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과학읽기

날씨,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을까
인류가 풀어야 할
마지막 숙제 ‘기후 위기’

기후변화 심각성 경고하는 재난 영화 ‘지오스톰’

쓰나미가 도시를 덮친다. 지오스톰 포스터 (출처 : Warner Bros. Pictures)

‘6도의 멸종’이라는 책이 있다. 영국 환경운동가 마크 라이너스(Mark Lynas)가 기온이 1도씩 오를 때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풀어쓴 책이다. 기후변화에 따라 인류 문명이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 예측했다. 기온 1도가 오르면 극심한 가뭄과 국제 식료품 가격이 인상된다. 2도가 오르면 바다의 산성화가 일어나고, 3도가 오르면 지구의 허파 아마존이 사막화된다. 4도가 오르면 지구 전역의 빙하가 소멸하고, 5도가 오르면 민족 대이동이 발생하며, 6도가 오르면 오존층이 파괴돼 인류가 멸종한다.
자연적인 요인이나 인위적인 요인에 의해 태양 에너지의 양이 바뀌거나 방출하는 지구 에너지의 양이 장기적으로 바뀌면 기후변화가 일어난다.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유엔 산하 기후 변화 국제 협의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나타나고 있는 지구온난화가 인간에 의한 온실기체 증가에 기인한다는 것이 95% 확실하다.
실제 지구 곳곳에서 기후변화 현상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빠르게 상승하며 지구촌 곳곳에서 기록적인 산불, 홍수, 가뭄이 발생하고 있다. 1차 산업혁명 이래 전 지구 평균 지표 온도가 2013년까지 약 0.85도 상승했고, 2016년까지 1도 이상 올랐다. 지난 2016년은 지상관측이 시작된 이래로 가장 더운 해였다.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의 기후를 인류가 막아낼 수 있을까. 기후 재난 영화 ‘지오스톰’이 그 미래상을 가늠해 보게 한다. 지오스톰이란 지구, 토양이라는 뜻의 Geo와 폭풍이라는 뜻의 Storm이 합쳐진 말로 직역하면 ‘지구의 폭풍’이다. 2017년 개봉한 ‘지오스톰’의 시나리오가 남 일 같지 않다.
영화 속 세상에서는 날씨 조작이 가능하다. 지구에 자연재해가 속출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날씨를 조정할 수 있는 ‘더치보이(Dutch Boy)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세계 정부 연합이 인공위성 조직망을 통해 기상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더치보이를 개발했지만, 프로그램에 문제가 생기면서 오히려 지구 곳곳에 걷잡을 수 없는 재난이 터진다. 두바이에 쓰나미가 일어나고 홍콩에서는 용암이 지하에서 뿜어져 나온다. 리우는 혹한에, 모스크바는 폭염에 시달린다.

날씨 조작 ‘더치보이’
실현 가능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불가능하다. 현재의 과학 기술 시스템으로는 어림없다. 영화처럼 완벽하게 날씨를 조작할 수 없다. 설사 제어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한 지역의 날씨 조절은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날씨 조작은 최근 과학기술계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기후 조절을 위한 지구공학(Geoengineering)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더치보이 오작동으로 홍콩에서 용암이 끓어오른다. (출처 : Warner Bros. Pictures)

날씨는 복잡하고 초기 조건에 민감한, 예측할 수 없는 역동적인 시스템을 가졌다. 카오스 이론(혼돈 이론)에서 초기값의 미세한 차이에 의해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나비효과 현상처럼 날씨는 초기 조건에 민감한 비선형 시스템이기 때문에 인간에 의해 완벽하게 조작되기 힘들다.
날씨 조작을 위한 대표적 과학기술 접근 사례로 미국의 HAARP(High-frequency Active Auroral Research Program) 프로젝트가 종종 거론된다. 강력한 라디오파를 발사해 대기 순환을 조절할 수 있다는 논리지만, 2014년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 국지적인 날씨 조작은 가능하다. 가장 대표적인 기술에는 인공강우와 인공증설, 우박억제 등이 있다. 인공강우는 항공기, 로켓 등을 이용해 구름 내부에 화학물질을 뿌려주는 방식이다. 가뭄 해갈·공기 오염 저감·대규모 화재 진압·우박 생성 억제 등에 활용할 수 있지만, 여전히 자유자재로 활용하기에는 아직 이른 상황이다.
인공강우를 위한 적절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는데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인공강우로 인해 대기오염이나 환경오염이 일어날 수 있다. 인공강우를 발생시키려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나, 그 효과는 길어야 반나절 수준이다. 중국이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위한 날씨 조절에 18조 원을 투입했다고 알려졌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중동 국가도 거액을 들여 인공강우를 통해 비를 만들어내고 있다.
다만, 특정 지역의 인공강우는 다른 지역의 날씨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기에 과학 윤리 문제에 봉착해 있다. 과학기술계는 아직 지구 자체를 대상으로 실험할 만큼 지구 기후 시스템에 대해 완벽히 알고 있지 않다. 그런 가운데 기상청에 따르면 미국, 중국, 일본 등 37개국에서 150여 개 이상의 날씨 변조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기후 재앙 지상에서만?
보이지 않는 해양이 더 심각

‘지오스톰’은 날씨 조작의 대상을 주로 수면 위에 뒀지만, 사실 우리는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바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상 대기 중에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중 절반만 존재한다. 화석연료 연소로 방출되는 이산화탄소 상당수를 바다에서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와이 마우나로아에서 관측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량은 실제 화석연료 연소로 방출되는 것으로 예상되는 양에 비해 적다는 연구보고서가 있다. 이산화탄소 증가 예상 경향의 57%만 대기 중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산업화 이후 해양의 이산화탄소 흡수 증가로 해양 산성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돼 산업혁명 이후 인위적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양의 20~30%를 해양이 흡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만큼 해양의 산성도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사이언스지에 따르면 800개가 넘는 산호종 중 3분의 1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으며 주요 원인이 수온 상승과 해양 산성화임을 명시하고 있다.
우주에서 날씨를 조작할 수 있는 ‘더치보이’ (출처 : Warner Bros. Pictures)

해양 산성화에 따라 산호초의 백화현상도 초래되고 있다. 수온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고 해수의 산도가 증가하면 산호와 조류의 공생관계가 무너지고 산호가 탈색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탈색된 산호 군락은 성장을 멈추고, 피해 정도가 심하면 죽게 된다.
수온 상승으로 인간 식탁에 올릴 수 있는 생물량도 점점 감소하고 있다. 동해에서 많이 잡히던 명태, 대게는 조업 금지 어종이 됐다. 갯녹음(일종의 백화현상)이 빠르게 심해지며 해조류도 사라지고 있어 해양생물이 서식지를 잃고 있다.
동해는 명태, 오징어, 가자미, 문어, 도루묵, 대게가 특산물이었는데 점점 사라지고 있다. 1987~1988년도에는 명태가 가장 많이 잡혔는데 지금 우리는 러시아에서 잡힌 명태를 수입해 먹고 있다. 생물에는 순환 사이클이 필요한데 그 사이클에 문제가 생긴 셈이다. 기후 변화와 수온 상승으로 잦아진 태풍, 높아진 파고가 연안을 지속해서 치고 들어오면서 인류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기후 재앙을 경고하는 ‘지오스톰’의 처음과 끝의 내레이션이 아직 귓가에 맴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선진국, 후진국 가릴 것 없이 밀어닥친 태풍은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발생시켰다. 몇몇 지역은 피해 정도가 아니라 도시 자체가 사라졌다. 전 세계적 기상 이변이 속출하고 있지만, 불행히도 본격적인 재앙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마지막에는 “과거를 돌이킬 수 없다. 미래를 대비할 뿐, 하나뿐인 지구를 하나 된 사람들이 공유한다는 걸 잊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다”라고 한다. 기후 위기 속에서 인류가 하나 되어 힘을 모으는 길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영화 ‘지오스톰’을 접하면서 우리는 기후변화 재난이 영화 속 허구가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심각성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있는 기후 재앙을 마주하며 지구가 병을 앓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우리는 인식하고, 필사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길뿐이다.