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속 과학읽기

달에 대한 조상들의

오랜 생각과 꿈

인류에게 달은 과학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달은 우리와 지구인 모두의 노래와 꿈이며 생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주 자연 중에서도 가까운 동반적 존재로서 오래전부터 신화와 전설 등 많은 이야기와 함께 있어왔다.
아주 옛날 동양인들은 계수나무 아래서 달을 보며
방아를 찧는 토끼의 모습을 상상했고, 서양인들은 여인의 모습을 상상했다.

달에 대한 동경

해와 달은 인간이 지구에 살기 이전부터 있었다. 지구를 중심으로 해와 달은 1년 365일과 12달이라는 시간을 부여했고, 오래전 인간은 해와 달을 신앙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동아시아에서는 태양보다 달이 훨씬 인간과 가까운 존재였다. 태양과 달리 달은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였고, 피난처였다. 달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이 낳은 신화나 설화의 세계는 태양 보다 훨씬 풍부하다. 동아시아 음양설에 의하면 달은 해에 견주어 음()이다. 토끼는 달의 정령으로서 생장과 번창 그리고 풍요의 상징이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은 한 달을 주기로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다시 그믐달로 끊임없이 차고 기우는 달을 향해 소원을 빌곤 했다. 또한 달은 생명력을 상징하여 임신을 꿈꾸는 여성들은 이른바 ‘달힘 마시기’라 하여 보름달의 정기를 입으로 들여 마시기도 했다. 달에서 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는 여러 곳에서도 볼 수 있다. 선암사 원통전 꽃창살 속에 새겨진 방아 찧는 토끼나 원주 법천사 지광국사 탑비에 조그맣게 새겨 있는 계수나무 아래 토끼도 귀엽고 재미있다.
계수나무 달 토끼는 불교문화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자수, 도자기, 목공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고 노랫말에도 담겨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로 이어지는 동요나 ‘달 속에 박혀 있는 계수나무를 옥도끼로 찍어내고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지어 부모님과 함께 천년만년 살고 싶다’라는 민요에서 보듯이 우리 민족 대대로 달에 대한 동경이 이어져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달에 대한 동경은 보름달에 대한 기원으로 이어진다. 정월 대보름과 한가위는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보름달 명절로 한 해의 시작과 끝을 나타내는 특별한 보름이었다. 그중에서 대보름은 세시풍속에 따르는 어떤 명절보다도 큰 명절이었다. 우리 민족은 달이 뜨는 보름밤이면 시를 한 수 읊고 강강술래를 덩실덩실 추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보름달만 같아라’는 덕담이 나올 수 있는 것도 달을 숭배한 우리 민족의 하늘에 대한 정서이다.

인간의 삶 속으로 내려 온 ‘달’

1609년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달을 관측하면서 달의 그림자는 토끼가 아니라 울퉁불퉁한 분화구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한국에서도 18세기에 실학자 홍대용이 망원경으로 달의 월식 현상을 관찰했다. 달을 향한 시선이 바야흐로 신화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갈릴레오 망원경이 처음 국내에 들어 온 것은 1631년이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정두원이 중국 등주에서 선교사 로드리게스를 만나 망원경을 선물로 받아온 것이 최초였다. 갈릴레오 망원경은 천문에 관심 있던 조선시대 실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던 기구이기도 했다. 특히 담헌 홍대용은 농수각이라는 사설천문대를 만들어 망원경으로 월식을 관측했다.
홍대용 외에도 중국 북경에 간 실학자 중에 망원경으로 해와 달을 관측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18세기 문인화가인 표암 강세황도 70대에 중국 사행을 가서 서양인이 그린 달 그림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고 전한다.
강세황은 “천리경(망원경)으로 천상을 보면 해와 달과 별의 생김새를 모두 판별할 수 있고, 오성(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의 형상 또한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옛사람들이 달그림자를 자세히 관찰하지 못하여 광한궁(廣寒宮)이니, 계수나무 그림자니, 토끼가 약을 찧는 모습이니 하는 허황한 이야기를 믿어온 것이다”라고 했다. 19세기 실학자 이유원이라는 인물도 “망원경으로 달을 보니 달이 아주 가까이에 있고 그 무늬는 평평하지 않고 울퉁불퉁하였다. 달에 계수나무가 있고 옥토끼가 산다는 이야기는 황당한 이야기일 뿐이다”라고 했다.

멀지 않은 우주 탐사의 꿈

인류 역사에서 과학 문명의 발전은 누구나 진리라고 생각한 것을 뒤집는 데서 출발했다. 갈릴레오의 지동설, 실학자 홍대용의 무한우주론 등은 기존의 생각을 전환시킨 ‘뉴-패러다임(New Paradigm)’이다.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이러한 뉴-패러다임에서 시작된 것이다.
상상의 달은 이제 인류의 품으로 내려왔다. 1969년 7월 21일, 미국의 우주인 닐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다.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달에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내뱉은 암스트롱의 유명한 말처럼 그의 작은 걸음이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었다. 암스트롱 이후로 우주를 향한 인류의 도전은 계속됐다. 이제 인공위성으로 태양계를 탐사하거나 인간이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됐다. 심지어 사람이 며칠씩 우주정거장에 머물며 생활하는 것도 가능해진 시대다.
달 탐사를 비롯한 우주개발을 모든 나라가 꿈꾸지만, 인공위성을 만들거나 우주인을 배출한 나라와 우주센터가 있는 나라는 손에 꼽힐 정도다. 우리나라도 1990년대 이전까지는 이런 나라 중 하나였다. 한국은 2013년 1월 30일 역사적인 나로호 발사 성공으로 사실상 11번째 우주 강국이 되었다. 100kg급 나로과학위성(STSAT-2C)을 우리 힘으로 지구 저궤도에 쏘아 올리는 것을 목표로 시작된 나로호 개발사업이 오랜 시간 끝에 결실을 본 것이다.
2021년 10월 21일 순수 우리기술로 만들어진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발사되었다. 비록 위성 모사체의 궤도 안착이라는 임무는 실패했지만, 이번 발사의 성공은 바야흐로 신우주시대의 막을 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내년 5월 누리호 2차 발사를 시작으로 이후 2027년까지 차세대 소형위성 2호, 차세대 중형위성 3호, 열한 기의 초소형 군집위성 등 현재 개발 중인 인공위성들을 누리호에 실어 우주로 올려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38만km를 향한 달 탐사의 성공도 멀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