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과학읽기

왕과 과학자의
우주 교감 다룬 영화 ‘천문’
자격루의 숨겨진 과학은?…
장영실이 그린 별 이야기

조선에 하늘을 하다…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롯데엔터테인먼트)

“어디야 지금 뭐 해,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가수 적재의 ‘별 보러 가자’의 노래다. 배우 박보검이 부르면서 인기를 끌었다. 잘생긴 배우의 이 로맨틱한 제안에 수많은 여심이 흔들렸다. 노래 가사처럼 별을 소재로 연인들의 마음을 나누는 스토리가 아름답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며 연인 사이가 아닌 임금과 과학기술인의 특별한 교감을 다룬 영화가 있다. 바로 ‘천문: 하늘에 묻는다’이다.
관상수시(觀象授時)라는 말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천문을 관리하여 시간을 알려주는 것은 백성들의 삶을 이끌어 가는 왕의 의무이자 권리였다. 한마디로 천문은 왕의 학문이었다. 천문은 세종대왕과 과학기술인 장영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평가받는 세종과 과학자 장영실이 조선의 시간과 하늘을 만들고자 했던 스토리가 담겼다. 천문을 보면 천문과학의 중요한 발자취를 알 수 있다. 왕과 과학자 사이의 신분을 뛰어넘어 별을 보는 아름다움과 재미는 덤이다.

조선 시대의 천문연구,
왜 중요시 했나

조선 시대 당시 농사를 지을 때 중요한 기준점은 중국 역서(달력)였다. 중국의 명나라 황제만이 시간과 하늘을 통제했다. 조선은 명나라 지배를 받으면서 자기만의 시간도 하늘도 없었던 셈이다. 매년 동짓날 배포되는 중국의 달력은 조선 땅에 매번 늦게 도착했다. 중국에서 건너온 정보를 기준으로 해 나라의 살림을 운영해야 했다. 중국의 달력으로 농사를 지으려다 보니 뭔가 조선의 지리에는 맞지 않았다. 제대로 농사를 짓기 위해선 한양 지리에 맞는 입출입시각이나 24절기 같은 시각이 필요했다.
독자적인 조선의 역서가 절실했다. 왕은 하늘의 아들 천자로서 하늘의 뜻을 세심히 살펴 농사를 짓는 백성을 위해 지리에 맞는 시각을 잘 계산해야 했다. 조선뿐만 아니라 과거 국력을 상징하는 것이 크게 역법과 글자였다. 세종은 장영실과 함께 궁극적으로 조선의 자립과 국민의 안녕을 이루고자 천문연구가 필수라고 판단하고 칠정산에 거대 천문연구기관 ‘서운관’을 세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보다 300년 앞선 한국판 오토마타(Automata)

서운관에서는 정확한 시간과 절기를 알기 위한 전문적인 연구 활동이 펼쳐졌다. 한국천문연구원 등에 따르면 1420년 이후부터 12년간 정흠지, 정초, 정인지 등의 학자는 옛 천문역법을 연구해 역법 교정에 매진했고, 김빈은 산법교정에 참여했다. 박염 등의 학자는 삼각산에서 일식을 관측했다는 기록이 있다. 1432년 이후 천문 관측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천문의기를 제작했으며 이천이라는 학자가 천문의기 제작 감독을 수행했다. 1434년에는 김돈, 김빈, 장영실 등의 과학자가 보루각 자격루 제작을 주도했으며, 이순지와 김담이 간의대 관측과 간의 규표, 소형해시계 제작에 참여했다. 1437년에서 1444년 사이 조선의 역법이 편찬돼 1443년 세종이 “금후로 일식은 칠정산내외편, 중수대명력으로 계산한다”라는 어록이 있다. 서운관은 세조 12년 때 관상감(1466-1894)이라는 이름으로 개칭됐다.
장영실은 ‘관노’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족보와 선대 기록에 따르면 고위급 집안의 자손이었다. ‘아산 장씨’의 시조 장서는 송나라 대장군을 지냈으며, 장영실은 9세손이다. 기술관료 집안으로 어렸을 때부터 서적 등 기술 자료를 많이 접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장영실의 실제 관직 등용은 태종 때였으며 자격루의 발명으로 종3품 대호군에 오른다. 1442년(세종 24년) 곤장 100대를 맞았다는 기록을 끝으로 장영실에 대한 역사는 이어지지 않는다.

천문연구의 핵심 ‘자격루’
어떤 원리?

자격루

장영실이 개발한 자격루를 이용해 날씨에 관계없이 시간을 알 수 있었다. 자격루는 물의 흐름을 이용해 시간을 계측하고, 시보(時報) 장치로 시각을 알리는 자동 물시계다. 조선 시대 국가 표준계시기(標準計時機)로 사용했다. 자격루로 시간을 알기 이전에는 해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측정했다. 이 방식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아 흐린 날씨에는 시간을 알기가 힘들었다.
자격루는 물받이 통에 물이 고이면 그 위에 떠 있는 잣대가 올라가 정해진 눈금에 닿게 된다. 그곳에 있는 지렛대 장치를 건드려 그 끝에 있는 쇠 구슬이 구멍에 들어가고 이 구슬은 다른 쇠 구슬을 굴려주고 그것들이 차례로 미리 꾸며놓은 여러 공이를 건드려 종과 징 그리고 북을 울리는 원리다. 자격루 동작의 원동력은 부력과 운동에너지다. 부력에 의해 떠오른 살대로 얻은 에너지를 쇠 구슬의 낙하에 의한 운동에너지로 바꾸어 시보 장치를 작동시킬 추진력을 얻는 것이다. 쇠 구슬이 격발되고 이동 종이 울린 후 시간에 맞는 12지신의 인형이 나타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보다 300년 앞서 오토마타(Automata)를 사용한 셈이다.
자격루 말고도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기기 개발이 이어졌다. 흠경각의 옥루(玉漏, 1438년 ‘흠경각루’)가 대표적이다. 임금님을 위한 천상시계(天象時計)다. 보루각 자격루(부력)와 흠경각 옥루(수차의 회전동력)의 원동력이 다르다. 흠경각 옥루 동작의 원동력은 물의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를 이용해 수차를 회전시켜 생성하는 회전동력과 회전 운동을 직선 운동과 원 운동으로 전환하는 기어의 원리로 시보 장치와 태양 운행 장치를 작동시키는 원리다. 1438년(세종 20년) 1월 7일 세종실록에 기록된 옥루는 581년 만에 국립중앙과학관에 복원됐다.
조선 시대에는 ‘간의’와 자격루로 일식과 월식을 예측하기 위해 필요한 태양과 달의 위치를 측정했다. 태양은 별과 함께 관측할 수 없어 낮에 관측해야 했으며 이때 자격루(물시계)를 활용했다. 간의는 혼천의를 간소화한 천문의기다. 행성과 별의 위치, 시간 측정, 고도와 방위에 대한 정밀 측정이 가능했다. 세종 때 장영실에 의해 개발됐다. 천구의 모형 ‘혼천의’ 역시 조선 시대의 대표적 천문연구 업적이다. 혼천시계는 현대 천문학의 항성시 개념과 같다.
장영실 시대 이후 100년이 훌쩍 지나 덴마크의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Tycho Brahe)는 1572년 카시오페이아 자리 신성을 14개월 관측한데 이어 우라니보르 천문대와 스티에르네보르 천문대에서 정밀한 관측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은 후에 조수였던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가 수학적 해석을 더해 케플러의 법칙을 발견하며 지동설을 확립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천문학은 점성술과 다르다. 정교한 하늘의 과학이다. 천문학은 당대 가장 중요한 학문 중 하나로 근대 과학혁명의 시초가 되었다. 조선 시대 장영실을 중심으로 한 천문 연구는 현재의 천문 연구에 있어 관측데이터로서 중요한 기록이다. 당시 조선의 독자적인 연구데이터는 현대 천문 연구의 밑거름이다.
영화에서 누워서 북극성을 보는 장면은 옥에 티다. 작은곰자리의 α에 해당하는 북극성은 적경 1h 48.4m, 적위 +89° 2’에 위치하며 작은 일주운동을 한다. 위치가 대략 자전축의 북쪽과 일치하며 조선(한양)에선 북쪽 하늘을 사선으로 바라보면 관측할 수 있다.
깊어가는 가을날 아름다운 밤하늘이 펼쳐진다. 잠시 인생의 역경을 뒤로하고 오늘 밤은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과 별 보러 가는 낭만의 시간을 제안해 본다.
세종과 장영실. 두 사람의 우정은 조선의 하늘을 만드는 별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