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속 과학읽기

새로운

천문도가 그려지다

전통 시대 천문도는 왕조의 권위를 나타내는 하늘의 표상으로 천체를 관측하고 그 결과를 표준화한 별자리 그림이다.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고구려가 처음으로 돌에다가 천문도를 새겼다고 전한다. 고려 시대 천문도는 현재 남아있지 않아 짐작할 수 없지만, 천문학자 오윤부(?~1304)가 천문도를 작성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볼 때 수도 평양에 있었던 고구려 천문도는 사라졌다 해도 그 전통은 고려에 계승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 시대에는 건국 직후인 1395년(태조 4년) 12월에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라는 이름의 천문도가 완성되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중심에 북극을 두고 조선에서 관측되는 별 1,464개를 황도 부근의 둥근 하늘에 점으로 표시한 천문도이다. 이 천문도는 서양식의 새로운 천문도가 전래되기까지 조선의 하늘을 나타내었다.
보은 법주사 신법천문도 병풍(보물 제848호)

새로운 서양식 천문도,
신법천문도의 제작

천상열차분야지도로 대표되는 조선식 천문도는 조선후기에 들어와 ‘신법천문도(新法天文圖)’에게 그 역할을 물려주게 되었다. 신법천문도는 서양 천문학의 유입과 함께 조선에 소개되어 18세기 이후에 제작됐다. 이러한 천문도는 청나라에 들어와 있던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과 쾨글러가 제작한 천문도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선교사였지만, 청나라 관상대인 흠천감의 천문대장을 지낸 천문가들이었다.
신법천문도는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같이 전통적인 적도 중심의 천문도에서 벗어나 서양식 방법인 황도 중심으로 별자리를 그린 천문도를 말한다. 새로운 법으로 만들었다 하여 신법이라고 한 것이다. 신법천문도는 황도를 중심으로 남반구와 북반구에서 관찰된 별자리를 그렸다고 하여 ‘황도남북총성도(黃道南北總星圖)’라고도 부른다. 신법천문도는 태양과 달, 5개의 행성, 1,855개의 별(북반구 1,066, 남반구 789)을 각각 크기와 색깔을 달리해서 그렸으며 망원경으로 관측했음을 보여주는 목성의 위성과 토성의 띠도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신법천문도는 북반구와 남반구의 별자리가 각각 나뉘어 두 개의 원 안에 입체투사법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기존의 28수(宿) 방사선이 12개의 절기선으로 바뀌었고 춘·추분점과 동·하지점을 잇는 선이 수직과 수평으로 그려져 있다. 가장자리에는 360등분한 눈금띠와 12궁, 그리고 24절기의 구분이 표시되어 있으며 반원 모양의 적경도가 그려져 있어 별의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다.
신법천문도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보은 법주사 신법천문도 병풍’(보물 848호)은 황도 남북의 별자리를 총 8폭의 병풍에 그려놓은 천문도로서 1742년(영조 18년)에 천문학자 김태서와 안국빈이 중국에 가서 직접 배워 그려온 것을 바탕으로 관상감에서 만든 것이다. 이 천문도가 언제, 어떻게 해서 법주사에서 보존하게 됐는지 그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법주사의 ‘신법천문도병풍’은 현재까지 알려진 쾨글러의 천문도 중에서 가장 크고 훌륭한 사본으로서 오늘날 귀중한 유물로 평가된다.

혼천전도의 등장

혼천전도(서울역사박물관 소장)

17세기 초 이후 서양식 천문도가 조선에 전래된 이후, 조선도 나름대로 서양의 천문 지식을 바탕으로 전통 방식과 서양식이 섞인 천문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혼천전도는 조선전기에 만든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 사용한 관측 자료가 아닌 새로운 관측 자료에 기초하여 만든 천문도이다. 주로 18세기에 많이 만들어졌다. 이 천문도의 중심에는 전통적인 형태의 별자리 그림이 있고 그 주위에 여러 천문기사를 기재하였다.
혼천전도의 별자리 그림은 전통적 형태를 따르긴 했으나, 기존의 북반구 별 뿐만 아니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남반구의 별 33좌 121개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관을 아래쪽 왼편에 그려 넣었다. 이를 칠정고도(七政古圖)라 설명하고 있고, 다른 편에는 지구중심이지만 태양이 다른 행성들을 거느리고 지구를 도는 칠정신도(七政新圖)라 하여 그려 넣었다. 이 칠정신도는 덴마크 출신의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의 우주관을 말한다. 이를 통해 이 천문도가 18세기까지 중국에 소개된 천동설에 바탕을 둔 코페르니쿠스 우주관 이전의 내용만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지동설이 아닌 천동설을 바탕으로 한 천문도이다.
혼천전도에 그려진 별자리 원 안의 중심은 북극이며 바깥의 원은 한양에서 볼 수 있는 남쪽 한계이다. 하늘 전체는 북극을 중심으로 12개의 방사선이 30도 간격을 표시하고 원 안에는 주극권과 적도, 그리고 황도가 그려져 있다. 별자리 그림은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처럼 북극투영법으로 천구를 형상화하였다.
칠정주천도(七政周天圖) 그림에는 해와 달, 오성(五星,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 의 관측상 위치들을 그림으로 나타냈는데 토성에는 5개의 위성, 목성에는 4개의 위성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각 행성들의 크기가 서로 비교되어 있고 지구로부터의 거리도 적혀 있다. 또한 일식과 월식의 원리, 보름이나 그믐 등 달의 위상을 나타낸 현망회삭의 원리를 정확히 그림으로 그렸다. 또한 칠정고도와 칠정신도에서는 그 당시에 전해지던 행성체계를 나타내었다. 이는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혼천전도는 15세기에 만들어진 조선식 천문도의 전통을 살리면서 당시 서양의 천문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여러 가지 내용들을 종합하여 그려진 것으로 서양과 동양의 천문체계가 뒤섞인 형태의 천문도이다. 특히 서양의 망원경으로 관측한 태양계의 별, 즉 해와 달, 토성, 목성, 화성, 금성, 수성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망원경이 우리나라에 처음 수입된 것은 1631년(인조 9년)에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정두원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이후 망원경은 천리경이라는 이름으로 수입되었지만, 영조 때 일식을 관측하기 위해 사용한 것 외에는 사용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만약 혼천전도에 그려져 있는 일월과 5행성, 특히 토성과 목성의 달들이 관상감에서 관측한 것을 바탕으로 했다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할 것이다.

혼천전도

제작시기 조선 후기

특징 기존 북반구의 별에 남반구의 별 33좌 121개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