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과학읽기

고흐가 선물한
의 과학’

유화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예술 작품
‘러빙 빈센트’

기획부터 개봉까지 10년 걸린 ‘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는 37세의 짧은 생애였지만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후기 인상주의 화가가 됐다. 네덜란드 출신인 고흐는 27세부터 그림을 시작해 인생을 마감하기까지 10년간 작품 활동을 펼쳤다. 2,100점에 달하는 작품 전부가 정신 질환을 앓고 외롭게 살면서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네덜란드 시절 작품 활동 초기에는 하층민의 삶을 어두운 색조로 그리다가, 이후 남프랑스를 주 무대로 삼아 자신만의 힘찬 붓놀림과 두드러진 색감으로 예술을 완성했다.
지난 2017년 말 개봉한 영화 ‘러빙 빈센트’는 평생 불행했던 예술가의 고독한 열정과 광기가 베인 예술 세계를 그려내 대중들로부터 꾸준하게 주목받고 있다. 고흐의 그림이 스크린 영상으로 살아 움직이는 걸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다. 단순 영화라기보다 90분간 감상하는 미술 작품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러빙 빈센트는 세계 최초 유화 애니메이션 영화다. 전 세계 4,000여 명의 지원자 중 107명의 화가가 선발돼 고흐의 그림을 유화로 직접 그려 만들어졌다. 고흐의 초상화 인물을 배우가 직접 연기하고, 그 연기를 화가들이 다시 유화로 옮기는 작업으로 또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기획부터 화가들을 뽑고 고흐의 화풍을 연습하면서 유화를 한 땀 한 땀 직접 그리다 보니 영화 개봉까지 10년이 걸렸다. 그림처럼 살다간 고흐의 굴곡진 삶의 여정을 들여다보면서, 고흐가 캔버스에 남긴 깊은 여운을 느낄 겸 ‘러빙 빈센트’라는 영화 감상을 추천해 본다.

고흐가 택한 노란색… 이유가 뭘까?

고흐는 유독 작품에 노란색을 많이 사용했다. 노란색에 아주 푹 빠진 화가였다. 노란색을 너무 좋아해 노랑 물감을 한 다스 쏟아 부었을 법한 그림이 적지 않다. 노란 집, 밤의 카페 테라스, 아르망 룰랭, 까마귀가 나는 밀밭 등 노란색이 압도적이다. 시각적인 대비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란색과 함께 파란색 계열도 즐겨 사용했다. 고흐는 왜 노란색에 그토록 집착했던 걸까. 단순히 고흐가 노란색을 좋아했기 때문일 수 있고, 황시증·뇌전증·압생트(Absinthe) 등 다양한 추측이 있다.
유력한 원인 중 하나가 압생트라는 술이다. 흔히 ‘녹색 요정’으로 불리는 압생트는 40도가 넘는 독주로 파리에서 예술가들이 영감의 도구로 많이 찾았던 술이다. 고흐가 압생트 중독으로 시신경을 다쳤다면, 망막 속 광수용기인 원뿔세포와 막대세포 손상으로 색을 노랗게 인식했을 수 있다. 압생트에는 ‘산토닌’이라는 성분이 있는데 이를 과다복용하면 ‘황시증’이 부작용으로 생길 수 있다. 고흐도 압생트에 빠져 끝내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파리를 떠났다.
그런 가운데 고흐는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좀 속일 필요가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압생트로 황시증에 걸렸든, 단순히 노란색을 좋아했든 어찌 됐든지 간에 고흐는 중독을 넘어서 강렬한 노란색의 예술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노란 높은 음’을 향해 찾아가려는 고흐의 노력이 가장 강력한 노란색에 대한 집착 이유일 수 있다.
107명의 화가가 고흐의 화풍을 학습하며 만들어낸 유화. 또 하나의 작품(ⒸLoving Vincent)

유화물감 쓴 고흐… 그림 재료의 과학

고흐는 그림을 그릴 때 유화물감을 썼다. 모든 색이 그렇듯 노란색이라고 모두 같지 않다. 유화물감 특유의 성질이 작품의 느낌을 좌지우지한다. 유화물감은 15세기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서 발달했다. 유화물감 이전에는 달걀의 단백질을 이용한 ‘템페라’가 사용됐다. 르네상스 시대 발전한 대표적 예술가인 미켈란젤로, 다빈치, 라파엘로 등이 기름과 안료를 사용했다.
유화물감은 광택이 나는 기름 성분으로 깊은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건조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아크릴이 등장했다. 유화는 덧그림으로 수정이 가능하다. 여러 재료 중 가장 보존 능력이 좋다. 초기 아크릴 물감은 유럽산이었다. 1950년 미국에서 대량화에 성공했다. 수채화와 유화 특성을 가진 합성수지 폴리머가 유화물감의 단점을 많이 극복해 최근 널리 사용 중이다. 물론 유화물감으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다. 물감으로 내는 색의 범위가 현실 대비 더 작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화가들은 더욱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깔을 원해 독성이 있는 색깔도 쓰곤 한다. 그중 실버 화이트는 가장 위험한 안료다. 납 성분 때문이다. 노란색은 카드뮴, 납, 코발트, 니켈 성분이 포함돼 있다. 가급적 묻지 않도록 해야 하고, 자주 환기를 해야 한다. 금가루를 그림에 묻힌 작품도 있다. 더 멋진 노란색을 구현하기 위해 금가루를 쓴 화가도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다. 다나에(Danae)라는 작품에서 사용했다.

조명의 과학… 어떤 원리로 색이 보일까?

고흐가 살았던 1800년대의 조명은 현재의 LED 조명과 무엇이 다를까. 조명의 역사를 보면 1,000년 전 촛불로 시작됐다. 1810년 가스등이 나왔고, 1879년 에디슨이 전구를 개발했다. 1938년 형광등이 나왔고, 1996년 화이트 LED가 개발돼 상용화됐다.
조명에 따라 색은 달라 보인다. 한낮에 태양광이 내리쬘 때, 형광등 밑에서, 가스등 밑에서 색은 모두 달라 보인다. 고흐가 살았던 시기는 노란 밤 풍경을 만들어낸 가스등을 사용했다. 광원의 분광분포에 따라 색채가 다르게 연출되는 현상을 연색성(Color Rendering)이라 한다.
사람 눈의 망막에는 원뿔세포(색 지각)와 막대세포(밝기 지각)의 두 종류의 광수용기가 있다. 동물에 따라 색을 보는 광수용기가 다르다. 조명 밝기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인다. 원뿔세포(색 지각세포)가 작용하는 낮에는 붉은색이던 꽃이 저녁 무렵에는 어두운 색으로 보인다. 밤에는 막대세포(밝기 지각세포)만 작용해 회색빛으로 보인다. 색은 조명의 밝기와 분광분포, 사람 눈의 광수용기 작용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조 단위가 넘는 고흐의 작품 가치?
돈의 과학

고흐는 생전 자신의 그림을 1점밖에 팔지 못했다. 아를의 붉은 포도밭을 외젠 보슈의 여동생에게 팔았다. 고흐가 사망한 지 11년 후 파리에서 71점의 그림이 전시된 후 본격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특히 20세기 후반 고흐 작품이 전 세계 경매에서 기록적인 금액으로 팔렸다.
고흐의 작품 중 가장 높은 가격을 기록한 작품은 가셰 박사의 초상화다. 1990년 크리스티 뉴욕 경매 시장에서 8,250만 달러(당시 최고가)에 낙찰됐다. 현재 가치는 약 1,65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 러빙 빈센트에 등장하는 고흐의 작품은 약 130점이다. 작품마다 아주 저렴하게 500억 원씩 가격을 매겨도 6조 원이 넘는다. 고흐의 대표적 작품들을 현재 추정 가치로 환산하면 해바라기 820억, 삼나무가 있는 밀밭 920억, 조셉 룰랭의 초상 1,200억, 붓꽃 1,100억 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러빙 빈센트에는 고흐의 작품 130여 점이 등장한다. 탕기영감의 초상(Portrait of Pere Tanguy)(ⒸLoving Vincent)

러빙 빈센트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돈 맥클린(Don McLean)이 고흐를 추모하며 만든 노래 Vincent의 첫 소절 ‘Stary stary night~’이 흘러나오며 마무리된다. 가사를 음미하며, 고흐가 세상을 향해 쓴 편지를 공유한다.
“화가의 삶에서 죽음은 아마 별것 아닐지도 몰라. 물론 나야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별을 볼 때면 언제나 꿈꾸게 돼. 난 스스로 말하지. 왜 우린 창공의 불꽃에 접근할 수 없을까? 혹시 죽음이 우리를 별로 데려가는 걸까? 늙어서 편안히 죽으면 저기까지 걸어서 가게 되는 걸까?“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그는 마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