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견

겨울에 빠질 수 없는

‘눈()’, 숨겨진 과학

“은빛 장옷을 길게 끌어/왼 마을을 희게 덮으며/
나의 신부가/이 아침에 왔습니다.
사뿐사뿐 걸어/내 비위에 맞게 조용히 들어왔습니다.
오랜만에/내 마음은/오늘 노래를 부릅니다.
잊어버렸던 노래를 부릅니다.
자- 잔들을 높이 드시오./빨간 포도주를/
내가 철철 넘게 치겠소.
이 좋은 아침/우리들은 다 같이 아름다운 생각을 합시다.
종도 꾸짖지 맙시다./애기들도 울리지 맙시다.”
- 노천명 ‘첫눈’ -
겨울하면 ‘눈’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기후 온난화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첫눈 오는 시기는 늦어지고 마지막 눈이 내리는 시기는 빨라지고 있다.(픽사베이 제공)

첫눈이나 두 번째, 세 번째 내리는 눈이나 다를 것 하나 없지만, 사람들은 ‘첫눈’이라는 단어와 현상에 대해 첫사랑 같은 기다림과 설렘을 느낀다.
하얗게 떨어지는 눈은 작가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줬다.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철학적이고 신비하다는 평을 받은 덴마크 소설가 페테르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부터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끝이 하얗게 됐다”로 시작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물론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원작인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까지 눈은 그야말로 작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기상 현상 중 하나이다.
옛사람들은 하얀 눈에서 포근함과 푹신함을 느꼈다. 그래서 멥쌀가루에 고물 없이 시루에서 쪄낸 한국의 전통 떡 백설기도 흰 눈 같은 떡이라는 ‘백설고(白雪糕)’가 변형된 단어이다.(위키피디아 제공)

옛사람들도 하얀 눈에서 포근함과 푹신함을 느꼈던 모양이다. 먹음직스럽게 하얀 전통 시루떡인 백설기도 흰 눈 같은 떡이라는 ‘백설고(白雪糕)’가 변형된 단어이다.
지난 11월 7일 역대 가장 포근한 ‘입동’이 지나자마자 한랭전선과 함께 북쪽의 차가운 공기가 한반도로 밀려들면서 기온이 급감하여 경기 북부, 강원산지, 내륙지역 곳곳에서 첫눈이 내렸고 제주산지에는 첫눈을 넘어 대설주의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서울에도 11월 10일 새벽 노천명의 시처럼 조용히 첫눈이 내렸다. 평년보다 10일 빨리 내렸고 지난해보다는 한 달 빠른 기록이다.
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전국 첫눈 평균 시작일은 12월 1일이며 마지막 눈 평균 종료일은 3월 11일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기온상승의 영향으로 계절의 길이가 변함에 따라 봄, 여름철 길이는 늘어나고 가을과 겨울철 계절 길이는 줄어들면서 첫눈의 시작일은 점점 늦어지고 종료일은 빨라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눈의 종류는 4가지,
눈의 결정은 6,000개 넘어

눈의 종류는 함박눈, 싸락눈, 가루눈, 진눈깨비 4종에 불과하지만, 눈의 결정 모양은 6,000여 개가 넘는다. 똑같은 함박눈이라도 눈의 결정 모양은 사람의 지문처럼 제각각이다.(네이처 제공)

구름 속 수분이 얼어 하얗게 떨어지는 ‘눈’은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다양한 과학이 숨겨져 있다. 더군다나 기상청 예보관들이 가장 예보하기 어려워하는 날씨 현상 중 하나도 바로 ‘눈’이다.
눈은 일반적으로 상층 기온은 영하권이고 지상 온도는 1.2도 이하일 때 내린다. 눈의 종류는 함박눈, 싸락눈, 가루눈, 진눈깨비 4종이다.
눈은 영하 15도 안팎의 구름 속에서 만들어진다. 1.54km 상공 기온이 영하 20~10도일 때 여러 개의 눈 결정이 합쳐지며 이 과정 속에서 틈새에 공기가 들어가 눈송이가 커지는데 이것이 바로 함박눈이다. 비교적 따뜻하고 습기가 많은 공기에서 만들어진다.
1.54km 상공의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일 때는 눈 입자들이 결합하지 않고 내부에 공기가 들어가지 않아 흰색의 작은 얼음 알갱이 형태로 떨어진다. 이것이 싸락눈이다. 가루눈도 밀가루처럼 잘 뭉쳐지지 않는 것으로 습도와 기온이 낮고 바람이 강하게 불 때 많이 내린다. 그래서 싸락눈과 가루눈이 내리는 날은 함박눈이 내릴 때보다 춥다. 진눈깨비는 상공 1.31km 이하의 기온이 높아서 눈으로 떨어지다가 녹아 비와 섞여 내리는 현상이다.
눈의 종류는 단순하지만 눈의 결정 모양은 6,000여 개가 넘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눈 결정 모양은 6개의 가지가 뻗어 나온 육각형 수지상 형태이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바늘 모양, 기둥 모양, 장구 모양, 둥근 모양, 판상형, 불규칙한 입체 모양 등 다양하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른 것처럼 똑같은 함박눈이나 싸락눈이라도 그 결정은 모두 제각각이다.
눈의 결정에 대해 연구한 과학자들은 많다. 연금술을 과학의 수준까지 높여 ‘닥터 우니베르사리스(백과전서 박사)’라고 불리는 13세기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를 시작으로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 현미경으로 세포를 처음 관찰한 로버트 훅이 대표적이다. 이후 1820년 영국의 포경업자 W.스코레스비가 96개의 눈꽃 결정을 찾아내고 1855년 영국의 기상학자 제임스 글레이셔가 151개의 눈 결정을 발견했다.
그러나 눈 결정이 지문만큼 다양하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미국의 농부이자 아마추어 눈 사진가 윌슨 벤틀리다. 벤틀리는 현미경을 사진기와 결합한 장치를 만들어 1931년 사망할 때까지 6,000여 종의 눈 결정을 찾아내 사진으로 남겼다. 이 중 3,000종의 눈꽃 사진을 골라 ‘눈 결정’이라는 책을 펴내 아직까지도 기상학의 교과서처럼 쓰이고 있다.
눈의 원리 : 눈을 뿌리는 ‘차가운 눈구름’은 높이에 따라 온도가 다르다. 영하 20도 이하 층에서는 빙정(얼음)만 존재하고 영하 20~0도 이하 부위에는 빙정과 함께 눈 결정이 되기 직전인 과냉각된 물방울이 함께 존재한다. 빙정과 과냉각된 물방울이 충돌하면서 성장해 아름답고 다양한 형태의 눈 결정을 만들어 낸다.(케이웨더 제공)

‘눈송이 사나이(The Snowflake Man)’로 불리는 미국 아마추어 사진가 윌슨 벤틀리(1865~1931)는 사진기 앞에 현미경을 붙인 특수 카메라를 만들어 6,000여 개의 눈 결정 사진을 찍어 기상학 교과서에 실리는 등 눈(雪)의 구조 연구에서 전설로 남아있다.(위키피디아 제공)

눈 예보가 쉽지 않은 이유는
미세한 수증기량과 기온 때문

쌓인 눈에 무너져버린 비닐하우스의 모습. 100㎡(약 30평) 넓이의 건물 위에 50cm의 눈이 쌓여 있다면 그 무게가 5t에 이른다. 가건물이나 비닐하우스 지붕에 눈이 쌓일 경우 쉽게 붕괴가 일어나는 이유다.(연합뉴스 제공)

눈 예보가 쉽지 않은 이유는 지상의 건조한 공기 1kg에 포함될 수 있는 수증기량이 기온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름철 30도 기온에서 1kg 공기에는 약 30g의 수증기가 포함되지만, 겨울철 영하 15도의 기온에서 1kg에 담을 수 있는 수증기량은 1g에 불과하다. 수증기량의 차이는 기상 조건의 미세한 변화만으로도 강설 여부를 좌우하게 된다.
지상과 지표 온도 이외에도 상층 기온 구조, 구름의 형태에 따라 강수와 적설량이 크게 차이가 난다. 적설량을 예측할 때는 ‘수상당량비’라는 것을 쓰는데 한반도에서는 보통 10배 정도이다. 비로 따지면 1mm 강수량을 보일 수 있는 눈구름에서 10배인 1cm의 눈이 내릴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역시 기상 상태에 따라 달라져 5mm 강수량에서 2배 이하인 1cm 이하 적설을 보이는가 하면 1mm 이하 강수량에서 30배 이상인 3cm 이상 적설을 기록한 사례도 있다.
이는 눈의 하중을 계산할 때도 쓰인다. 100㎡(약 30평) 넓이의 건물 위에 50㎝의 눈이 쌓여있을 때 이를 평균 10분의 1로 계산해 물로 환산하면 5cm 두께의 물이 차 있는 셈이다. 눈은 비와 달리 흘러 내려가지 않고 건물 내부의 열로 인해 추운 날씨여도 접착제처럼 눈들이 달라붙어 그대로 쌓인다. 물 1ℓ(0.001㎥)의 무게는 1kg이기 때문에 50cm의 눈의 무게는 ‘0.05X10X10=5㎥=5,000kg=5t’에 이른다. 임시건물이나 비닐하우스 지붕에 눈이 쌓일 경우 쉽게 무너지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