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견

백신 매번 맞기 귀찮은데

방법이 없을까

2019년 11월 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된 지 이제 3년 차에 접어들었다.
다양한 방식의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돼 보급되고 있으나 코로나19의 기세는 여전히 꺾이지 않고 있다. 과학자들의 노력 덕분에 발생 초기만 해도 베일에 싸여있던 코로나19에 대한 궁금증이 상당수 해결됐지만,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부분이 있다. 코로나19가 어디서 시작됐는가 하는 ‘바이러스의 기원’이다.
자가 확산 백신은 이론상 접종자가 적더라도 바이러스처럼 확산돼 집단면역을 형성하는 시간이 짧아진다. 이 때문에 바이러스성 동물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자가 확산 백신이 개발되기도 했지만 변이 가능성이 크다는 위험 때문에 허가되지 않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노란색)가 동물 세포에 붙어있는 모습을 전자현미경으로 찍은 사진(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 제공)

실제로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계속 제기되고 있는 의혹 중 하나는 중국 우한 국가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바이러스가 유출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도 지난해 초 중국에서 4주간 코로나19 기원에 관한 조사를 했다. WHO는 “코로나19가 실험실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은 극히 낮고 중간 숙주 동물을 통해 박쥐 바이러스가 인간에 전염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지난해 말에는 중국 측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군 실험실에서 유출됐다고 주장하면서 바이러스의 기원을 밝히려는 노력은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 정치적 문제로 옮겨간 모양새다.
이 같은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은 가운데 세계 곳곳에서 바이러스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있는 ‘자가 확산 바이러스(Self-Spreading Virus)’의 유출 위험성을 경고하는 논문이 발표돼 주목받고 있다.
영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독일, 미국 등 4개국 생물학자, 의과학자, 사회과학자들로 구성된 공동연구팀은 바이러스 학자들이 실험실 수준으로 연구하는 자가 확산 바이러스가 외부에 유출될 경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공동 연구에는 영국 킹스칼리지런던대 국제보건·사회의학과, 런던 열대위생의학대학원 감염병 역학과, 남아공 케이프타운대 분자·세포생물학과, 독일 연방 자연보전청(BfN), 막스플랑크 진화생물학연구소 진화유전학과, 미국 사우스캘리포니아대 정치·국제관계학과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사이언스’ 1월 7일 자에 실렸다.
기존 백신(왼쪽)은 백신 접종자에게서만 효과가 나타나지만, 자가 확산 백신(오른쪽)은 일부만 백신을 맞아도 집단 전체로 효과가 확산이 되기 때문에 많은 연구자가 주목하고 있다. 그렇지만 자가 확산 백신은 확산 과정에서 변이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생물학연구소 제공)

폴 버그 미국 스탠포드대 교수는 1972년 재조합 DNA를 만드는 데 성공해 유전공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버그 교수는 이 공로로 1980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국의 분자생물학자 노린 머레이, 케네스 머레이 부부 과학자가 버그 교수의 연구를 바탕으로 1974년 세계 최초로 복제와 감염이 가능한 유전자 변형 바이러스를 만들었다. 이로부터 두 달 뒤에는 미국 분자유전학자 로널드 데이비스 스탠포드대 교수도 유전자 변형 바이러스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많은 바이러스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바이러스를 변형시켜 연구를 하고 있다.
1980년대 호주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만든 자가 확산 바이러스를 이용해 여우, 생쥐, 토끼 같은 야생동물 개체 수를 줄이거나 광견병, 흑사병 바이러스를 퍼트리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연구해 일부 성공했다.
2000년에는 스페인 과학자들이 스페인 연안 작은 섬에서 바이러스를 변형시켜 자가 확산 백신을 만들어 동물실험을 했다. 이들은 자가 확산 백신을 접종한 토끼와 그렇지 않은 토끼를 풀어놓고 30일 뒤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토끼들을 잡아 혈청을 분석한 결과 절반 이상의 토끼에서 항체가 형성된 것이 관찰됐다. 연구팀은 동물용 백신으로 상업화 허가를 신청했지만 유럽의약품안전청(EMA)에서는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자는 늘어나고 있지만, 당초 예상대로 집단면역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일부 연구자들은 백신 효과가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자가 확산 백신에 관심을 갖고 있다.(로이터 제공)

그렇지만 자가 확산 바이러스를 이용한 백신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등 인간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옮기는 ‘바이러스의 저수지’ 박쥐들에게 바이러스를 재조합한 자가 확산 백신 접종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실험이 담긴 논문이 지난해 9월 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생태 및 진화’에 실리기도 했다. 현재 백신 시스템은 각 개체에 일일이 접종을 해야 항체를 형성하지만, 자가 확산 백신은 독성 없이 재조합된 바이러스로 백신을 만들어 일부에게만 접종해도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면역력을 전달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번 연구팀은 바이러스와 똑같은 성질을 갖고 숙주에서 숙주로 이동하는 자가 확산 바이러스가 실험실에서는 제대로 작동한다고 하더라도 통제되지 않는 외부 환경에 그대로 노출될 경우 생물학적 특성이 바뀌면서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변이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자가 확산 바이러스를 이용한 백신이 기존 백신과 달리 집단 내에서 항체를 빠르게 형성해 소위 ‘집단면역’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숙주들 사이를 거치면서 의도치 않은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연구를 이끈 영국 킹스칼리지런던대 필리파 렌초스 교수는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자가 확산 바이러스의 사용에 대해 생물학적 안전성이나 윤리적 문제는 지나치게 과소평가돼 있다”라며 “바이러스의 특성상 변이가 쉽기 때문에 자가 확산 바이러스가 한 번 풀려나면 통제가 어려운 만큼 이를 활용하는 것은 한 지역이나 국가에서만이 아닌 글로벌 거버넌스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사이언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