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견

흑범의 해에 보는

호랑이의 과학

‘하얀 소’의 해였던 2021년 신축년이 저물고 ‘흑범’의 해가 밝았다.
2022년은 60갑자의 서른아홉 번째, 십이지 동물 중 세 번째인 호랑이의 해 ‘임인년’(壬寅年)이다.
임인년을 ‘검은 호랑이의 해’라고 부르는데 십간(十干)의 아홉 번째 ‘임’()은
열 번째 ‘계’()와 함께 물의 기운을 상징하고 방향으로는 북쪽, 오방색 중에서는 검은색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임’은 양의 성질을 띠고 ‘계’는 음의 성질을 띠고 있어서
임수는 바다나 호수같이 넓은 물을 의미하고 계수는 빗물이나 작은 개울 같은 물을 의미한다.
호랑이는 용맹의 상징으로 여겨져 이 해에 태어난 사람은 힘이 넘치고 솔직하면서
낙천적 기질이 강하고 모험과 명예욕이 강해 무슨 일이든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으로 믿어졌다.

남한에서는 완전히 사라진
멸종 위기의 호랑이

2022년은 검은 호랑이의 해 ‘임인년’이다. 검은 호랑이는 벵갈 호랑이의 유전적 변이 때문에 태어난 일종의 돌연변이로 전 세계에 몇 마리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사이언스 제공)

고양이과 대형 포유류인 호랑이는 과거 아시아 전역에 널리 분포했지만, 과도한 포획과 각종 개발 또는 삼림파괴로 인해 대부분 지역에서 멸종했고 남아있는 호랑이 아종들도 심각한 멸종 위기종으로 나뉘어있다.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호랑이, 백두산호랑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시베리아호랑이와 한국표범이라고 불린 아무르표범이 한밤중에 한양 사대문 안을 어슬렁거렸다는 기록이 여럿 남아있다. 조선 말기 때도 국가 주도로 호랑이 사냥이 합법화돼 개체 수가 줄기 시작했는데 일제강점기 때 해수(害獸, 해로운 짐승) 구제사업으로 거의 절멸하고 현재 남한지역에서는 완전히 멸종해 동물원 쇠창살 너머로만 볼 수 있는 동물이 됐다.
생명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최신 보전과학’ 11월 호에 영국 런던대(UCL) 지리학과 연구진과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서울대 수의학과 연구자들이 함께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1870~1900년 조선을 여행했거나 거주했던 서구인의 책과 현장 노트, 편지, 일기 등을 분석한 결과 한양 도성 안에서 표범을 직간접으로 목격했다는 기록 12건을 찾았다”고 밝혔다.
현재 지구상에 있는 호랑이 아종은 6종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2015년 독일 라이프니츠동물원, 야생동물조사연구소, 영국 스코틀랜드국립박물관, 덴마크 국립자연사박물관 연구진은 호랑이 2,000마리의 두개골과 약 100마리의 호랑이 가죽 색상과 줄무늬, 분자유전학 데이터, 생태학적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순다 호랑이와 대륙 호랑이 2종으로만 구분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기초과학 및 공학 분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즈’에 발표했다.
2018년 중국 베이징대, 미국 야생동물보전협회가 중심이 된 국제 공동연구팀은 호랑이 32마리의 유전체 전체를 비교·분석해 호랑이의 아종은 6종이라는 연구 결과를 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실제로 많은 학자는 호랑이의 아종을 6종으로 보고 있다.
호랑이의 아종이 몇 종이든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종을 정확히 알아야 멸종 위기에 처한 호랑이를 보호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된다.

민화와 옛날이야기 속
단골손님, 호랑이

실제와 달리 우리 민화나 옛날이야기 속에서 호랑이는 다소 어리석거나 귀여운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새해가 되면 집집이 까치 호랑이 그림을 걸었는데 이는 호랑이가 귀신을 쫓아내고 까치가 반가운 소식을 가져다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위키피디아 제공)

조선시대 백성들에게 가장 공포의 대상은 ‘호환·마마’였다. 호환은 호랑이로 인해 생기는 우환이란 말인데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양 도성에 호랑이와 표범이 돌아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실제로 조선인들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도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것이었다. 프랑스 신문 ‘르 쁘띠 주르날’ 1909년 12월 12일 자에 실린 조선 관련 삽화에는 호랑이가 마을을 덮쳐 사람을 해치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호랑이는 사자와 함께 대표적인 맹수로 알려졌지만, 옛날이야기나 민화에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많이 등장해 어려서부터 친숙한 동물이기도 하다. ‘해님 달님’에서 호랑이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면서 집에 가는 엄마의 떡을 빼앗아 먹고 결국 엄마까지 잡아먹는다. ‘곶감과 호랑이’에서는 할머니가 계속 울어대는 아이를 달래려 “자꾸 울면 호랑이가 잡아간다”라고 말한다. 엄마가 호랑이와 맞닥뜨렸을 때 어쩔 수 없이 떡을 하나씩 내놓을 수밖에 없고, 호랑이의 으르렁거림을 들으면 울음을 그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뭐였을까.
바로 호랑이가 내는 초저주파 때문이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 내의 소리가 있는가 하면 파장이 너무 길거나 짧아서 들을 수 없는 소리도 있다. 가청 주파수는 20~2만㎐(헤르츠)이고 2만㎐가 넘는 소리는 초음파, 20㎐ 미만은 초저주파이다. 동물들끼리는 초저주파를 의사소통에 사용하기도 하지만 호랑이는 초저주파로 먹잇감을 꼼짝없이 붙들어 매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동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호랑이는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의 소리를 내기도 하고 들을 수 없는 초저주파의 소리를 내기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호랑이가 내는 17~18㎐의 초저주파를 사람들에게 들려준 결과 대부분이 ‘으스스하며 이상한 느낌’을 받고 순간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한다. 이는 초저주파가 근육을 진동시켜 일시적으로 움직일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호랑이와 사자의 싸움?
궁금하지만 불가능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고대 로마에서는 콜로세움에 사자와 호랑이를 풀어다 싸우게 했다는 기록도 있지만 자연 상태에서는 호랑이와 사자의 서식지 형태가 달라서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는 없다. 그렇지만 두개골 골격이나 몸집으로 보면 호랑이가 훨씬 커서 사자보다 호랑이가 유리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위키피디아 제공)

마지막으로 하나 더. 호랑이는 산림, 관목림, 덤불 같은 숲이 우거진 곳에서 서식하며 더운 여름이면 물가에서 헤엄을 즐기기도 한다. 새끼를 키울 때는 암컷과 수컷, 새끼들로 구성돼 가족 단위의 무리를 이루며 살지만 대부분 단독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동물원에서 맹수인 호랑이와 사자 우리를 가까운 곳에 위치시켜놓다 보니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를 궁금해하곤 한다. 마치 1970~80년대 TV 만화영화를 보던 세대들이 ‘마징가Z와 태권V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를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징가Z와 그레이트마징가면 모르겠지만 마징가Z와 태권V가 만날 수 없듯이 호랑이와 사자가 사는 서식지 형태가 달라서 둘이 만날 일이 없다. 만날 일이 없으니 일부러 잡아서 한 곳에 만나게 하지 않는 이상 싸울 일도 없겠다.
조선시대에 많은 민화에 호랑이가 그려진 것은 잡귀와 화를 막아준다는 주술적 의미 때문이다. 임인년 새해에는 코로나19라는 ‘21세기 마마’를 검은 호랑이의 커다란 저주파 포효로 멀리 떠나보내고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