 달린 토끼인데, 이 의인화된 토끼만이 영생의 상징인 옥()을 부여 받는다.
고구려의 일월상은 매우 신화적이다. 복희라는 신이 해를 머리에 이고 있고 여와라는 신이 달을 머리에 이고 있다. 신화적 일월상은 중국 한나라의 영향이지만, 고구려 일월상은 신화에만 머물지 않고 천문을 상징하는 체계이기도 했다.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이 크고 웅장하게 그려지고 동서에 해와 달이 위치하는 형태를 하고 있다. 특히 북두칠성은 죽은 사람의 머리 위에 그려져 있다. 죽은 사람의 사후세계를 관장한 것이다. 북두칠성이나 남두육성을 강조한 고구려 사람들의 사후관념 혹은 우주관은 도교나 불교의 영향이다.
고구려 벽화 속 일월신의 모습(국립민속박물관 『천문』 도판 232)

일월성신(장천1호분)(국립민속박물관 『천문』 도판 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