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견

우주독립의 꿈을
쏘아 올린 ‘누리호’…

내년 5월에 또 만나요

2021년 10월 21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나로우주센터에서 누리호가 발사되는 모습(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매년 10월이 되면 전 세계의 눈길은 스웨덴을 향한다. 바로 노벨과학상 수상자 발표 때문이다. 노벨과학상이 한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호사가의 관심을 막을 수는 없는 법. 올해는 90대 고령의 물리학상 수상자와 50대의 비교적 젊은 화학상 수상자가 배출되고,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회 소속 연구자들이 2명이나 수상하면서 노벨과학상 수상자 배출 최대 기관의 영예를 오랫동안 지켜왔던 미국 하버드대가 2위로 내려앉는 등 이야깃거리들이 풍성했다.
하지만 올해는 우리 국민들의 관심이 스웨덴보다는 땅끝 전남 고흥에 더 많이 쏠렸다.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발사 때문이다.
누리호는 지난 10월 21일 오후 5시 정각에 전남 고흥군 봉래면 나로우주센터 제2 발사대에서 엄청난 화염과 연기를 내뿜으며 200t의 육중한 몸체를 들어 올렸다. 누리호는 오후 5시 16분경 고도 700km에서 위성 모사체 분리까지 예정된 비행 시퀀스를 한 치의 오차 없이 끝내면서 ‘임무 완료’했다. 그렇지만 1시간 30분 정도가 지난 뒤, 이는 아쉬움 가득한 탄식으로 바뀌었다. 목표 고도에서 분리된 위성 모사체가 충분한 속도를 얻지 못해 궤도를 계속 돌지 못하고 추락했다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로 재단할 수 없는 결과였다. 누리호의 형이라고 할 수 있는 나로호(KSLV-1)의 산파 역할을 하고 누리호 개발에도 참여했으며 이번 발사에서도 발사관제센터(LCC, Launch Control Center)에서 발사 순간을 지켜봤던 조광래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의 말이 이번 누리호의 결과를 설명해주는 가장 적절한 문장일 것이다.
“탑재체의 지구 저궤도 투입이라는 누리호의 임무 차원에서는 실패라고 할 수 있겠지만 기술적 차원에서는 원했던 것을 모두 확인하고 얻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봐야 한다. 절반의 성공 보다는 90%의 성공이라고 봐줬으면 한다.”

90% 성공한 누리호…
16분의 환호, 1시간 30분 뒤 한숨

발사 당일 오전 10시부터 발사대를 중심으로 반경 3km 이내 육상 통제가 시작되고, 발사 2시간 전부터는 누리호 비행경로에 있는 폭 24km, 길이 78km 해상과 폭 44km, 길이 95km의 하늘길이 통제됐다.
누리호 발사관리위원회는 10월 21일 오전 10시 30분에 당초 계획대로 오후 4시 발사를 결정했지만, 오후에 열린 발사관리위원회에서는 발사대 하부시스템 점검에 시간이 걸리고 나로우주센터 상층풍 등의 이유로 최종 발사 시간이 1시간 늦춰진 오후 5시로 연기됐다. 추가 연기 가능성도 제기 됐지만, 오후 3시 35분 연료탱크 충전이 완료되고 오후 4시 5분에는 산화제 충전이 완료되는 등 발사 준비 시퀀스는 예정대로 차근차근 준비됐다. 누리호 발사에 대한 총괄 지휘 담당인 발사지휘센터(MDC, Mission Director Center)를 책임지고 있는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14분 전인 오후 4시 46분경 다시 발사 환경을 면밀히 살핀 뒤 발사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발사 1분을 남겨둔 시점부터 발사통제동은 침 삼키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후 5시 정각 누리호가 엄청난 굉음과 화염을 내뿜으며 솟구쳐 오르는 순간 전남 고흥우주발사전망대를 찾은 시민은 물론 TV와 인터넷을 통해 발사 현장 실시간 중계를 집과 직장, 학교에서 지켜보던 이들도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초긴장 상태에 빠져있던 발사지휘센터 관계자들의 얼굴도 밝게 변했다.
발사 시퀀스 종료 후 20분 정도 지난 시점에 발사지휘센터 연구자들이 박수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완전 성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비행 관련 데이터 분석이 길어지면서 이상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후 오후 7시 정부의 공식 발표를 통해 결국 위성 모사체가 목표 궤도에 안착하지 못 하고 추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원인은 7t급 3단 엔진의 연소 시간이 40~50초 일찍 종료되면서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는 데 필요한 초속 7.5km의 속도를 내지 못하고 초속 6.7~6.8km 밖에 내지 못해 추락하게 된 것이다. 결국 누리호는 내년 5월 2차 발사 성공을 기약하며 1차 시험발사를 종료하게 됐다.
2018년 11월 28일 누리호 핵심 엔진인 75t급 액체 엔진 성능을 검증하기 위한 시험발사체가 발사되는 모습(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10월 21일 오후 전남 고흥군 봉남등대 전망대에서 시민들이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발사 장면을 지켜보며 사진을 찍고 있다.(연합뉴스 제공)

개량형 누리호 개발,
달 탐사선 발사…
갈 길 바쁜 우주개발

누리호 1차 발사가 완전한 임무 완수는 하지 못했지만, 이를 계기로 한국의 우주개발에는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부는 내년 5월 누리호 2차 발사를 통해 한국형발사체 성능을 재점검한 뒤 누리호를 활용한 실용급 위성 발사와 민간우주개발 활성화를 위한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우선 누리호가 개발 목적에 맞게 실제 위성 발사에 투입되고 외국 위성 발사까지 대행하기 위해서는 발사체에 대한 신뢰도 확보가 중요한 만큼 2024년, 2026년, 2027년 3번의 추가 발사가 계획돼 있다.
동시에 누리호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개량형 한국형발사체’ 개발도 진행된다. 현재 누리호는 1.5t급 위성을 탑재할 수 있지만, 개량형 한국형발사체는 2.8t급 저궤도 위성을 탑재할 수 있다. 누리호의 주 엔진은 75t급 추력을 갖고 있는데 개량형 누리호의 주 엔진은 82t급 추력으로 업그레이드된다. 이렇게 개량된 한국형발사체는 2029년, 2030년 2차례 발사를 한 뒤 2030년 예정된 K-달 탐사선을 싣고 달을 향하게 된다.
한국은 2030년 누리호를 업그레이드한 개량형 한국형 발사체를 이용해 달 탐사선을 보낸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이번 누리호 개발에 주목해야 할 점은 국내 30여 개 기업, 500여 명의 인력이 참여한 산학연 공동협력 체계의 활약이다. 정부는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민간 주도 발사체 역량을 강화해 ‘스페이스X’, ‘블루오리진’, ‘버진갤럭틱’ 같은 민간 우주 기업이 나올 수 있는 기반을 만들 계획이다.
누리호 발사를 계기로, 30년 넘게 우주독립을 위해 노력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자들, 1950년대부터 에너지독립을 위해 밤낮없이 연구해온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자들, 그리고 한국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지금도 묵묵히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이 땅의 모든 과학기술인에게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