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은 이른바 ‘관상(觀象)’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관상의 대상과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전근대 사회에서 관상을 담당했던 분야는 천문역산학(天文曆算學)이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전통시대의 천문역산학은 ‘제왕(帝王)의 학문’으로 간주되었다. 유교사회에서는 제왕의 첫 번째 임무를 ‘관상수시(觀象授時: 하늘의 형상을 관찰하여 시간을 부여함)’로 규정하여 천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수명개제(受命改制: 천명을 받아 제도를 개혁함)’의 원칙에 입각하여 새로운 왕조가 들어섰을 때 천문학의 정비를 우선적인 과제로 삼았다.
유교를 정치 이념으로 삼은 역대 왕조들은 왕조의 정당성을 정치사상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천문학을 발전시켰다. 조선 태조 때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의 각석과 세종 때 간의대(簡儀臺)의 설립 그리고 『칠정산(七政算)』이라는 자주적 천문역법을 수립한 것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옛 조상들은 인간과 하늘이 서로 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늘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현실의 정치와 사회에 영향을 준다고 믿었다. 하늘의 여러 가지 변화에 특히 민감했다. 옛날 사람들은 별의 움직임을 통해 지상에서 일어날 미래를 점쳤고 이를 불길한 징조나 행운의 징조로 해석했다. 특히 태양이나 달이 가려지는 일식이나 월식이 일어날 때면 하늘이 인간에게 어떤 계시를 준다고 믿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일식이 일어난 날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왕뿐이었다. 천문을 다루던 관리들은 일식이 일어나는 날을 미리 예측하여 왕에게 알려 주어야 했다. 만약 일식이나 월식의 예보가 틀리면 큰 벌을 받았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는 일식이 일어날 때마다 이를 꼼꼼하게 기록해 두었다. 고구려가 455년 동안에 11회, 백제가 606년 동안에 26회, 신라는 전후 965년 동안에 26회의 일식이 일어났다.
일식과 월식 외에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5성이었다. 5성은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5행성을 가리킨다. 이 행성들이 수많은 별들 중에서 특히 주목을 받은 이유는 위치가 변하지 않는 붙박이 별들과는 달리 복잡한 운동을 하는 행성이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이들 행성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역모나 전쟁 등이 일어날 것을 예측했다.
그 외에도 혜성과 유성의 출현도 중요하게 여긴 천문현상이었다. 객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 신성, 혜성, 유성, 성운 등이 나타나면 별에 이상이 생겼다고 해서 국가 비상사태로 여겼다. 이 가운데서도 혜성은 특히나 불길하게 생각했다. 우리 조상들의 혜성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고구려 10회, 백제 15회, 신라 32회 등 모두 57회의 혜성이 나타났다고 『삼국사기』에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